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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론 83
요한계시록 21:9-11
어린 양의 아내
거룩한 새 예루살렘 성을 문자적으로 보고 천국에서 헌금과 봉사, 전도를 많이 한 사람의 차등이 있어 어떤 이는 예루살렘 성 안에 살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성 밖에 거하게 된다고 해석하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일관성 있는 말씀으로 주어졌다. 그러므로 언약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이것을 요한 사도는 1:1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선언하였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9절). 17장에서 일곱 대접에 대해 말씀한 것을 보면 천사가 심판을 받을 큰 음녀를 소개했었던 반면 본문에서는 어린 양의 아내인 신부를 소개한다. 음녀인 큰 성 바벨론과 어린 양의 신부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대조하여 말씀한 것이다(17:1-5).
그러기에 심판과 구원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는 한 가지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이 완성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 말미암는 심판이 함께 베풀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의로운 심판은 영광스러운 구원의 또 다른 한 면이다. 어린 양의 아내가 나타나기 전에 음녀의 심판을 먼저 보여준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이것은 순서적으로 음녀, 바벨론 성에 대한 심판이 일어나고 어린 양의 아내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구원을 이루신다는 말씀이 아니라 묵시의 차원에서 한꺼번에 있는 일을 설명하기 위해 나열된 것뿐이다.
때문에 바벨론에 살면서 동시에 새 예루살렘에 거하는 삶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바벨론 성에 사느냐 새 예루살렘 성에 사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됨’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음녀가 어린 양의 신부인 아내로 되었는가 하는 문제이고 바벨론 성에서 새 예루살렘 성이 되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새 예루살렘 성이 된다는 것은 바벨론 성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늘의 음성은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18:4)라는 선언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는 십자가에 의해 날마다 어린 양의 신부로 새 예루살렘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사람을 구원시키지 못해서 안달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건물 교회에 나오게 만들고 그 가운데서 구원받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우기면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경쟁을 부추기지만 성경은 어린 양의 아내, 거룩한 새 예루살렘 성, 곧 교회가 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그래서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보이신다고 하였는데 2절에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라고 말씀한 바와 같이 어린 양의 신부의 모습을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보여준다.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10절). 17:3에서 요한 사도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큰 성 바벨론을 보았다. 광야는 물이 없는 곳으로 오직 윗물을 먹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음녀가 아랫물을 가지고 윗물을 흉내 내어 다스리는 곳이나 성령께서 요한 사도를 이끄신 것처럼 교회를 하늘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아 하나님의 권위와 권세 안에 있음을 상징하는 “크고 높은 산”으로 이끄신다. 이런 점에서 에스겔 선지자도 높은 산에서 성전의 환상을 보았던 것을 이렇게 전하였다.
2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에 이르러 나를 매우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에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3 나를 데리시고 거기에 이르시니 모양이 놋 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 있더니(겔 40:2-3)
측량한다는 것은 말씀을 기준으로 말씀이 아닌 것에 대하여 심판하시기 위함이다. 하늘 성전을 보여주심으로 이 땅의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행한 율법적 행위의 의를 무너뜨리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율법적 행위에서 나온 인간의 의가 무너지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하나 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들이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요 성도이다.
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18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19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사 65:17-19)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심으로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이전 것”이란 율법을 지키는 자기 행위를 의로 삼고 하나님의 영생을 취하려고 하였던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동참 된 것이 새로운 창조로 인한 기쁨과 즐거움이다. 그래서 이전 것이 기억되지 않는 상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고 어린 양의 아내이다. 이사야 선지자도 신부, 아내의 이미지로 이렇게 예언하였다.
5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6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 54:5-6)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을 거부하고 어김으로 신부가 되지 못하였다는 사실에 드러났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선포하였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1-32)
언약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중에서 참 이스라엘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언약의 말씀이 온전히 성취되었다. 이런 점에서 “어린 양의 아내”라고 한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린 양으로 대속의 죽음을 이루셨다는 것을 전제한 표현이다. 음녀 바벨론은 땅에 속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 가운데 아랫물을 먹는 존재인 반면, 어린 양의 아내 거룩한 성 예루살렘인 교회는 하늘에 속한 존재로 하나님의 권위와 권세 안에서 윗물을 먹는 존재이다.
교회란 결코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인간이 교회라고 간판을 걸었다고 해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함께 죽음으로 생성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라고 한 것이다. 여기서 “내려오는”의 ‘카타바이노’는 현재형으로 계속 내려온다는 의미로 쓰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는 자들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요 아내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11절)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자들이다. 출애굽기에 보면 성막을 이렇게 표현하였는데 요한 사도는 그 성막, 성전의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한다.
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36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37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출 40:34-38)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하나님의 영광”을 성막으로 보여주셨던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셔서 그 성막, 성전의 온전한 뜻을 십자가 죽음으로 나타내셨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 죽음의 영광을 자기 백성에게 넘겨주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셨다.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 17:21-24)
“지극히 귀한 보석”이란 헬라어로 ‘리도스 티미오스’인데 직역하면 ‘값비싼 돌, 귀한 돌’이라는 뜻이다. 귀한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기초석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렇게 말씀하였다.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0-22)
결국 하나님께서 창조를 통해 보여주셨던 그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 2:21-25)
성경에서 교회에 대한 신랑과 신부의 비유는 신부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남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부를 선택하시고 무한히 사랑하신다는 것에 있다. 우리 스스로 거룩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 안에 신부로 아내로 부르심의 은혜를 입었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다.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 5:22-27)
(20240707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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