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사무엘하

25.사무엘하 22:1-51 다윗의 승리 찬양

불편한 진리 2014. 12. 15. 14:01

25(2013.7.21)

사무엘하 22:1-51

다윗의 승리 찬양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라고 되어 있다. 본 장은 다윗의 찬양시이다. 모든 원수와 또한 사울의 손에서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구원을 노래하였다. 처음부터 다윗은 2이르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3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2-3)라고 노래한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바위, 나의 요새, 나의 구세주,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망대, 피난처라고 고백하였다. 다윗이 경험한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다. 그러면 어디로부터, 누구로부터의 구원인가?

또한 다윗은 이렇게 노래한다. “21여호와께서 내 공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갚으셨으니 22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함으로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23그의 모든 법도를 내 앞에 두고 그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24내가 또 그의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 25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의 눈앞에서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26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27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이다”(21-27). 그러면 다윗은 언제나 깨끗하고 완전히 의로운 존재였는가? 다윗은 구원받을 만큼 의로운 자였고 사울을 비롯한 다윗을 대적한 자들은 의롭지 못한 자들이었나?

먼저 원수가 누구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다윗을 구원한 것이 원수에게서의 구원이다. 그렇다면 다윗이 표현한 원수는 어떤 존재이며 누구인가? 1절에서 밝히고 있듯이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날에라고 말씀한 것을 보면 일차적으로 사울을 비롯하여 다윗을 대적하는 자들이 원수가 된다는 말이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다는 것은 다윗에게 언약을 주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다윗과 다윗의 집안을 영원히 든든히 서도록 언약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시에서 원수란 단순히 다윗을 대적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에 대하여 대적하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말은 결국 하나님의 원수가 곧 다윗을 대적하는 자요 하나님의 언약에 맞서는 자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자들은 늘 교만하다. 그래서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28)라고 다윗은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성경에서 교만하다는 것은 예의가 없다거나 상대방을 무시하고 자신을 드러내려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거부하는 마음을 말한다. 그것이 곧 마귀의 사고방식이요 정신이다.

그렇다면 다윗은 의로운 자였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을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사무엘하의 내용이었다. 성경은 다윗의 죄를 적나라하게 기록함으로 다윗이 의롭고 결코 죄를 짓지 않은 자였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다윗을 구원하셨는가?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을 주셨다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시고 그에게 언약을 주셨다는 것은 언약 안에서 다윗을 의롭게 보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을 다윗에게 주셨고 그 말씀이 다윗을 이끌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하셨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에 이끌린 다윗은 의를 따라 행할 수밖에 없었고 말씀에 이끌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 찬양은 다윗이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거나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노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상태에서 노래한 것이다(3).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바탕에서 가능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다윗의 이 찬양은 사무엘서 초두에 기록된 한나의 찬양과 대비된다. 한나는 사무엘이 태어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노래했다.

6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8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9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10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삼상 2:6-10)

한나가 사무엘을 주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렇게 보았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고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영광의 자리에 앉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이러하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고 산산이 깨어질 것이다. 아버지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던 다윗을 하나님께서 일으켜 왕으로 세우시고 그에게 언약을 주신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을 계시하시기 위함이었다.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만드시고 가난한 자, 없는 자, 연약한 자, 사람들이 원하는 영웅과는 정반대의 사람을 세워 하나님 자신의 언약을 드러내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이었다. 이제 다윗이 그 사실을 철저히 경험한 상태에서 이렇게 한나의 찬양을 답습하듯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사무엘하 21:17에 보면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들을 쳐죽이니 그 때에 다윗의 추종자들이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라고 하였다. 다윗을 추종하는 자들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등불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윗은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29)라고 하였다. 다윗의 임무는 자신이 등불이 될 수 없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등불이시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에 있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이유였다. 즉 다윗 자신은 영원한 왕이 될 수 없고 앞으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진토에서 일으켜 영광의 자리에 앉히실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을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 다윗을 통해 보여 주시고 하신 언약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노래는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는 것이지만 이 노래에서는 현재 주어진 구원을 감사하는 것에서 미래에 주어질 구원을 미리 내다보며 감사하는 것이다. 44절에서 다윗이 주께서 또 나를 내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나를 보전하사 모든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라는 말은 다윗이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을 포함한) 백성들이 다윗, 즉 다윗과 같은 언약의 왕을 섬기게 된다는 의미로 다윗 언약 안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원을 미리 내다보는 노래로 이해해야 한다.

다윗의 이 찬양에서 다윗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거부하는 자들에게서 건지신 구원을 나타낸 것이다. 그 원수들은 곧 하나님의 무시하고 언약을 거부하는 사고방식을 가진 자들이다.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자들은 압살롬과 세바를 비롯해 이스라엘 중에 무수히 산재되어 있었다. 그들이 바로 마귀의 손에 붙잡혀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다윗조차도 바로 그런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그러기 때문에 다윗도 메시아가 될 수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나마 오실 메시아를 보여 주는 존재에 불과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할 자는 하늘에서 오시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였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하늘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셨고, 십자가로 언약을 성취하셨다는 것은 이러한 다윗 언약 안에서 새 언약을 성취하신 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맨 마지막에 여호와께서 그의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하도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하였더라”(51)라고 찬양함으로 끝을 맺고 있다. 실로 다윗의 찬양은 단순히 자신이 원수의 손에서 건짐 받은 것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언약을 성취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실 메시아를 바라보고 미리 알려주는 계시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의 찬양을 통해 영원한 언약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고 그분 안에서만 그분이 이루신 구원을 경험하게 된다.(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