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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론 86
요한계시록 22:1-5
생명수 강의 생명나무
요한계시록 21장에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한 아름다운 영광이었다. 그것을 요한 사도를 통해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찬란히 빛나는 성의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그다음에는 성의 내면의 영광스런 특징들을 묘사하였다. 그리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중심부를 아주 자세히 묘사한다. 본문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라는 교회요 성도에 대한 묘사의 극치요 절정이다. 동시에 신구약 모든 계시의 완성이요 약속의 성취에 대한 모든 결과를 보여준다.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1절). “또”라는 표현의 헬라어 ‘카이’는 ‘그리고, ~와, 또, 그러나’라는 뜻인데 21:27에서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라고 한 말씀을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설명한다는 뜻이다.
“생명수의 강”이란 생명의 물인데 그것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물은 창조 언약에서 보여주셨던 궁창 위의 물을 지칭한다. 곧 진리의 말씀을 가리킨다. 그러기에 “수정같이 맑은”이라고 말씀한다. 순수하고 완전한 진리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창조 언약에서 말씀한 에덴동산 네 강에 대한 말씀이다.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창 2:9-14)
창조 언약의 말씀을 가지고 에스겔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하였다.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 7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 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겔 47:1, 7-8, 12)
성전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친히 이 땅에 성전의 실체로 오실 것에 대한 말씀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 7:37-39)
창조 언약으로 보여주셨던 에덴동산의 네 강의 기원에 대한 말씀이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로 풀어 주셨고 예수님께서 초막절에 성전에서 그 진리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로 주어져 완성하심을 나타내셨다. 그래서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라고 하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질 진리의 영에 장악된 상태를 말씀하셨다.
결국 성경이 말씀하는 것은 창조 언약의 완성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이 땅의 성전을 중심으로 행하는 자기 의는 결코 진리의 말씀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이미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21:22)라고 말씀하였다. 즉 지상의 건물 성전 중심의 율법적 행위로 이룬 자기 의가 삭제되고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하게 된 상태가 하나님 왕국이라는 의미이다.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죽음으로 이루신 것 안에 다스림을 받는 상태가 생명이라는 뜻이다.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2절). “길”이라는 표현의 ‘플라테이아’는 ‘넓은 장소나 길’이라는 뜻이다. “좌”라고 번역된 이 말은 ‘엔튜덴’으로 ‘여기서, 이곳으로부터, 그런 까닭에, 이 근원으로부터’라는 뜻으로 기원이나 근원을 나타낸다. 그리고 “우”라고 번역된 ‘에케이덴’은 ‘거기서부터, 그곳에서부터’라는 뜻으로 오른쪽이라는 의미는 없다.
따라서 생명수가 길 가운데로 흐르고 강 왼쪽과 오른쪽에 생명나무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생명수가 넓은 곳으로, 사방으로 흐르고 거기서부터, 그것을 근원으로 하여 생명나무가 있다는 의미로 에덴동산에서 발원한 네 강이 흐르는 목적이 완성되었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서 에덴에서 네 강이 흘러 온 땅을 적시겠다고 하신 창조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진리의 말씀으로 온 땅을 충만하게 적셔 말씀이 온전히 성취되었음 나타낸 것이다.
만약 생명나무가 강 좌우에 있다면 당연히 ‘나무들’이라고 복수로 표현해야 하지만 단수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창세기 2장에서 생명나무가 하나였다는 것이고 또한 선악의 나무로 있던 것이 이제 오로지 생명나무 하나로만 존재한다는 것을 말씀한다. 곧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만 충만하게 된 상태이다. 창세기 2:9에서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가 아니라 ‘생명나무가 선악의 지식 나무로 있더라’라는 말씀으로 이해하였는데 이제는 선악의 지식 나무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그 본질적인 생명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계시는 곳이 하나님 왕국이라는 뜻이다.
