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사무엘하

22.사무엘하 19:1-43 다윗 왕의 귀환

불편한 진리 2014. 12. 9. 20:43

22(2013.6.30)

사무엘하 19:1-43

다윗 왕의 귀환

 

본 장은 압살롬의 반역에 의해 왕궁을 떠나 도망을 갔던 다윗이 돌아오는 내용이다.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한 부분은 다윗을 맞으러 나오는 개인에 대한 일들이고 또 한 부분은 이스라엘 지파와 유다 지파에 관한 일들이다.

압살롬의 죽음으로 인하여 자신의 죄를 더욱 깊이 발견하면서 다윗이 애통해 한 일이 백성들이 보기에는 반역자 일지라도 자기 자식에 대한 애정 때문에 애통해 하는 것으로 보여 이해하기 힘든 일로 받아들였다. 이에 요압이 백성들의 마음을 대변하며 다윗 왕에게 충고를 한다. “5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 드리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6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5-6). 요압의 충고대로 다윗이 성문에 나가자 그 소식은 전체에 퍼졌고 백성들은 성문에 나왔지만 압살롬을 따랐던 자들은 도망하였다.

 

다윗이 다시 돌아올 때에 맞으러 나온 사람 중에 시므이와 시바가 있었다. 시므이는 다윗이 도망 갈 때에 쫓아와서 저주를 퍼부었던 사람이다. 단순히 조롱이나 비난 정도가 아니라 돌을 던져가며 모든 사람이 듣도록 큰소리로 외치며 저주했었다. 사무엘하 16:7 이하에 보면 7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8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삼하 16:7-8)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다윗을 저주하였다. 그랬던 시므이가 다윗 왕이 귀환하자 왕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19시므이가 왕에게 말했습니다. ‘내 주여, 저의 죄를 마음에 품지 말아 주십시오. 왕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셨을 때, 제가 저지른 죄를 기억하지 말아 주십시오. 20저의 죄를 제가 압니다. 그래서 요셉의 집안 중에서 제가 제일 먼저 내려와서 왕을 모시는 것입니다. 내 주 왕이시여!’”(19-20/ 쉬운성경).

다윗을 저주할 때의 시므이는 당당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언급하였지만 정작 다윗에게 선처를 구할 때에는 전혀 하나님을 언급하지 않는다. 저주할 때에는 자기 마음대로 저주를 하더라도 오히려 다윗의 귀환을 맞이하면서 선처를 구할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근거해서 구하여야 했었다. 그러나 시므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모습이다(시바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과 그 언약을 알지 못하는 죄인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다. 다윗은 죽기 전에 시므이를 솔로몬의 처단에 맡긴다(참고 왕상 2:9).

다음은 므비보셋이 등장한다. 므비보셋은 발도 씻지 않고 옷도 빨지 않았으며 수염도 깎지 않은 모습으로 다윗 왕을 맞이하였다. 이는 다윗이 겪고 있던 고난의 상황에 그대로 동참하였다는 표시를 그대로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다윗 왕이 돌아온 것만으로 만족한다면 오히려 깨끗하게 수염을 깎고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 왕을 맞이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므비보셋은 다윗 왕이 알아주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왕 앞에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러면서 시바의 모함에 대하여 다 고함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그러자 다윗은 시바의 땅을 므비보셋이 함께 나누어 가지도록 지시하였으나 므비보셋은 이렇게 말한다. “므비보셋이 왕에게 말했습니다. ‘시바에게 땅을 다 주십시오. 저는 내 주 왕께서 집에 평안히 돌아오신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30). 어쩌면 므비보셋의 이 말은 다윗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시바에게 준 재산은 다 자신의 것인데 왜 반만 돌려주느냐 하는 항변으로 들린다. 므비보셋 역시 다윗 왕 앞에 인간의 자존심을 한껏 내세우는 죄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다음은 바르실래라는 사람이 로글림에서 다윗을 영접하기 위해 요단으로 왔다. 그는 아주 부자였으며 아주 늙은 사람이었다. 다윗이 마하나임에 있을 때에 다윗을 돌보아 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다윗은 바르실래에게 같이 예루살렘으로 갈 것을 요구하였지만 바르실래는 거절하면서 오히려 자기 아들 김함을 데리고 갈 것을 요청한다. 이러한 바르실래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바르실래가 진정 겸손한 자라면 왕의 명령을 정중히 받아들이면서 순종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왕의 명령을 거절하면서 아들을 내세워 자신의 욕망을 자식을 통해 이루려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언약의 나라이다. 언약의 나라란 언약의 말씀 안에 있어야 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 이스라엘의 모습은 그렇지 못하였다.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하여 자기가 속한 유다 지파에게 기대는 모습을 보여 준다.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11).

