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강론/예수님의 비유

마태복음 13:1-9,18-23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불편한 진리 2018. 6. 16. 16:50

예수님의 비유 강론 02

 

마태복음 13:1-9,18-23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오늘 본문의 비유는 흔히 씨 뿌리는 비유”, 또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로 알려진 것인데 어떤 이는 여러 땅의 비유라고 제목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분명 본문은 땅에 초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본 비유의 핵심은 에 있고 씨를 뿌리는 자에게 있다.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1-3a)라고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

이 비유는 마가복음 4:1-25, 누가복음 8:4-18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마태와 마가는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온 일에 이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 누가는 씨 뿌리는 비유를 먼저 기록하고 모친이 찾아온 일을 기록하고 있으나 세 복음서 모두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일과 연결하여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날이란 같은 날로 보아야 하고 하나님 나라의 가족에 대해 말씀하신 같은 문맥에서 이해해야 한다. 즉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신 비유이다.

비유의 내용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3b-8)라는 것이다. 흔히 이 비유를 가지고 우리가 돌밭의 돌과 가시떨기를 제거하여 좋은 밭이 되어야 한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스스로 결코 좋은 밭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의 권세에 매인 존재이기에 말씀의 결실을 스스로 맺을 수 있는 자는 없기 때문이다(참고 시 14:2-3, 3:10,23).

그러므로 이 비유를 우리가 좋은 밭이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와는 전혀 관계 없는 것이다. 특히 11절에서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이 비유는 우리가 좋은 밭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비밀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비유라고 해서 쉽게 생각하고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만 이해하려고 해서는 결코 이 비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천국의 비밀이 허락된 자와 허락되지 않은 자를 갈라놓고 계신다. 또한 9절에서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단순히 귀가 있다고 해서 다 들을 수 있는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은 사람의 생각이나 율법을 지켜 행하는 열심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만 알 수 있다.

씨를 뿌릴 때에 씨가 떨어지는 네 밭에 대해서 말씀하신 후 각각의 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수님께서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18-23)라고 풀어 주셨다. 비유의 내용과 그 해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비유의 내용

비유의 해석

길 가에 떨어져 새가 먹어 버렸다는 것(4)

악한 자에 의해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긴 자

(19)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져 싹이 나왔으나 해가 돋은 후 타서 말라 버린 것(5-6)

말씀을 들을 때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 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20-21)

가시떨기 위에 떨어져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다는 것(7)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22)

좋은 땅에 떨어져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다는 것(8)

말씀을 듣고 깨달아 결실을 맺는 자(23)

이스라엘의 농사는 씨를 흩어 뿌린 후에 땅을 갈아 엎기 때문에 농사를 하기 전에는 그곳이 길이 될 수도 있고 또한 가시떨기나 돌밭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곳에 씨를 뿌리고 갈아 엎지 않은 곳은 길 가가 될 수 있고 또한 가시떨기나 돌밭이 되어 씨가 제대로 결실을 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비유를 들었을 때 그들은 충분이 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본문에서 천국 말씀이라고 하였고(19), 마가복음 4:14에서도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라고 하였고, 누가복음 8:11에서도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뿌린다는 말은 꺼내서 보여 준다는 말이다. 즉 천국이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드러내서 보여 준 것이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언약의 진정한 후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뿌려 십자가에 내어 주신다는 의미를 이 비유를 통해 나타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비유의 제목을 씨 뿌리는 자의 비유라고 한 것은 씨를 뿌리는 자에게 초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 가지 상태의 밭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세상이 둘로 갈라져 드러났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표적을 보고서도 사탄에 속한 것으로 보는 무리들이 있다. 인간은 평소에 자기 학력과 성품을 가지고 양심과 윤리도덕으로 포장된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낸다. 진리가 주어지기 전까지 인간은 자기가 어두움인지 모르고 살아간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니 모든 인간이 죄 아래 있는 어두움이라는 본질이 드러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니 모든 인간이 진리와는 상관없는 거짓의 아버지 마귀에게 속한 존재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길 가, 돌밭, 가시떨기 밭은 씨가 뿌려지기 전에는 그 밭의 상태가 드러나지 않는다. 길 가에 씨가 뿌려지나 그것을 악한 자에게 빼앗긴다. 본문에서 악한 자를 마가복음 4:16에서는 사탄이라고 하였다. 씨가 뿌려지지 않았다면 사탄에 의해 말씀을 빼앗기며 살아가는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 또한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잠시 기쁨이 있는 것 같으나 실제 환난이나 박해가 오면 말씀으로 인한 기쁨을 유지할 힘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근심과 걱정으로 인해 넘어지는 것이 인간이다. 세 가지로 표현하였지만 결실을 맺을 수 없는 상태라는 점에서 하나이며 결국은 다양한 우리의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죄의 권세에 매인 모든 인간의 마음 상태이다.

그러면 결실을 맺는 좋은 밭은 무엇인가? 23절에서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라고 하였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 선포된 말씀을 듣고 깨달아 안다는 것이고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나라가 되신다는 것을 깨달아 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천국 비밀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이신 것을 깨달아 안다는 것으로 맺는 결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앞에서 예수님께서 12:50에서 이미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장악되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게 되는 결실을 맺는 것이다.

여기 100, 60, 30배를 상징적인 숫자로 생각하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본문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세 가지 마음 상태에 있는 것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일이라는 뜻에서 말씀하고 있다. 천국의 비밀이 알려지고 드러나는 것은 밭이 어떻게 하느냐로 되는 문제가 아니라 씨가 뿌려져야 된다는 것은 전적으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내어 주시는 뿌림이 있어야 된다. 천국의 비밀이 뿌려지고 알려지지만 모든 사람들에게서 다 환영을 받으며 결실을 맺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4/3이 허비된 것이 아니라 100, 60, 30배의 결실을 이루어 낸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렇게 말씀이신 언약의 후손()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내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행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 진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기도하고 봉사하며 좋은 것으로 심어야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식으로 다음과 같은 본문을 함께 인용하면서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둔다고 인과응보를 주장하나 그것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이 아닌 불교적 사고방식이다.

 

7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6:7-8)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 9:6)

 

본문에서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은 그 다음 구절에서 말씀하는 바와 같이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썩어질 것을 거두나 성령을 위해 심어야 성령에 의해 영생을 거둘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육체의 것을 심어 영생을 거둔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말씀이다. 또한 고린도후서 9:6 말씀도 헌금을 강요하기 위한 본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는 적게 심어서 많이 거두고 많이 심어 적게 거두는 그런 일은 결코 없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이다

결국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의 권세에 매여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존재였는데 언약의 진정한 후손()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으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뿌려 십자가에 내어 주신다는 것을 이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 것이었다(20180506, 강론/김영대).



비유02. 마 1301-09,18-23 씨 뿌리는 자의 비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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