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출애굽기

59. 출애굽기 25:31-40 등잔대(그림 자료는 PDF파일에서 확인요함)

불편한 진리 2026. 4. 2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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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59강

출애굽기 25:31-40

등잔대

 

성막의 동쪽 출입구로 들어가면 뜰을 지나 내성소에 이르는데 오른쪽(북쪽)에 배치된 진설상에 대하여 우리는 상고하였고, 이제 진설상을 마주하고 있는 왼쪽(남쪽)에 위치한 등잔대에 대하여 살펴보게 되었다. 성막은 완전히 덮혀진 상태이기에 내부는 캄캄한 상태이다. 등잔대의 불을 켜 밝게 함으로 비로소 내성소에서 향을 피우는 것이라든지 진설상에 빵을 진열할 수 있는 작업을 할 수 있다. 제작 과정에 대한 말씀은 출애굽 37:17-24에 기록되었다.

“31 너는 순금으로 등잔대를 쳐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결하고 32 가지 여섯을 등잔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다른 세 가지는 이쪽으로 나오고 다른 세 가지는 저쪽으로 나오게 하며”(32-33절). “등잔대”(31절)의 ‘메노라’는 ‘등잔대, 장식 등불’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신약에서 헬라어로 ‘뤼크니아’라고 번역하였는데 우리 성경 요한계시록에서는 전부 “촛대”(계 1:12, 13, 20, 2:1, 5, 11:4)로 번역하였는데 등잔대에 기름을 붓고 심지를 놓았지 초를 꽂는 기물이 아니다. “순금으로 등잔대를 쳐 만들되”(31절)라는 말씀에서 “쳐”의 ‘미크샤’는 ‘망치로 두들겨 만든 제품’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등잔대는 여러 부품을 만들어 접착시킨 것이 아니라 금덩어리 전체를 일체형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한 덩이로 연결하고”(31절)라고 말씀한다.

 

 

“밑판”은 등잔대를 고정하는 제일 하단의 넓은 판을 가리킨다. “줄기”는 밑판 가운데서 뻗어 올라온 것으로 양쪽 옆에 가지들이 붙어 있는 지주를 말한다. 39절에 의하면 “등잔대와 이 모든 기구를 순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39절)라고 말씀하셨는데 “한 달란트”는 약 34kg이다. 등잔대만 아니라 나머지 모든 기구를 한 달란트로 만든다면 속죄소의 그룹 형상처럼 속이 빈 조형물임이 분명하다. ‘쳐서’(미크샤) 만들라고 하셨을 뿐만 아니라 만일 통금으로 제작하였다면 한 달란트가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33 이쪽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쪽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같게 할지며 34 등잔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35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되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며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며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게 하고 36 그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결하여 전부를 순금으로 쳐 만들고 37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33-37절). 이쪽 가지 셋과 저쪽 가지 셋, 즉 양쪽 6개의 가지 각각에 장식용 꽃잔을 3개씩 만든다. 한마디로 각각의 살구꽃 잔은 꽃받침을 가진 작은 꽃봉오리 모양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앙 줄기에는 셋이 아닌 넷이다. 그래서 “등잔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34절)라고 말씀한다. 이렇게 하여 꽃받침과 꽃을 합한 꽃봉오리 모양은 22개가 되고 줄기와 가지 6개의 위에 등잔을 7개 놓게 된다.

“살구꽃”(33절)의 ‘샤카드’는 ‘아몬드꽃’이다. 우리 성경을 번역하면서 가장 적합한 것으로 ‘살구꽃’으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창세기 43:11에서는 아몬드 나무(히, ‘샤케드’ : 명사)를 “감복숭아”로 번역하였다(개역한글판에서는 “파단행”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니까 동사 ‘샤카드’는 ‘경계하다, 감시하다, 깨우다, 지키다’라는 뜻이 있다. 예레미야서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샤케드) 가지를 보나이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샤카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렘 1:11-12)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아몬드나무가 보이도록 하시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의 말씀대로 지키고 경계하여 이루시겠다는 것을 나타내셨다. 이렇게 보자면 등잔대를 살구꽃, 다시 말해서 아몬드나무의 꽃 형상으로 만들게 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깨우고, 지켜 경계하며 언약의 말씀을 이루시겠다는 것을 나타내신 것이다.

민수기 16장에 보면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당을 짓고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250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대적하였다. 이때 각 지파의 지팡이를 증거궤 앞에 두어서 싹이 난 지팡이의 주인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선택된 지팡이가 아론의 지팡이였고 그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한다.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샤케드) 열렸더라(민 17:8)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아론을 통해 말씀하시고 희생 제사를 드러내시겠다는 것이다. 그것을 아몬드나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아몬드 열매가 맻히게 하셨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과 아론이 관계가 생명의 관계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내성소의 등잔대를 아몬드나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아몬드 열매(등잔)가 맺히는 모양으로 나타내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등잔대는 생명의 빛을 비추는 것으로 만들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첫째 날 창조하신 것이 “빛”(히, ‘오르’)이고(창 1:3) 넷째 날 창조하신 것이 “광명체”(히, ‘마오르’)이다(창 1:14). 히브리어 ‘마오르’는 ‘마’(접두어)와 ‘오르’(빛)의 합성어이다. 접두어 ‘마’는 히브리어 알파벳 ‘멤’인데 그릇을 뜻하는 철자이다. 즉 빛을 담은 그릇 또는 빛이 비추는 장소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런데 27장에 보면 이렇게 말씀한다.