어린 양 예수님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진리의 영이 오시게 되고 그 진리의 영이 말씀으로 충만하게 만드시는 상태가 목마르지 않는 상태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앞의 “맺되”라는 표현의 ‘포이에오’는 ‘만들다, 창조하다, 행하다’라는 뜻이고, 뒤의 “맺고”라는 말의 ‘아포디도미’는 ‘넘겨주다, 나누어주다, 양보하다, 돌려주다, 팔다, 갚다, 보상하다’라는 뜻이다. “달마다”에서 “달”은 ‘멘’으로 ‘달, 새달, 월’이라는 뜻이고, “마다”의 ‘헤카스토스’는 ‘각각의, 모든’이라는 뜻이다. 즉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수로 달로 상징되는 어둠의 영역에 있던 모든 자들이 새로운 달이 되어 구원 얻어 그 생명을 넘겨주는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다.
“열두 가지 열매”란 말에서 “가지”라는 말은 의역으로 표현된 것으로 ‘열둘이라는 열매’로 하나님의 아들들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라는 말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열둘이라는 열매, 즉 하나님의 아들들을 창조하셨고 그 아들들이 진리를 나누어주고 넘겨주게 되는 것을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에서 “치료”라는 말의 ‘데라페이아’는 ‘치료, 봉사, 섬김’이라는 뜻이고 “만국”이란 ‘에드노스’는 이미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방인’을 지칭한다. “잎사귀”로 번역된 헬라어 ‘퓔론’은 ‘플레오’(풍부하다)에서 온 단어로 “그 나무”, 즉 생명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연합되었다면 하나님의 아들들로 풍성한 열매가 되는데 그들이 또 다른 자들, 이방인들, 죄 가운데 있는 자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봉사하고 섬기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3절). 죄의 권세에 매인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안으로 부르심을 입고 은혜로 살리심을 받아 그 다스림 안에 거하는 상태를 하나님 왕국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그 안에서는 저주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처음 것들에 매여 있을 때는 죄와 사망의 법이 우리 가운데 넓게 흐르고 있어 땅의 성전을 중심으로 율법적 행위로 자기 의를 위해 살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요 성도는 진리의 성령에 의해 생명수의 강으로 우리 배에 넘쳐나게 된다. “종”이란 주인의 운명과 함께 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셨던 그 십자가의 길을 함께 가는 자가 교회요 성도이다.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4절). 죄인은 하나님을 볼 수 없었다. 출애굽기 33:20-23에 보면 “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였다. 그렇다면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라는 말씀은 생명의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다.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창 32:30)라고 하였는데 야곱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살았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허벅지 관절”을 치셨다고 하였는데(창 32:25) 히브리어 ‘야레크’는 ‘허리, 넓적다리, 기초, 몸’이라는 뜻으로(창 46:26, 출 1:5) 야곱이 몸을 쓰지 못하는 상태로 죽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야곱의 고백은 겉사람 야곱은 죽고 속사람 곧 영의 사람 이스라엘로 살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겉사람이 죽어야 하나님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한다. 짐승의 표를 받는 자들과 대조된 표현이다(13:16-18). “이마”는 사상과 정신으로 곧 머리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죽고 그 이름이 된 교회요 성도가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 안에 있는 상태가 하나님 왕국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소유가 되어 진리의 말씀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5절). 이 말씀은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21:23),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21:25)라는 말씀을 반복하여 강조한 것이다. 창조 언약으로 주신 만물들은 다 모형이고 그림자로 주신 것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그 실체가 온전히 성취되어 다 드러났다면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왕 노릇” 한다는 ‘바실류오’라는 말로 ‘통치하다, 다스리다’라는 뜻으로 육체가 죽고 난 먼 미래의 상태가 아니라 지금 이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린다는 의미인데 곧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 되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세세토록”이란 헬라어로 ‘에이스 호 아이온 호 아이온’이다. ‘에이스’는 ‘~안으로, ~을 향하여, ~을 위하여’라는 뜻이고, ‘아이온’은 ‘영원’이라는 뜻이다. 즉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 자가 아니다. 비록 지금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을 품고 하늘의 생명이 되어 진리의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는 충만한 상태로 존재하게 된 에덴이요 예루살렘의 완성으로(참고 슥 14:9-11) 하나님 왕국이다. 이러한 하나님 왕국에 사는 자가 또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20240804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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