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강론/로마서(오전강론)

제81강 로마서 16:3-16 그리스도 안에서 문안

불편한 진리 2022. 6. 19.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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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여든한 번째 강론

 

로마서 16:3-16

그리스도 안에서 문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이고, 따른다는 것은 말씀에 이끌려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운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관계적 측면에서 표현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란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드러나는 공동체이다. 이런 점에서 성도는 자신의 목표나 형편에 따라 규정되는 삶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규정되어 십자가가 드러나는 삶이다.

그러나 우리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의 관계는 거래와 흥정으로 서로 얽혀 있다. 자신의 유익과 관련되지 않으면 관계를 설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고자 하는 일에 유익이 될 것 같으면 상대방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교회에 출석한다는 것도 사람들과의 이런 관계 차원에서 생각한다. 결국 동호회나 종친회에 불과한 모임들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보여준다고 착각한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 왕국은 왕이 주권을 가진 나라로 세상을 인정하고 세상이 원하는 모든 것을 수용하면서 주어지는 나라가 아니라 세상과 세상의 것을 공격하고 무너뜨린 후에 주어지는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세상과 세상의 것을 거부하시면서 빌라도의 심문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라고 하셨다.

또한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요 17:14)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란 세상에 살지만 결코 세상에 속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법칙과 원리대로 사는 자들이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가 소개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세상에 대해 죽어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드러난 자들이다.

3절에 보면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라고 하였는데 “브리스가와 아굴라”부부는 바울 사도가 2차 전도 여행 때 고린도에서 만났다. 브리스가의 애칭으로 브리스길라라고도 불린다. 아굴라는 유대인이었고 아내 브리스가는 로마 귀족 출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로마에 살고 있었으나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주후 41-54년)가 유대인을 추방하자 고린도에 살게 되었다. 바울과 장막을 만드는 업이 같았다(행 18:2-3). 그들은 바울이 고린도를 떠날 때 전도 여정에 동참하여 에베소까지 따라갔다(행 18:18-19). 요한의 세례만 알던 아볼로에게 복음을 전했고(행 18:24-26) 자신의 집을 모임 장소로 제공했던 것 같다(고전 16:19).

아무튼 바울 사도는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나의 동역자들”이라고 하였는데 헬라어 ‘쉬네르고스’는 ‘쉰’(~와 함께)과 ‘에르고’(일하다)의 합성어로 ‘함께 일하는, 같은 일을 하는’이라는 뜻이다. 이 표현은 9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라고 하였고, 21절에서도 “나의 동역자”라고 하였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동역자라는 말을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9)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한 의미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었다(15:15-16)는 말씀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동역자인 바울이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동역자로 표현하였다면 같은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뜻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동역자로 하나의 진리를 위해 같은 일을 하는 은혜 안에 있다는 의미이다.

4절에 의하면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라고 했다. 이 말은 바울 사도를 대신해서 목숨을 내어놓는 그런 일을 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바울 사도가 하는 일에 함께 목숨을 걸었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증거하시는 일에 바울은 도구로 쓰임을 받는 것이고 그 일에 브리스가와 아굴라 역시 함께 목숨을 걸고 동참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5절)라고 한다.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함께 모임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하는 말이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교회 건물은 없었고 개인의 집에서 모임을 하는 상황이었기에 아마도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의 집에 모이는 교회를 가리키는 것 같다. 어쨌든 바울 사도가 거론하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인사가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지만 하나의 교회로 보고 그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하는 차원에서 인사이다.

“문안”이라는 말이 16장에서 22번이나 나오는데 헬라어로는 ‘아스파조마이’라는 말로 ‘팔로 끌어안다, 포용하다’라는 말이다. 바울 사도의 이런 표현은 단순히 지역 교회, 끼리끼리 모이는 그런 모임을 가지고 흩어져 있는 자들에게 인사하라는 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는 한몸됨을 서로 확인하라는 뜻이다.

