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의 비유 강론 05
마태복음 13:33
누룩 비유
겨자씨 비유는 두 절이었고 누룩 비유는 단 한 절이다. 겨자씨 비유에서도 보았지만 간단하게 한 절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본 비유도 누룩이라는 모티브가 보이지 않게 그 누룩의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가지고 흔히 하나님 나라가 보이지는 않지만 은밀하게 그 나라를 확장하고 영향력을 크게 할 것을 보여 주는 비유라고 해석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본 비유에서도 여자, 가루 서 말, 누룩, 부푼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풀어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앞의 겨자씨 비유에서도 살펴 본 것처럼 우선 문맥 속에서 먼저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씨를 뿌린 자가 진정한 언약의 후손(씨)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좋은 밭에 뿌려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시는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밀과 독보리 비유를 통해 추수 때까지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악한 자의 아들들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인 것을 보여 주셨다.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는 이러한 비유를 연속으로 말씀하신 문맥 속에 있다. 그러므로 누룩 비유도 우리가 누룩이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나중에는 엄청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것으로 갑자가 앞에서 말씀하신 비유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전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누룩 비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겨자씨 비유에 이어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33절)라고 하셨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라는 표현은 이 비유 역시 앞의 비유와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누룩 비유도 대부분 좋은 의미로 하나님 나라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중에는 엄청나게 큰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고 보기 때문에 여자는 어머니같은 성령을 의미하고 가루 서 말은 진리의 떡 혹은 믿음, 소망, 사랑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며 또는 삼위일체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이해할 수 있는 성경적 뒷받침이 어디에 있는가? 이런 해석은 전혀 성경적 근거가 없다. 아무리 영적으로 훌륭하고 좋고 해석으로 은혜로운(?) 설교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성경의 전체적인 논리와 부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낱 은혜를 끼치려는 인간적인 교훈에 불과하다.
또한 우리는 이 비유를 이해할 때 누룩을 작은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가루에 들어가는 누룩은 서 말에 비해 작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천국이 작은데 나중에는 엄청나게 크게 드러나며 그 영향력이 클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 냉정하게 성경적으로 생각해 보자. 하나님 왕국이 예수님 당시에는 미약하고 미미하게 드러났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역사 속에서 강하고 크게 드러난 적이 있는가? 천국은 좁은 길이며 좁은 문으로 미약하고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지 않게 언제나 그렇게 흘러오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큰 영향력으로 세상에 드러나지 않지만 여전히 완전한 상태로 이 땅에 임하여 있을 뿐만 아니라 지하수처럼 복음은 역사 속에 잔잔히 전해지고 있었다.
출애굽기 16:16에 보면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라고 하였는데 한 사람이 하루 먹을 수 있는 분량 한 오멜은 약 2~2.5 리터정도 되는데 열 오멜이 한 에바이고 한 에바는 세 스아이고 그것이 바로 신약에서 서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창세기 18:6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을 때 아브라함이 송아지를 잡고 고운 가루 세 스아로 떡을 하여 드렸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셨을 때도 기드온은 염소 새끼와 함께 가루 한 에바(세 스아)로 무교병을 만들어 드렸다(삿 6:19). 사무엘상에 보면 한나 역시 사무엘의 젖을 뗀 후에 수소 세 마리와 함께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로 하나님께 드렸다(삼상 1:24). 이 모두가 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였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세 스아, 혹은 한 에바는 한 마디로 나그네 대접에서 모두가 다 흡족한 상태로 채워지는 것이며 그것이 곧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의 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가루 서 말이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께 드려진 왕국을 나타내 준다.
그렇다면 이제 누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하나님께서 소돔성에 있던 롯을 찾았을 때 롯은 무교병으로 대접하였다(창 19:3).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떡은 후일 출애굽 때에 어린양의 피에 의해 애굽에서 건짐받는 것을 기억하기 위한 떡으로 하나님께서 온 이스라엘이 먹도록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출 12:15)
이후 이스라엘은 매년 유월절이 지난 후 무교절에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떡을 쓴 나물과 함께 먹음으로 하나님께서 누룩과 같은 그들의 죄를 제거하시고 애굽에서 빼내신 구원을 기억하여야 했다. 예수님은 이 누룩을 가지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교훈으로 말씀하시며 그들의 가르침을 주의하라고 하셨다(마 16:5-12). 그래서 누룩에 대한 성경의 입장은 대부분 누룩을 제거하고 주의하라는 것이었다.
7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9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갈 5:7-10)
본문에서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라고 하였는데 넣는다는 말은 헬라어로 엥크립토(engkrupto)인데 ‘숨기다’, ‘섞다’, ‘감추다’라는 뜻이다. 그러면 다른 비유에서는 사람으로 표현하였지만 왜 유독 이 비유에서는 “여자”로 표현하였을까? 물론 여자들이 음식을 준비하기 때문에 밀반죽을 여자가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가루 서 말 속에 누룩을 숨겨서 섞어 넣는 여자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성경에서 제시하는 의미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계 2:20)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은 성도들로 하여금 음행을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도록 꾀는 자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러한 여자를 음녀로 묘사하고 있다(계 17:3-5). 가루 서 말 속에 누룩을 숨겨 섞는 여자는 바로 이러한 음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께 드려지기에 합당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에게 흡족한 가루 서 말이라는 하나님 나라에 여자가 누룩을 숨겨 넣어 퍼지게 함으로 천국을 변개시키고 확장된 것처럼 속이려는 음녀의 활동이 추수 때까지는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 안에 늘 존재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누룩 비유를 통해 경고하신 말씀이다.
좋은 씨를 뿌린 사람의 비유에서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에는 하나님의 아들들 뿐만 아니라 악한 자의 아들들도 함께 공존한다는 것을 말씀하셨는데 악한 자의 아들들이 단순히 독보리로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왜곡하고 진리를 비진리로 변개하도록 마귀가 겨자씨와 누룩을 섞어 넣어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추수 때, 즉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까지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도록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누룩을 넣지 않은 떡으로 이 땅에 오셨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누룩을 섞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언약의 말씀을 우리의 행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왜곡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통해 언약을 온전히 성취하셨다. 그것만이 율법을 완전하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생을 누리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은혜로 받는 것에 의해서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만 누룩을 넣지 않은 생명의 떡이시다.
6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8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고전 5:6-8)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분인데 마귀는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으로 천국을 설명하고 보여 주려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는 눈에 보이는 것에 만족하도록 만든다. 이 땅에서 물질적인 복을 누리고 명예가 드높여지며 세상에서 크게 되고 그 다음에 죽어서는 천국에 가는 것이 구원이라고 속인다. 그래서 십일조 꼬박꼬박하고 기도 열심히 하고 주일성수 빠짐없이 하는 교회생활을 신앙생활이라고 속이며, 예수 믿는 자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누룩을 집어 넣은 비진리를 복음이라고 퍼뜨린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나타내신 하나님 나라에는 이러한 일이 얼마든지 있는 현상이기 때문에 언약 백성들이 결코 그러한 비진리에 현혹되지 않고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도록 주신 비유이다(20161204 강론/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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