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서 두 번째 강론
로마서 1:1-4
약속의 아들
인간은 각자 자기가 원하는 좋은 소식이 있다. 즉 자기가 좋아하는 복음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모든 인간은 선악의 체계 속에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선이냐 악이냐를 판단하므로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좋은 것만 선이다. 이런 인간들에게 복음이란 오직 나를 위한 좋은 소식이어야 한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복음이란 나에게 합당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복음을 말한다.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라는 입장에서 말이다. 종의 입장에서 주인이 계시며, 보냄을 받은 사도라는 입장에서는 보내신 분이 존재하신다는 것이다. 종은 주인의 것을 말할 수밖에 없고 보냄을 받은 자는 보내신 분의 뜻을 전달할 수밖에 없다. 바울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구별되었다면 오직 하나님의 복음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로마서를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지가 명백하게 규정되어 버렸다. 그것은 바로 내 복음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성경에서는 서두가 몇 개의 문장으로 되어 있지만 헬라어 본문에는 1-7절까지가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이 긴 본문이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바울이 로마에 보내는 서신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을 얼마나 한 마디로 거침없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로 로마서의 이 처음 본문은 복음의 핵심을 잘 나태내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 사도는 2절에서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라는 말로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하나님의 복음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며 또한 바울 자신이 기록하고 있지만 결코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성경”이란 구약성경을 지칭하며 “선지자들”이란 단지 선지서를 기록한 선지자들을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의 상대자가 되었던 구약의 모든 인물들이 다 선지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음이란 구약과 전혀 상관없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구약의 모든 언약의 인물들에게 주신 약속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바울 사도와 히브리서 기록자는 구약에 주신 말씀들이 복음이었다고 쓰고 있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갈 3:8)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히 4:2)
이제 구약에서 선지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주신 그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3-4절).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은 바로 “그의 아들에 관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 아들은 육신을 따라서는 다윗의 혈통(후손, 씨)으로 이 땅에 오셨다.
4절에서 우리 성경에 “성결의 영으로”(프뉴마 하기오쉬네스)라고 하였는데 직역을 하면 ‘거룩하게 하시는 영을 따라서’라는 말이다. 즉 성령을 따라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하시어 그 능력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 개정성경에서는 “선포되셨으니”라고 번역하였는데 이전 개역한글판에서는 “인정되셨으니”라고 번역하였었다. 헬라어로 ‘호리스덴토스’라는 말인데 원형이 ‘호리조’(지정하다, 제한하다, 확정하다, 인정하다)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선포되셨다는 의미보다 ‘확정되셨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 이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고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와 변화 산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미 드러내셨다(마 3:17, 17:5). 새삼스럽게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었기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확정적으로 드러나 입증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아들되심이 부활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육신으로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지만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내신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언약을 창세 전에 이미 준비하셨었다(엡 1:4-6).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셨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이 단순히 어떤 한 시대, 한 인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를 다 아우르는 언약이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실 때에는 언제나 살아 있는 자와 맺으신다. 죽은 자라면 죽은 자를 살려내서라도 살아 있는 자와 언약을 맺으신다. 언약의 후손을 이어가신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다윗의 후손으로만 오셨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언약을 주셨으며 그 언약을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이끌어 오셨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모든 언약은 ‘은혜 언약’이다. 행위 언약이란 없다. 다시 말해서 죄인들에게 어떤 행위를 요구하고 순종하면 언약이 이루어지는 그런 방식의 언약은 없다.
언약에는 반드시 쌍방의 계약에서 어느 한 쪽이 깨면 그 언약이 깨어진다는 의미에서 죽음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언약을 말씀하실 때에는 언제나 ‘내 언약’이라고 말씀하셨기에 하나님께서 언제나 책임지시기로 하셨다. 환언하자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걸고 언약을 하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에는 하나님의 죽음이 전제되어 있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죽음으로 언약을 온전히 성취하셨으며 부활로 그 언약이 확정되셨음을 나타내셨다. 하나님의 언약을 근거로 주신 것이기에 바울이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선언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내용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신 아들에 대한 말씀이다. 이점은 예수님께서도 직접 이렇게 선언하셨다.
37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38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39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 46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 5:37-39, 46)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 제자들에게 성경을 풀어주시면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25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5-27)
히브리서 기록자는 아들로 말씀하신 이것이 마지막 계시가 주어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의 이 땅에 오심 그것이 언약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였기 때문이다.
1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1-2)
그래서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회당에서도 로마의 감옥에서도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되 그 내용은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였다.
2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행 17: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행 28:23)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종교 지도자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은 스스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다윗의 후손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브라함의 후손, 다윗의 후손이었기에 천국은 당연히 자신들의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선언하신 것은 그들이 생각한 천국이 천국이 아니라는 폭로였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다는 뜻도 이스라엘이 아들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너희들은 이제 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는 고발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지 않으면 누구도 하나님의 아들의 역할을 할 자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언약을 온전히 성취하신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한다. 구약에 수 많은 메시아(그리스도)가 있었지만 진정한 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고 가리키는 존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다윗의 후손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다(갈 3:16).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는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개념이다(요 5:18). 그래서 성경은 천국을 “아들의 나라”(골 1:13)로 표현하며, 하나님의 복음을 “아들의 복음”(롬 1:9)이라고 한다. 그 약속의 아들 안에서만 천국, 곧 생명을 누릴 수 있다(갈 3:29).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엡 3:6)
25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26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27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롬 16:25-27)
바울 사도는 이 핵심적인 복음의 내용을 마지막에 다시 언급하며 로마서를 마무리 하였다(http://cafe.daum.net/joosung 20190414 강론/김영대).✞
롬02.0101-04 약속의 아들(2019041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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