바로 이런 면에서 16장에서 거명되는 사람들의 이름은 함께 그리스도의 한몸된 교회임을 확인하는 나눔으로 이해해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에베네도”(5절),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6절),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7절),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8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9절),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 “아리스도불로의 권속”(10절), “내 친척 헤로디온”,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11절),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12절) 등이다. 그리고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13절)를 언급하면서 “그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니라”라고 말한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나의 그 어머니라’라는 말이다. 즉 정관사를 붙인 것은 특별한 관계에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바울의 친어머니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말이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마 12:50)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 땅에서의 부모와 자녀, 형제의 관계를 무시하라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나라가 이르렀으므로 예수님의 피를 나눈 자가 한 가족이라는 의미이다. 혈육의 관계는 이 땅에 살 동안만 잠시 유지될 뿐이다. 성도는 본질을 하늘나라에 두고 그 나라의 가족 관계 안에 있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이 말씀 이후 천국 비유를 말씀하셨다.

계속해서 바울은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14절), “빌로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15절)를 언급한다. 우리는 이러한 이름들에 대해 별다른 느낌이 없다. 그러나 당시의 입장에서 보자면 상당히 의미 있는 이름들의 열거이다. 여기 언급된 사람들이 중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바울 사도가 이 편지를 썼던 시대적 상황에서 이름은 출신이나 지위, 혹은 삶의 어떤 의미들을 나타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에는 로마의 황실에 사는 사람의 이름인지 아니면 노예로 사는 자의 이름인지 또는 로마인인지 유대인인지 헬라인인지 출신이나 그 사람의 배경이 단숨에 드러난다.

이런 이름들을 거론하면서 바울 사도가 안부를 전하는 것은 단순히 이런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안부를 전하는 차원이 아니다. 16절에 보면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라고 말씀한다.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라고 썼다. 출신 성분이나 삶의 배경, 또는 신분의 차이, 민족의 차이 이런 것들로 이루지는 관계가 아니라 그런 세상의 모든 조건들을 무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한 가족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한몸된 교회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3절), “그리스도 안에”(7, 9, 10절), “주 안에”(8, 11, 12, 13절)라는 말을 반복하여 강조하였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그런 차원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 안에”혹은 “주 안에”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십자가에 함께 죽었다는 연합의 의미가 들어 있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본문을 통해 나타내는 것은 비록 여러 계층의 사람들, 출신의 배경이 다양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 부르심을 받아 거룩하게 된 자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된 교회는 같은 하나의 진리를 드러내는 자라는 뜻이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이렇게 전한 말씀이 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고린도 교회에 있는 분쟁 때문에 바울 사도가 이렇게 권면하고 있는데 여기서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이라고 번역된 말을 직역하면 ‘그분의 말’, ‘그분의 마음’, ‘그분의 뜻’이다. “권하노니”(헬, 파라칼레오)라는 말을 ‘초청하다’라는 뜻으로 보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초청된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의해 완성된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은 그분의 마음이 될 수 없고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이사야 선지자가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 29:13)라고 하였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이라 상실한 마음이라고 하였다(1:28).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어 그 사랑을 확증하셨다(5:5, 8).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분의 말만 할 뿐이다.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몸일 뿐이다.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 4:23-25)

 

 

세상은 자기가 왕이고 상대방을 하대하는 삶의 법칙만 통용된다. 세상을 오래 살았다는 것으로 어른이 되려고 한다. 이런 세상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는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라고 모인다면 성도는 십자가 피의 흔적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게 되어 있다. 아니 교회요 성도라면 ‘서로’라는 상대가 있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기 때문이다.

주성교회는 복음을 나누니까 복음만 나타내는 진짜 교회다운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서로 간의 갈등이나 아무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 인간들의 모임에는 항상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문제가 없으면 우리는 영원한 주님의 교회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죄성을 가진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문제든지 직면하여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고 그 말씀 안에서 십자가를 보게 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되돌려지는 은혜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말씀이 그렇게 만드신다. 진리의 성령께서 십자가에 근거한 교회를 그렇게 이끄시기 때문이다(20220619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롬81.1603-16 그리스도 안에서 문안(2022061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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