 

20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마오르)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21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출 27:20-21)

 

성막의 성소에 ‘등, 등잔대 혹은 불’(출 35:14,28,37, 레 24:2, 민 4:9)로 묘사한다. 그렇다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 ‘마오르’는 단순히 빛을 담는 그릇이나 장소가 아니라 불을 밝혀 성소가 늘 밝게 유지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등잔대는 빛이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동시에 성소 자체가 창조하신 하나님을 품고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출 32:31-40). 거꾸로 말하자면 창조의 상태를 성막에 담아놓고 계시하신다. 그래서 요한은 이렇게 선언하였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요일 1:5)

 

언약궤 위의 속죄소는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한다. 이런 점에서 내성소의 등잔대가 있는 모습을 가지고 요한계시록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계 5:6)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을 “일곱 영”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언약의 말씀을 온전히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계 1:4, 3:1, 4:5). 따라서 대접을 쏟으실 수 있는 분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일곱 대접 재앙으로 언약의 말씀을 온전히 성취하심을 나타내신 것이다. 결국 빛이신 하나님께서 언약궤 위의 보좌에서 내성소의 등잔대로 계시된 빛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약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임을 당한 자들, 한 몸이 된 자들을 교회라고 한다.

 

13 촛대(등잔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 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등잔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등잔대)는 일곱 교회니라(계 1:13-16, 20)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로서 주인이시다. 13절에서 “사이에”라고 표현한 것은 ‘중앙, 한 가운데’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주인으로서 중앙, 즉 한 가운데 중심을 잡고 계신 것을 일곱 교회로 말씀하신 것이다. 바울 사도도 이렇게 선언하였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를 살리신 빛이시다.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엡 5:13-14)

 

또한 줄기 하나에 가지 여섯이 연결된 구조로 되어 일곱 개가 된다. ‘일곱’은 완전수로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일하심을 표현한 것이고, ‘여섯’은 사람의 수요 짐승의 수이다. 그렇다면 짐승과 같은 사람의 여섯이 일곱에 접붙임받은 것과 같은 모양이다. 요한복음에 보면 이렇게 말씀한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1-5)

 

하나의 진리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여섯과 같은 짐승이요 사람이 접붙임을 받아 연합된 것을 생명이요 구원이라고 말씀한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이렇게 선언한다.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1-3)

 

“38 그 불집게와 불똥 그릇도 순금으로 만들지니 39 등잔대와 이 모든 기구를 순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 40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38-40). “불집게”(38절)는 등잔의 심지를 교체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제사장들은 등잔대를 철저히 관리하여야 했는데 매일 짧아진 심지를 갈고, 타고 남은 재, 그리고 그 외 찌꺼기와 그을음을 청소해야 했다.

“불똥 그릇”(38절)은 뜨거운 심지와 재를 담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동일한 히브리어 ‘마흐타’가 번제단에서는 “불을 옮기는 그릇”으로 번역되었는데 그것은 번제단의 특수 비품(불똥 그릇)으로 아마 거기에 숯불을 담아 내성소로 가지고 들어갔을 것이다(출 27:3). 향단에 향을 피우고 등잔대의 새로운 심지에 불을 켜기 위함이다. 제단의 불똥 그릇은 놋으로 제작되었으나 등잔대의 불똥 그릇은 순금으로 제작되었다. ‘기름 그릇’(기름병)은 본문에 나오지 않지만 민수기에 보면 이렇게 말씀한다.

 

청색 보자기를 취하여 등잔대와 등잔들과 불 집게들과 불똥 그릇들과 그 쓰는 바 모든 기름 그릇을 덮고(민 4:9)

 

 

 

등잔대의 높이가 얼마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자료나 탈무드에 의하면 세 개의 발판이 있는 계단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좀 과도한 해석이라고 보고 적어도 앞에 기구를 놓는 단과 제사장이 올라서서 불을 관리하는 차원의 단이 한 단 정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면 등잔대를 어떻게 관리하였을까? 출애굽기 27장과 레위기 24장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20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21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출 27:20-21)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불을 켜기 위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 3 아론은 회막안 증거궤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4 그는 여호와 앞에서 순결한 등잔대 위의 등잔들을 항상 정리할지니라(레 24:1-4)

 

내성소의 등잔대 또한 대제사장의 지휘 아래 일반 제사장들이 관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깨끗한(순수한) 감람유를 짜내서 등잔에 사용하였다. “순수한”의 ‘자크’는 오직 성막 본문에서 기름과 향에만 사용되는 단어인데 이것은 찌꺼기나 불순물을 제거한 정결한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로 이해된다.

한편 등잔대에 불을 24시간 계속 지폈는지 아니면 저녁부터 아침까지만 지폈는지 성경학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양분되어 있다. 이것은 레위기 24:2-3에 기록된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2절), “아론은 회막 안 증거궤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3절)라는 말씀 때문에 생긴 논란이다. 2절은 종일 켜 놓으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낮이라 할지라도 성막은 창문이 없는 구조이기에 항상 등잔대의 불을 켜 두는 것이 상식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둠의 상태는 죄의 권세에 매여 있는 저주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성소에는 항상 등잔대의 불을 켜 야훼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상징적인 장소가 되어야 한다(20260426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출59.2531-40 등잔대(2026042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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