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서 세 번째 강론
로마서 1:5-7
성도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제목으로 로마서의 강론을 처음 시작하였다. 로마서의 서두에서 앞으로 로마서가 어떤 내용으로 전개되는가를 처음부터 핵심적으로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복음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아들로 이미 구약에서 약속하신 것으로 구약 성경을 근거한 것이라고 나타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분별된 바울 사도가 로마에 있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냈었는데 이제 그 대상이 누구인가를 밝히고 있다.
이런 점에서 로마서는 편지 형식으로 기록된 것이다. 편지 형식이라고 해서 어떤 문학 형태의 하나로 취급해서 해석하자는 말이 아니다. 문학적인 장르를 잘 안다고 해서 성경 해석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편지 형식으로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생각할 것은 편지를 받아 보는 일차 독자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5절에 보면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라고 하였다. “그로 말미암아”는 4절에서 말씀한 약속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고 밝힌다. 로마서에서 “은혜”(헬, 카리스)라는 말을 처음 쓰고 있는데, 헬라어 ‘카라’(기쁨, 행복)에서 온 말이다. 즉 하나님의 기쁨을 주셨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성경에서 은혜란 ‘자격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쁨을 위해 값없이 베푸시는 호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은혜라는 말과 사도의 직무를 연결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은혜에 대해서 광범위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사도라는 직무와 연결하여 생각해 보면 이 말씀은 ‘사도 직분이라는 은혜’를 의미한다. 즉 사도라는 직무가 주어진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라는 뜻이다. 바울은 단순히 하나님을 섬기는 정도가 아니라 유대교를 믿는 열심을 가지고 교회를 박해하는 자였다. 그런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다고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13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5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갈 1:13-16)
그러면 왜 이렇게 사도의 직무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는가? 우리 성경에는 5절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라고 번역하였기 때문에 이 말씀을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전도를 통해 우리가 예수를 믿어 순종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식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표현하자면 ‘그의 이름을 나타내어 모든 이방인들이 믿음의 순종에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라는 말이다. 믿음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순종이라는 뜻이다. 즉 우리가 믿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소유하고 있는 순종 안에 거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사도의 직무를 은혜로 주셨다는 뜻이다.
물론 여기서 “순종”(헬, 휘파코에)이라는 말도 어떤 명령이 주어질 때 우리가 그 말에 따르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 ‘순종하라’(헬, 휘파쿠오)라고 번역되는 동사는 전치사 ‘휘포’(아래에, 곁에, 의해서)와 ‘아쿠오’(듣다, 귀기울이다. 소문을 내다)가 합성된 단어로 히브리어 ‘샤마’(주의깊게 듣다, 조심스럽게 듣다, 찬송하다, 선포하다, 소리를 내다)에서 온 말이다. 신명기 6:4-6에서 듣고 새긴다는 의미로 쓰였다. 즉 순종이란 ‘듣고 말씀에 자세히 귀를 기울인다’는 뜻이고 ‘마음에 품고 새긴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나의 어떤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주체가 되어 믿음에 의해 들려져 마음에 품고 새겨지는 것을 뜻한다. 누가도 이와같은 관점에서 이렇게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7)
우리 성경에 “이 도에 복종하니라”라고 번역하였는데 거기에 보면 각주가 있는데 “헬, 믿음”이라고 되어 있다. 즉 “이 믿음에 복종하니라”라고 번역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헬라어 성경에는 ‘피스티스’(믿음)로 쓰고 있다. 바울 사도는 다른 구절에서도 이와 같은 의미의 말씀을 많이 말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하나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라고 번역되었기에 우리의 믿음인 것처럼 오해되는데 실상은 ‘하나님 아들의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믿음 안에 소유되어서 살게 된 것이 구원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에서 믿음은 선물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데 그 믿음을 소유하게 된 원인이 은혜라는 것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이제 바울은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6절)라고 하면서 이어서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7절)라고 썼다. 바울 사도가 편지를 쓰면서 로마에 있는 그들을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 ‘사랑하심을 받은 자’, ‘거룩하게 된 자’(성도)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은 받은 자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 ‘하나님의 거룩을 입은 자들’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첫째, 부르심을 입고 그 다음 단계로 사랑하심을 입고 셋째로 거룩하게 된 자라는 식으로 어떤 단계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같은 의미를 반복해서 강조하는 표현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레위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하나님만 거룩하신데 바울은 로마에 있는 자들을 거룩하게 된 자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울의 이 선언은 하나님의 복음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언약을 온전히 성취하신 십자가로 인해 자기 백성들을 거룩하게 만드셨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나 거룩을 입은 자들 그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며 로마에 있는 교회라는 뜻이다.
바울 사도는 오늘날 우리가 ‘주성교회’라고 간판을 붙인 것과 같은 식으로 로마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로마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주님의 몸인 교회로 존재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것이었다. 고린도전서 1:2에도 보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였고(참고 고후 1:1), 에베소서 1:1에서는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참고 골 1:2)이라고 하였으며, 빌립보서 1:1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라고 썼다.
주님의 몸된 교회이며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한 일원이 로마에 있다는 뜻이다. 그 도시에 살면서 로마에 있는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모든 사람들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로마, 빌립보, 골로새라는 도시에 산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고 또한 하나님의 거룩을 입었으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 중요한 사안이다. 이 땅에서 어디에 있는가? 어느 교회에 속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의 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다는 의미는 우리의 머리가 잘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로 얹혀져 그 머리만 인정되는 사람들이 교회라는 뜻이다. 이 땅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된 그의 몸으로써 존재하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그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의 교회이다. 바울 사도는 그들에게 편지를 써서 복음을 드러내고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복음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만, 하나님의 거룩함을 입은 자들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만 알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을 선포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인지, 하나님의 거룩함을 입은 자들인지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아니 하나님의 복음이 항상 이 확인을 하게 하실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주님의 몸인 교회로 모인다는 것은 이것을 늘 확인하는 모임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인지 아니면 나의 이기적인 사랑으로 스스로를 도배하는 자인지, 하나님의 거룩함을 입은 자인지 아니면 나의 잘남과 자존심이라는 거룩으로 포장하고 있는 자인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인지 하나님의 부르심과 상관없이 내가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하는 자기 최면에 세뇌되어 있는 자인지 늘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소유하고 계신 것이 구원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십자가로 이루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선포하였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전 3:23)
바울 사도는 1절부터 시작한 문장을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 하나님의 거룩을 입은 자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여 긴 문장을 이제 끝맺고 있다. 하나님의 복음에 근거한 은혜, 믿음, 순종 안에 함께 있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거룩, 부르심에 의해 된 것이지 죄인들의 노력이나 힘에 의해 쟁취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선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로 인한 결과로 평강이 주어진다고 선언한다. 오늘날 누가 하나님의 복음을 알 수 있고, 누가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된 자인가? 약속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이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에 의한 은혜를 계속적으로 입는 자이다. 그리고 그 은혜에 의해 계속 평화, 평안을 누리는 자이다. 이런 자를 거룩함이 된자, 성도라고 한다(http://cafe.daum.net/joosung 강론/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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