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사무엘하

27.사무엘하 24:1-25 다윗의 인구조사

불편한 진리 2014. 12. 15. 14:03

27(2013.8.18)

사무엘하 24:1-25

다윗의 인구조사

 

본문 1절에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하는 짓이 못 마땅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특별히 혼내줄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다윗의 마음을 살짝 충동질 하여 인구조사를 하게 해서 그것을 빌미로 다윗과 이스라엘에게 진노를 내리시려고 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말씀이다. 그러나 역대상 21:1에 보면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라고 말씀한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으로 말하는 것은 서로 상반된 내용이 아니라 사단이 다윗을 격동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막지 않고 허용하셨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을까? 결국 다윗이 범죄 하는 것을 두고 보신 것인데 그냥 두고 보셨으면서도 죄를 물어서 진노하시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말씀을 보는 이들이 그것을 이해하도록 25절에서 잘 말씀해 주고 있다.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고 재앙을 내리심으로써 재앙이 무엇으로 그치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즉 번제와 화목제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재앙이 그치는 것을 이스라엘로 하여금 경험하게 하고자 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의 모든 마음을 번제와 화목제로 이끌어가고자 하셨다.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를 번제와 화목제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끌어가기 위해 우리의 범죄를 잠시 잠간 그냥 두고 보셨다는 뜻이다.

그런데 성경은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 자체를 문제 삼고 있지는 않다. 모세도 인구조사를 두 번씩이나 했지만 한 번도 하나님께서 진노를 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인구조사를 명령하셨었다. 그러면 다윗은 하나님께서 인구조사를 하라는 명령을 하지도 않았는데 계수한 것이 문제인가?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구조사를 하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요압의 말 속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요압이 왕께 아뢰되 이 백성이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3).

다윗이 인구조사를 계획한 것은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의 부강함과 번성함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윗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도 인구조사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자신들이 얼마나 강성하고 커졌는가를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많은 수를 힘으로 여기는 사고방식과 연결된 인구조사였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에 대하여 일절 말씀이 없으셨다는 것이다. 인구조사가 끝나자 오히려 다윗이 마음에 찔려서 하나님께 고백한다.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10).

이때 하나님께서 갓 선지자를 보내셨다. 그리고는 용서를 언급하신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재앙을 말씀하시고 다윗으로 하여금 한 가지를 선택하도록 하셨다. 다윗이 자책하는 마음이 있고 자신의 죄를 통감한다면 상황을 달게 받아들이며 자신의 잘못에 대한 징계를 받겠다는 각오로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맞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선택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내가 고통 중에 있도다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14).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께 사죄하였는데 긍휼이 크신 하나님이 용서가 아니고 재앙을 셋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삼일 동안 전염병이 내려 칠만 명이 죽었다. 그러자 다윗은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17)라고 하였다. 이렇게 자신은 백성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며 하나님께 항변하고 있는 다윗의 죄가 하나님께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하나님은 다윗 개인의 일 때문에 백성들에게 전염병이라는 재앙을 내리신 분이 아니다. 이 일에 다윗 따로 백성들 따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인구조사를 통해 드러난 다윗의 죄가 단순히 다윗만의 죄가 아니라 모든 백성들 속에 있는 죄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 칠만 명을 죽이셨던 것이다.

그리고 16절을 보면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있는지라라고 기록한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의 천사가 여부스 사람의 지역에 등장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의 지휘로 가나안 땅을 정복해 나갈 때에 가나안 지역 중앙에 정복하지 못한 성이 여부스 족속의 성이었다. 후에 여부스성을 정복한 사람이 다윗이었다. 다윗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온전히 정복하고 여부스성을 빼앗아 다윗성으로 삼아 이스라엘이 부강하고 번성한 나라가 되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부강하고 번성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자랑할 때에 여호수아부터 사사시대를 지나면서도 해결하지 못했던 여부스 족속을 물리치고 그 성을 다윗성으로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가장 잘났다고 자랑하는 여부스 지역에 여호와의 사자가 서 있는 것이다.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아뢰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18)라고 권면하였다. 갓 선지자는 다윗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교만의 극치인 지역, 죄의 사고방식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지역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게 하였다. 즉 자신들의 교만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자신의 낮아짐,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는 겸손함을 표현하라는 것이었다.

19다윗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 20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왕과 그의 부하들이 자기를 향하여 건너옴을 보고 나가서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21이르되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하니 다윗이 이르되 네게서 타작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라 하는지라 22아라우나가 다윗에게 아뢰되 원하건대 내 주 왕은 좋게 여기시는 대로 취하여 드리소서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땔 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 하는 도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19-22). 아라우나는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다. 농사짓고 사는 사람이 돈 다 바치고 소 다 바치고 쟁기까지 다 바친다. 다윗이 자신의 마당에 와서 제사드리겠다는 말을 듣고 아라우나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그러나 다윗은 아라우나의 것을 받지 않고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24)라고 기록하고 있다. 역대상 21:25에 보면 다윗은 그 터 값으로 금 육백 세겔을 달아 주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25)라고 하였다. 다윗이 횡포를 앞세우지 않고 제 값을 주고 땅을 사는 지극히 당연한 이러한 행동을 통해 왕으로서의 면모와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의 모습을 보여 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 그리고 그 제사와 기도를 통해 재앙을 내리는 것을 멈추셨다.

이러한 본문을 가지고 제사와 기도가 재앙을 멈춘 것으로 이해하면 곤란할 것이다. 다윗의 제사와 기도 때문이 아니라 다윗이 제사를 드리고 기도를 한 이런 방식을 통해 하나님께서 재앙을 멈추심으로 자비와 은혜가 누구로부터 오는가를 보여 주신 것이었다. 더 나아가서는 이 장소를 통해 주어질 언약을 위한 계시가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여기까지 이끌어 오신 것이었다. 궁극적으로 다윗이 값을 치르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이곳이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렸던 곳이었고(22:2) 후에 솔로몬이 성전을 세우는 장소가 된다(대하 3:1). 결국 다윗의 범죄로 말미암아 주어진 계시는 하나님이 정하신 장소에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즉 이 장소가 성전의 장소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이 누군가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타내신 것이었다.

다윗을 통해 주신 이 계시는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다. 성전이신 아니 성전보다 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12:6)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성전의 기능이 온전히 회복되고 완성되었다. 죄인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완성되었다. 이것을 새 언약이라고 한다. 새 언약이란 이전에 하나님께서 주셨던 모든 언약의 완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다윗이 경험한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보여 주고자 하신 것은 새 언약의 완성이다. 이 일을 위하여 다윗이 마귀의 충동을 받아 인구조사를 하는 일을 잠시 두고 보셨던 것이다. 그것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표현이 1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라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었지만 다윗 그도 메시아가 될 수 없음은 명확하다. 그를 통해 보여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베풀어지는 자리 그곳이 단순히 장소의 거룩을 보여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 세워질 성전이 궁극적으로 누구이신가를 보여 주고자 하셨다. 그는 다윗이 아닌 오실 여인의 후손이며 언약을 성취하실 메시아가 오셔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입는다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것이 믿어졌고 구원을 경험한 자가 그리스도인이다(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