●──── 신약강론/로마서 83

제83강[끝] 로마서 16:21-27 나의 복음

https://youtu.be/FepUUV3JqmY ❖ 로마서 여든세 번째 강론 로마서 16:21-27 나의 복음 로마서 강론을 하면서 신학적인 용어들을 일부 표현하였지만 가능한 자제하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우리가 기존에 들었던 신학적 용어들이 실제 복음으로 설명하고 나타내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칭의, 성화, 영화, 예정, 선택 등의 용어들이 신학적으로 정리된 것과 실제 성경이 나타내고자 한 것과는 괴리가 있기에 가능한 본문 말씀에 충실해서 문맥과 성경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전달하고자 하였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첫 구절에서 “하나님의 복음”(1:1)을 말했는데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1:2)으로 “믿는 자에게 ..

제82강 로마서 16:17-20 발 아래 상하게

https://youtu.be/wwiRf0MIdgc ❖ 로마서 여든두 번째 강론 로마서 16:17-20 발 아래 상하게 우리는 이제 로마서의 막바지에 와 있다. 오늘 본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서신의 마지막을 바울 사도가 어떻게 장식하고 있는지 주목하게 만든다. 사도는 문안 인사를 한 후 서신을 마무리하기 전에 경계의 말씀을 전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결코 경고나 경계 정도의 의미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바울이 여기서 갑자기 왜 이런 말씀을 하고 있으며, 또한 왜 이 말씀을 단순한 경고나 경계 정도로만 봐서는 안 될까? 17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라고 말씀한다. 바울 사도는 16..

제81강 로마서 16:3-16 그리스도 안에서 문안

https://youtu.be/zgpaZCh8qDQ ❖ 로마서 여든한 번째 강론 로마서 16:3-16 그리스도 안에서 문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이고, 따른다는 것은 말씀에 이끌려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운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관계적 측면에서 표현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란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드러나는 공동체이다. 이런 점에서 성도는 자신의 목표나 형편에 따라 규정되는 삶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규정되어 십자가가 드러나는 삶이다. 그러나 우리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의 관계는 거래와 흥정으로 서로 얽혀 있다. 자신의 유익과 관련되지 않으면 관계를 설정하지..

제80강 로마서 16:1-2 교회의 일꾼

https://youtu.be/hcBvROSBAfk ❖ 로마서 여든 번째 강론 로마서 16:1-2 교회의 일꾼 성경의 어떤 한 책을 내리읽을 때 레위기나 마태복음 1장과 같이 대충 적당히 읽고 넘어가는 부분이 로마서 16장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이름만도 36명이고 그 외 이름이 없는 많은 사람들을 굳이 다 확인할 필요도 없고 서신의 마무리 인사 정도로 보고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내게 필요하고 자신의 어떤 상황에서 특별하게 인식되었던 부분, 흔히 하는 말로 은혜(?)받았다고 생각하는 구절에 밑줄을 치고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성경을 보아도 공자의 논어나 노자의 도덕경에서 좋은 문구를 골라내어 활용하는 것처럼 한다. 이처럼 우리는 말씀을 생명력 있는 말씀으로 생각하지 않는..

제79강 로마서 15:30-33 하나님의 뜻을 따라

https://youtu.be/PYcotn1X9RE ❖ 로마서 일흔아홉 번째 강론 로마서 15:30-33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에게 있어서 기도란 무엇이며 어떤 의미로 생각하는가? 문제는 기독교인들만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인들도 기도하고 수많은 종교와 이단들도 기도를 하며 심지어 아무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도 자신과 자녀들이 잘되기를 기도한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기독교인의 기도가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인다. 산상수훈에 보면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1-32)라고 말씀한다. 이방인들의 기도는 무엇을 먹을까 입..

제78강 로마서 15:22-29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

https://youtu.be/qCpiK-I7ivQ ❖ 로마서 일흔여덟 번째 강론 로마서 15:22-29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 성경 해석의 문제점 중의 하나가 교회라는 조직체, 소위 말하는 전통적인 제도권 속에 있는 교회의 틀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말씀이 언제나 교회를 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교회의 발전과 성장에 필요한 결론을 도출하여 적용한다. 예컨대 오늘 본문도 바울의 선교에 대한 열정, 비전, 그리고 연보(헌금) 이런 것들을 오늘날 교회가 본받아야 할 신앙의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가 로마서 말씀을 계속 살펴보면서 확인하는 것은 바울 사도가 엄청난 사명감과 원대한 꿈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 그..

제77강 로마서 15:17-21 예수 그리스도의 일

https://youtu.be/cWNifQyLuyk ❖ 로마서 일흔일곱 번째 강론 로마서 15:17-21 예수 그리스도의 일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주신 이유는 속죄의 희생을 치루실 하나님을 이방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사장 나라’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로써 실패하였고 진짜 이스라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로 완성하셨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은 여기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그것을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한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이런 점에서 바울 사도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은 단순히 바울 개인의 일이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한몸이라면 바울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제76강 로마서 15:14-16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https://youtu.be/Bnjekx9sdcw ❖ 로마서 일흔여섯 번째 강론 로마서 15:14-16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세상은 교회를 많이 오해하고 있다. 아니 오해하고 있다기보다 자기 방식으로 교회를 정의한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씀하는 종교적인 모습이 외형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느냐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때 종교적인 모습이란 성경을 그저 문자적으로 이해한 수준이다. 그래서 말씀을 문자적으로 가르치고 그대로 몸소 실천하고자 하는 모습이 보이면 그 목사를 훌륭한 목회자로 여기고 사람들이 모인다. 자기도 그 범주 안에 넣고 싶은 것이다. 그 범주 안에 자신을 넣어놓고 그 길을 따라가면 천국 갈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잘 생각해 보면 여기에 하나의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 ..

제75강 로마서 15:8-13 그 믿음 안에서

https://youtu.be/I5SMyMKfMP0 ❖ 로마서 일흔다섯 번째 강론 로마서 15:8-13 그 믿음 안에서 오늘날 교회들은 기독교를 많은 종교 중에서 가장 우수하고 독보적인 종교인 것으로 인식되도록 가르쳐 놓았다. 다른 종교에는 없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면서 믿음을 강조하였지만 그 믿음은 자기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믿어야 한다고 말했을 때 죄인들은 그 믿음이 그저 내 안에서 만들어낸 믿음인 줄로 착각한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세상에서 천국으로 가는 강을 건너는 데 있어서 예수를 다리나 배의 역할 정도로 생각하고, 강을 건넜으면 다리를 부숴야 하고 배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복음을 알았다고 하는 자들 가운데서도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하여 육적인 예수를 죽이고 영적인 그리..

제74강 로마서 15:1-7 한마음과 한 입

https://youtu.be/seJlcAAsKUE ❖ 로마서 일흔네 번째 강론 로마서 15:1-7 한마음과 한 입 일반적으로 예수 믿는 것을 자기 삶에다가 종교적인 힘을 더 추가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식으로 세상에서 살다가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하여 교회에 나가는 것을 하나 더 추가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조금 더 심취하면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는 정도로 좋은 신앙인이 되는 것으로 여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상적 욕심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거기다 종교적인 측면에서도 남들에게 뒤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종교도 하나의 소유가 된다. 자신을 하나님께 복종시키려고 하는 자세가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소유로 삼으려고 한 결과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성도란 세상적인 것에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