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사무엘하

24.사무엘하 21:1-22 삼 년의 기근

불편한 진리 2014. 12. 15. 13:59

24(2013.7.14)

사무엘하 21:1-22

삼 년의 기근

 

사무엘하 21-24장은 다윗 왕국의 말기에 있었던 일들만 기록한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본 장은 다윗 왕의 통치 초기에 발생했던 삼 년간의 기근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뒤이어 다윗 왕이 블레셋 군대를 제압하고 승리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한다. 그렇다면 다윗 왕국 초기에 있었던 사건을 왜 다윗 왕국 말기에 해당되는 이 부분에 기록하였을까?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하고자 일부 학자들이 편집을 주장한다. 그래서 사무엘하 21-24장을 사무엘서의 부록이나 첨가 자료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사무엘하 21-24장은 다윗의 시를 중심으로 나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재앙(21:1-14) - 전쟁과 용사들(21:15-22) - 다윗의 시(22:1-51) - 다윗의 시(23:1-7) - 전쟁과 용사들(23:8-39) - 재앙(24:1-25)으로 본문을 나열한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역사적인 순서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적어도 24장은 다윗 왕국의 말기에 있었던 사건으로 생각된다. 성경 기록자가 이렇게 기록한 것에는 다윗의 시편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다윗을 어떻게 이끌어 오셨는가를 한꺼번에 정리하여 사울의 왕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왕조임을 보여 주기 위한 것에 있다.

다윗 왕국와 사울 왕국의 구별은 처음부터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는 그것을 올바르게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대다수였다. 아니 죄인의 습성들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압살롬을 지지하며 왕으로 세우고자 하는 일 뿐만 아니라 세바를 추종하는 일이 있었다. 여전히 사울 왕조의 재건을 꿈꾸는 자들이 이스라엘 중에 있었다. 그러므로 사무엘서 기록자는 사무엘서를 마무리하면서 사울 왕조의 패망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었고 다윗 왕조가 세워진 것에는 하나님께서 언약적 뜻을 명확하게 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사울 왕조가 종식된 당위성과 하나님께서 다윗 왕을 언약 가운데 선택하여 언약의 왕국을 세우신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증거하고자 했다.

 

이제 사무엘하 21장에서 다윗 왕국 초기 3년간의 심한 기근에 대한 기록으로 시작한다. 언약의 땅에 기근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11:17, 28:23-24 ). 사울 왕이 폐위되고 다윗이 왕으로 세워진 과정에서 3년의 기근이 발생한 것은 다윗 왕국의 치명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기근이 3년이나 지나도록 있었다는 것은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의 일하심에 둔감했는가를 알 수 있다. 언약의 땅에 기근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하나님께서 언약의 땅에 들어오기 전에 하신 율법의 말씀들을 다윗은 기억했어야 했다. 3년이 지나서야 다윗은 하나님께 묻는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1)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울은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과거에 어떤 언약을 맺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그저 자기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기브온 거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처단했던 것 같다. 여호수아 9장에 의하면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기브온 거민들이 멀리서 온 것처럼 하여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고 3일 후에 그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언약을 맺은 것을 파기할 수는 없었기에 이스라엘을 위해 물을 긷고 나무를 패는 일을 하는 종으로 받아들여 살게 하였다. 그런데 본문의 상황은 사울이 헛된 열심으로 하나님께 약속했던 기브온 거민들을 죽여 버리니까 그들이 억울하게 죽은 것이 안타까워 다윗 앞에 탄원서를 들고 나온 것이 아니었다. 기브온 거민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하여 문제를 삼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다. 이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기브온 거민들이 멀리서 온 것처럼 위장하여 비록 여호수아를 속이고 언약을 맺었을지라도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는 언약의 왕국에 합류될 수 있는 원리가 언약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셨고 그것을 통해 기브온 거민들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과 함께 거할 수 있었다. 이후 기브온 사람들은 다윗의 용사들 중에도 있었고(대상 12:4),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할 때도 함께 하였으며(7:5),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도 참여하였었다(3:7).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에 합류된 자의 모습인 것을 보여 준다. 그런데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한 헛된 열심으로 언약으로 보호를 받는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죄였다. 결국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것은 하나님의 언약 자체를 무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된다.

다윗도 이 일에 대하여 그다지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기근을 내리셨다. 사울을 왕의 자리에서 폐하시고 다윗을 언약의 왕으로 세우신 것에는 언약의 땅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으로 통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도 하나님께 묻는 것이 아니라 기브온 사람들에게 가서 묻는다. 그들의 요구는 이런 것이었다. “5그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영토 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6자손 일곱 사람을 우리에게 내주소서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목 매어 달겠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내가 내주리라 하니라”(5-6).

기브온 사람들이 7명의 목숨을 요구하였다는 것은 속으로 다 계획이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은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자신들이 선한 척 하고 있었다. 마치 엄청난 보상을 받아야 하는데 여호와 앞에서라는 말을 하면서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 해주겠다는 식으로 하여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일로 사울의 사람 7명이 죽임을 당한다. 신명기 21장에 보면 22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21:22-23)라고 하였다.

그런데 10절에 의하면 아야의 딸 리스바가 굵은 베를 가져다가 자기를 위하여 바위 위에 펴고 곡식 베기 시작할 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그 시체에 낮에는 공중의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게 한지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보리를 수확하는 때는 4월이고 비가 오는 우기는 10월이다. 즉 죽임을 당한 시신이 방치되는 것이 6개월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리스바는 6개월 동안이나 그 자리에서 있었다. 물론 자기 자식의 죽음 때문에 한 당연한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그의 행위를 통해 다윗을 깨우치시고 이스라엘 전체의 강퍅하고 완악한 마음을 깨닫게 하고자 하셨다. 이 일로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뼈도 찾아서 매달려 죽은 자들과 함께 사울 자손들의 뼈를 다 묻어주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이렇게 함으로 다윗이 왕이 되어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통치한다는 것이 먼저 사울의 사고방식을 거부하여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했다.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의 자손들을 죽임으로 원수를 갚은 것이 될지 모르지만 사울의 자손들에게는 또 다른 원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원수를 갚는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언약이 중요한 문제임을 다윗뿐만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아야 한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리스바를 통해 가르치시고 언약을 깨닫기를 원하셨기에 3년이나 기근을 허락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 15-22절은 단순한 전쟁의 영웅들을 언급한 것이 아니다. 22절에 보면 이 네 사람 가드의 거인족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다 넘어졌더라라고 하였다. 과거 다윗이 가드 사람 골리앗을 죽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이 결코 다윗의 위대함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 말씀으로 증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골리앗처럼 장대한 용사들을 다윗이 아닌 다른 신하들도 모두 죽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문을 기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골리앗과 장대한 자들을 죽인 사람들의 믿음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즉 다윗이 한 것을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인간의 힘에 의한 싸움이 아니라 인간의 승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것이 다윗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승리인 것처럼 이스라엘의 전쟁은 하나님께서 붙여주시는 전쟁이기에 하나님의 승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세운 다윗 왕을 중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분이 주신 언약 안에서 존재하는 자들임을 늘 고백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결국 다윗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 온전하지 못한 다윗의 계보를 통해 이 땅에 진정한 언약의 왕이신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 본문의 의도이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선물로 받은 모든 자들이 따라가야 할 길이다(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