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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론 49
창세기 17:1-14
할례 언약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절).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는데 바로 앞 구절에서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16:16)라는 말씀과 연결하여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라고 말씀한다. 단순히 13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말이 아니라 아브람이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할 가능성이 없을 때 99에 하나를 더한 100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드러내시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엘 샤다이’라고 하셨다. 아브람이 이스마엘을 출산할 때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가 13년이 지나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언약을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엘 샤다이’는 언약과 관련된 표현인 것을 알 수 있다. 즉 무엇이든지 다 가능하다는 전능이 아니라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의미이다. 전능은 언약 언어이다.
3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창 28:3-4)
10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창 35:10-12)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 땅에 오실 언약의 실체이신 메시아에 대해 선포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루실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이렇게 보자면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라는 말씀은 아브람에게 완전하게 행동하라는 명령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행하여”의 ‘할라크’는 ‘가다, 오다, 걷다’라는 뜻이고 “완전하라”의 ‘타밈’은 ‘온전한, 흠 없는’이라는 뜻이다. 직역하면 ‘너는 내 얼굴 앞에서 걸어 온전함이 되어라(완전함이어라)’라는 말이다. 흠 없고 온전함은 죄인과 관계없는 표현이다. 이루지 못할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명령이 아니라 언약의 말씀이다. 즉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 아브람이 온전하신 하나님(신 32:4, 마 5:48)과 하나 되게 하시겠다는 뜻이다.
같은 단어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5:22)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타밈)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할라크)”(창 6:9)라는 말씀은 단순히 에녹과 노아가 그렇게 살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그들을 품었기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의 모습으로 드러났다는 의미이다. 결국 흠 없는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함을 이루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 언약”이라고 17장에서만 9번 언급하여 강조하셨다(2, 4, 7, 9, 10, 13, 14, 19, 21절).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2-6절). “내 언약”이란 인간의 소관이 아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세우시고 이루시는 언약이라는 말이다. “아브람이 엎드렸더니”라고 하였는데 히브리어 ‘나팔’은 ‘떨어지다, 죽다, 실패하다, 중단하다’라는 뜻이 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언약에 아브람은 죽은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언약의 대상자로 세우셨으나 실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맺는 언약이다. 아브람을 언약의 대상자로 세워 인간의 죄를 폭로하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에는 죄가 용납될 수 없음을 드러내신다. 이 때문에 아브람은 자기 행위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고자 하는 이스마엘을 낳아야 했다. 죽은 자가 죽은 자를 낳은 것이다. 결국 아브람에게 주신 언약은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흡수되어 새 언약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영원한 언약”이다(7, 13, 19절).
그렇다면 여기서도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2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4절),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6절)라고 하였는데 2절의 “번성”은 ‘증가하다, 확대하다, 성장하다’라는 뜻을 가진 ‘라바’이고 6절의 “번성”은 ‘파라’인데 ‘열매를 맺다, 결실하다, 결실이 풍부하다, 자라다’라는 뜻이다. 즉 번성하게 하시는 ‘라바’의 목적은 열매를 맺게 하시는 ‘파라’에 있다. 그 열매는 언약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단순히 아브람의 혈통에 의한 후손을 수적으로 많게 하시겠다는 것이나 아브람을 중심으로 한 민족을 형성하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번성하여 진리로 열매 맺게 될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여기서 쓰인 “민족”이란 히브리어 ‘고이’는 ‘이방 나라의 민족’이라는 뜻이다. 그 증거로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신다. 혼자 ‘고귀한 아버지’에서 ‘무리의 아버지’, 즉 여러 이방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전하는 아버지로 하나님께서 바꾸실 것이다.
이런 점에서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라는 말씀은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세워(출 19:6) 참 이스라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족속으로 불러 왕 같은 제사장들로 세우시기 위한 언약을 밝히신 것이다(벧전 2:9).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계 5:9-10)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7-9절). 하나님께서 이렇게 계속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아브라함이 믿을 수 있도록 확인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기억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 자신이 기억하기 위한 언약의 표를 무지개(활)로 주셨듯이 말이다(9:13-15).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라는 말씀은 땅 자체를 주시는 목적이 아니라 가나안 땅을 통해 영원한 기업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시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라는 말씀은 단순히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언약을 이루어 하나님 자신과 하나 되게 만드신다는 뜻이다. “지키라”라는 ‘샤마르’는 ‘지키다, 준수하다, 보존하다, 감시하다, 주의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마음에 품고 새기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아브라함의 마음에 새겨서 이루시겠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몸에 언약의 표를 하신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10-11절). “할례”란 히브리어 ‘물’은 ‘잘라내다, 조각내다, 파괴하다’라는 뜻이고 “포피”의 ‘바사르’는 ‘육, 육체’를 의미한다. 즉 육의 출산을 끊고 잘라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브람의 생식기를 잘라내는 할례라는 상징을 통해 육의 후손을 끊고 언약의 후손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내실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라고 하셨는데 남자는 씨 있는 자에게 언약의 표시를 둠으로 남자에 의해 씨 없는 여자는 남자에 의해 언약에 연합된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그래서 “언약의 표징”이다. ‘오트’는 ‘표적, 표시, 징조, 신호’라는 뜻이다. 할례 언약은 마음의 할례를 가리키는 표적으로 후에 할례 언약의 의미를 이렇게 말씀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신 10:16)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렘 4:4)
따라서 할례란 단순히 남자의 생식기에 표시를 하는 차원을 넘어서 마음의 할례, 곧 죄악된 육의 마음을 잘라내어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자 하신 언약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할례를 이렇게 전한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골 2:11)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빌 3:2-3)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12-14절). “집에서 난 자”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언약 안에 있는 집에서 난 자를 의미한다. “돈으로 산 자”란 히브리어로 ‘케세프’인데 생명의 값으로 치루는 돈이다(출 30:16, 레 25:51). 하나님의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생명을 속량하심을 이루신다. 그렇게 되면 집에서 난 자나 돈으로 산 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 없이 하나님의 의가 주어진다(롬 3:22, 10:12).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난지 팔 일 만에”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육으로 난 것을 하나님의 언약으로 완성하는 7에 하나를 더하여 새로운 창조의 날로 주신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신약에서 부활의 날로 나타낸다. “끊어지리니”라는 말 ‘카라트’는 ‘잘라내다, 언약을 자르다(맺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강조한다는 의미의 언어 유희이다. 죄악된 육의 마음을 잘라내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언약, 즉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없는 상태에 있음을 강조한 표현이다(20230806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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