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서 예순여섯 번째 강론
로마서 12:14-21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인간은 선악체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다. 선악의 기준이 자기중심적이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나를 위한 말씀으로 이해한다.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나를 위한’ 본문으로 해석한 내 뜻만 구현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하고 그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나의 뜻과 충돌한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누구도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이것을 우리의 죄라고 폭로한다.
하나님의 뜻은 한 마디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11:36)이라는 말씀은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에 기초하여 연루되어 있고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영광으로 귀결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이 땅의 모든 것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설명하기 위한 배경이다.
이런 점에서 자기중심적인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 땅의 존재는 하늘에서 오신 분을 알 길이 없다. 예수님께서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라고 하셨다. 믿는다는 것이 내 소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늘에서 오신 분이 하늘의 사람으로 바꾸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12:1)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드리신 것이 전제된 말씀이다.
그러므로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14절)라는 말씀에서 “너희”란 단순히 성경을 읽는 나 자신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의해 자신을 산 제물로 드렸기에 이제 자신의 몸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 된 “너희”이다. 그래서 그 의미를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그러면 이제 로마서 그다음 본문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이제까지 말해왔듯이 삶의 실천이나 윤리가 아니라는 전제를 가지고 본다면 오늘 본문 같은 경우도 상당히 난감해하면서 어렵게 느낀다. 어렵게 느낀다는 것은 다른 말이 아니라 우리의 본성이 문자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습성 때문에 명령이 아닌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우리의 논리나 이성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어렵지만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라는 말씀대로 성령께서 알게 하시는 믿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부분적으로는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근원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행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본문을 어떤 입장에서 보아야 하는가? 내가 행한다는 차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들이고 또한 행하시는 것들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즉 “너희”가 연합되어 한 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일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성도의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악하고 계신 결과로 나타나는 것들이다(참고 갈 2:20).
이렇게 본다면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이다. 산상수훈을 통해서 언약의 복을 선언하시면서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것이 복이라고 말씀하셨으며(마 5:3-12) 실제로 십자가로 하나님 왕국을 보여주셨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그다음 구절들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들이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15-18절)라고 하였는데 죄인 중에 이렇게 할 수 있는 자가 있는가? 높은 데 마음을 두지 않고 낮은 데 처한다는 것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다(빌 2:5-8).
악을 악으로 갚는 존재는 우리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다. 십자가로 선한 분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셨다. 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계속해서 ‘~하지 말라’라는 표현을 통해 악한 이 세대와 대조해서 ‘~하라’라는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 된 교회요 성도의 모습을 나타낸다.
바울 사도는 계속하여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19-20절)라고 이어간다. “내 사랑하는 자들”이란 바울이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말이 아니라 이미 1:7에서 밝혔듯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아 함께 성도가 된’ 입장에 있다는 의미이다.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라는 말씀은 구약을 인용한 것인데 신명기 말씀으로 추정된다.
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신 32:35)
레위기 19:18에 보면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라고 하였다. 율법에서 이렇게 원수에 대한 말씀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원수’란 나의 원수가 아니라 언약의 원수이기 때문이다(참고 레 26:25, 호 8:1). 원수 관계를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인간이 선악의 나무를 취한 후 하나님께서 뱀에게 하신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라는 말씀 속에 언약을 담아 주셨다. 선악의 나무를 취한 인간은 악의 세력과 하나가 되었기에 그 관계를 하나님께서 원수 관계로 만들어 여자의 후손을 통해 승리를 만들어 내실 언약을 하셨다.
이 원수 관계는 십자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원수라는 것이 드러났고 결국 마귀를 아버지로 삼고 있었던 ‘나’라고 하는 존재가 원수라는 것이 드러나고 말았다(참고 요 8:44, 롬 5:10). 따라서 원수를 만드시고 율법을 주심으로 그 원수를 하나님께서 친히 진노 아래 두시는 십자가를 보여주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란 원수를 자기 백성으로 만드신 것이다. 그러면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인용된 잠언의 말씀과 시편에서 이와 같은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는 말씀을 보자.
21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22 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잠 25:21-22)
7 내 구원의 능력이신 주 여호와여 전쟁의 날에 주께서 내 머리를 가려 주셨나이다 8 여호와여 악인의 소원을 허락하지 마시며 그의 악한 꾀를 이루지 못하게 하소서 그들이 스스로 높일까 하나이다 (셀라) 9 나를 에워싸는 자들이 그들의 머리를 들 때에 그들의 입술의 재난이 그들을 덮게 하소서 10 뜨거운 숯불이 그들 위에 떨어지게 하시며 불 가운데와 깊은 웅덩이에 그들로 하여금 빠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소서(시 140:7-10)
숯불을 머리에 둔다는 이 표현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본문의 문맥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다고 하였으니 우리가 스스로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자세가 아니라 하나님께 맡긴다는 의미로 하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원수가 주리면 먹이고 목마르면 마시게 함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 아래 그대로 맡겨 둔다는 의미이다. 머리에 놓는다는 것은 악의 머리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가운데 있음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뜻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이신 한 몸 된 교회와 대조된 표현이다. 이렇게 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모습이 드러나는 교회요 성도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21절)라고 선언한다. “악에게”라고 번역하였는데 헬라어 성경에서는 ‘휘포’(~아래)를 쓰고 있다. 직역하면 ‘악 아래’라는 말이고, “선으로”라고 번역하였는데 헬라어 성경에서는 ‘엔’(~안에)이라는 말로 ‘선 안에’라는 뜻이다. 정리하자면 ‘악 아래에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상태이고 선 안에 연합된 상태에서만 이긴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면 “이기라”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헬라어로 ‘니카오’(굴복시키다)인데 ‘니케’(승리)에서 유래한 단어로 신약에서 악의 세력들과의 전쟁을 전제로 표현인데 계속 정복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야곱과의 관계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 32:28)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겨루어 이겼다’라는 이름 ‘이스라엘’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 안에 승리의 의미를 담은 언약이었다.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시듯이 죄인을 하나님의 자기 백성으로 바꾸시는 것은 참 이스라엘이 하시는 일이라는 뜻이다. 표면적 유대인이 아닌 이면적 유대인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고(2:28-29) 십자가로 이기셨고 또한 이기고 계신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계 5:5)
모든 인간은 죄악 아래에서 악에게 멸망을 당하는 상태에 있다. 스스로 악에서 벗어나 선으로 악을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선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승리를 은혜로 허락하신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미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라고 선언했었다. 내 몸의 행실을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한 몸으로 행하시는 행위만 하나님이 용납하시는 행위이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0)
그래서 드러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이다(20220227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 신약강론 > 로마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68강 로마서 13:8-10 율법의 완성 (0) | 2022.03.13 |
---|---|
제67강 로마서 13:1-7 위에 있는 권세 (0) | 2022.03.06 |
제65강 로마서 12:9-13 거짓 없는 그 사랑 (0) | 2022.02.20 |
제64강 로마서 12:3-8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0) | 2022.02.13 |
제63강 로마서 12:1-2 온전하신 뜻 (0) | 2022.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