다윗은 자기가 속한 유다 지파를 향해 어찌 골육이요 친지가 되는 유다 지파가 자신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에 대하여 책망했다. 그러면서 압살롬의 군대 사령관이었던 아마사(삼하 17:25)를 요압을 대신해서 군대 사령관으로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널 때에 유다 지파의 사람들이 길갈에서 다윗 왕을 맞이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유다와 나머지 이스라엘 모든 지파와 분열이 일어난다.

9절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 모든 지파 사람들이 서로 다투면서 이렇게 말한다. “9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사람들이 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은 우리를 블레셋 사람과 우리의 다른 원수들로부터 구해 주었다. 그러나 지금 왕은 압살롬 때문에 이 나라를 떠나 있다. 10우리가 왕으로 세운 압살롬은 이제 싸움터에서 죽고 말았다. 우리는 다시 다윗을 왕으로 세워야 한다.’”(9-10/ 쉬운성경). 결국 16절 이하에서 사람 1,000명을 데리고 나가서 요단강에서 다윗을 맞이한다. 사울 출신 지파인 베냐민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열 개 지파가 다 모였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모인 이유는 단지 다윗이 돌아오는 것을 환영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압살롬과 함께 반역을 일으켰다가 실패로 돌아가니까 압살롬을 지지했던 결과를 면해 보고자 다윗을 만나 환심을 사보려는 의도에 의견이 일치가 된 것이었다. 이스라엘 지파가 연합한 것은 절대로 왕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고 백성들을 위하여 의견일치를 본 것이 아니라 구겨진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서였다. 40절 이하에 보면 자신들이 무시를 당하자 그 본색을 드러내고 결국에는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다시 반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삼하 20:1 이하).

40절에 보면 40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과 함께 건너니라 41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 왕께 아뢰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둑하여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게 하였나이까 하매”(40-41)라고 기록하고 있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이한 것에 대하여 어찌 왕을 도둑하여라고 표현하였다.

그러자 유다 지파 사람들도 모든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 내느냐 우리가 왕의 것을 조금이라도 얻어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있느냐”(42)라고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죄악된 모습이었다. 이렇게 원인과 동기가 다윗으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놓쳐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을 하나로 만들 수 있어야 하지만 다윗 왕은 같은 지파요 종친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이스라엘 전체를 나누어놓고 보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원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의 모든 군상들을 철저히 폭로하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다윗이라는 왕을 다시 세우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윗이 압살롬보다 더 의롭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다시 왕으로 복귀시키는 것은 이스라엘이라는 언약의 나라에 인간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외모나 힘에 의해 결코 왕이 세워져서는 안 되고 오직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따라서 세워져야 하고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하나님의 언약을 보여 줄 수 있는 왕이어야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결국 다윗의 이러한 모습을 통해 성경이 보여 주는 것은 다윗보다 더 완전한 왕이 이 땅에 오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분이 바로 다윗의 혈통을 빌려 오셨지만 인간의 혈통을 거부한 모습으로 성령에 의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힘으로 로마의 정부와 유대 나라를 뒤엎고 오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힘에 의해 고난당하고 죽임 당하는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힘을 좇아 자기 살 길을 찾는 자가 아니라 세상의 힘에 의해 고난과 죽임을 당하더라도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자이다. 나 자신에게 이런 모습이 있는가? 말씀 안에서 날마다 확인하면서 살려주시는 은혜대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