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출애굽기

58. 출애굽기 25:23-30 진설상(그림 자료는 PDF파일에서 확인요함)

불편한 진리 2026. 4. 2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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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58강

출애굽기 25:23-30

진설상

 

성막의 핵심인 언약궤가 놓인 지성소를 나오면 내성소로 이어지는데 여기에는 향단과 진설상과 등잔대가 놓인다. 성막의 입구가 동쪽이니 성막 뜰에서 내성소에 들어서면 정면(서쪽)으로 보이는 곳에 향단이 있고, 오른쪽(북쪽)에 진설상이 있으며, 왼쪽(남쪽)에는 등잔대가 배치된다. 성막 계시의 과정에서 진설상과 등잔대에 대하여 먼저 말씀하고 향단에 대해서는 30장에서 기록한다. 아마도 향품과 연관하여 계시를 주시기 위하여 향단에 대한 말씀이 후에 주어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제작 과정에 대한 말씀은 출애굽기 37:10-16에 기록되어 있다.

“23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너비는 한 규빗,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24 순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 테를 두르고 25 그 주위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고 26 그것을 위하여 금 고리 넷을 만들어 그 네 발 위 네 모퉁이에 달되 27 턱 곁에 붙이라 이는 상을 멜 채를 꿸 곳이며 28 또 조각목으로 그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라 상을 이것으로 멜 것이니라”(23-28절). 기본 틀은 “조각목”(23절), 즉 싯딤 나무로 “상”(23절)을 만들고 표면 전체를 “순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 테”(24절)를 둘렀다. “손바닥 넓이만한 턱”(25절)을 만들었다는 것은 약 8cm의 턱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대체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진설상은 다음 사진과 같은 것들인데 아마도 빵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없기 때문에 호떡 같은 것으로 제시한다.

“상”(23절)의 ‘슐한’은 ‘탁자, 식탁, 상’이라는 뜻이다. 크기가 “길이는 두 규빗, 너비는 한 규빗, 높이는 한 규빗 반”(23절)이라고 하였는데 미터로 환산하면 길이가 100cm 너비가 50cm 높이가 75cm이다. 기본 구조는 왼쪽의 그림과 같다.

 

빵을 놓는 진설상은 “순결한 상”(레 24:6)이라 불리고, 역대하 13:11에서는 “깨끗한 상”이라고 번역하였는데 히브리어로 보면 ‘슐한 타호르’로 레위기와 같은 표현이다. 또한 “떡을 진설하는 상”(히, ‘슐한 마아레케트’, 대하 29:18). ‘마아레케트’는 ‘아라크’(정돈하다, 배열하다)에서 온 단어로 ‘배열, 진열, 줄, 열’이라는 뜻이다. 열왕기상 7:48에서는 “진설병의 금 상”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직역하면 ‘얼굴의 빵’이라는 말이다. 민수기 4:7에서도 “진설병의 상”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얼굴의 상’ 혹은 ‘면전의 식탁’이다. 얼굴이 함께 있다는 것은 히브리식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그곳에 함께 하심을 의미한다(참고 창 3:8, 시 13:1, 104:29, 사 63:9).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사랑하신 고로 그 후손인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파님)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신 4:37)

 

“친히 인도하여 나오게 하시며”를 직역하면 ‘그분의 얼굴과 더불어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라는 말이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단순히 하늘에 계시면서 멀리서 끄집어내셨다는 것이 아니라 야훼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하여 구원을 이루셨다는 뜻이다.

그래서 30절에서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30절)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진설병”(히, ‘레헴 파님’)이라고 번역한 것도 직역하면 ‘얼굴의 빵’ 혹은 ‘면전의 빵’이다. 이런 점에서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라고 하였는데 ‘파님’을 두 번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시는 것을 강조한 표현이다. 그러니까 진설상은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식탁의 빵’이라는 의미로 이스라엘 안에 임재하신 하나님을 나타낸다. 레위기에 보면 이렇게 말씀한다.

 

5 너는 고운 가루를 가져다가 떡 열두 개를 굽되 각 덩이를 십분의 이 에바로 하여 6 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고 7 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각 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며 8 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9 이 떡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레 24:5-9)

 

1 에바는 약 22ℓ 정도로 한 덩이를 10분의 2 에바로 만들면 약 4.4ℓ가 되는데 2ℓ 병의 크기로 생각하면 두 배가 되는 엄청난 양의 크기이다(실제 빵의 크기를 가늠해 보자면 오른쪽 사진과 같다).

빵 하나가 이렇게 크기 때문에 안식일마다 만든 따끈한 빵을 포개서 쌓아 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탈무드나 유대 랍비들은 본체 위의 양쪽에 6칸의 빵을 놓는 독립적인 공간들, 즉 12개의 칸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실제 계시의 내용에는 진설상의 본체에 대해서만 말씀하고 있을 뿐 12개의 칸이 있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지 않는다. 유대 랍비들이 생각하는 진설상의 구조는 왼쪽 사진과 같고, 제사장이 빵을 진열하는 모습의 상상도는 아래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빵에 대해서도 상식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무교병일 것이다. 상 위의 양쪽에 6개씩 쌓아 총 열두 개를 진열한다. 그리고 각 빵의 줄 맨 위에는 정결한 유향을 “기념물”로 올려놓는다. “기념물”의 ‘아즈카라’는 ‘자카르’(기억하다, 씨 가진 남자)에서 유래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7일간 진열되었던 빵은 다음 안식일에 새 빵으로 교체되고 물린 빵은 제사장의 몫으로 “거룩한 장소”, 즉 성소 안에서만 먹어야 했다. 그리고 여기서 “화제”(히, ‘잇샤’)라고 번역하였는데 ‘음식의 봉헌물’로 이해하기도 하는데 아마도 빵에 놓인 유향을 화제로 태웠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레 2:2).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또한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확인시키시는 것이 된다(레 24:8).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다는 것은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성소에서 먹는 것으로 언약을 성취하시는 유일한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떡으로 오셔서 영원한 언약으로 성취하실 것을 기뻐하신다는 의미이다.

 

 

열두 빵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열두 지파의 이스라엘이 식탁을 함께 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속죄소에서 이스라엘과 만나는 것을 상징한다면, 진설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식사를 나눈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임하여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은 언약 안에서 화목의 상태를 계시한다. 그러므로 단순히 제사장이 빵을 진열하고 율법을 문자로 지켜 행하는 것이 아닌 성막의 진짜 의미를 안다면 문자의 율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는 것으로 언약은 성취된다.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1-12)

 

“어렸을 때”, 즉 율법의 문자를 행하는 상태는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도 어린아이와 같아 잘 알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찾아오시면(장성한 사람이 되면)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게 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아직 부분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자의 율법, 사람의 계명과 교훈, 율법적 행위를 온전히 버리게 하시면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상태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찾아오심으로 이 일이 온전히 성취되었다.

율법의 문자에 갇힌 죄인들은 그것을 이룰 수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기억하여 성취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원한 언약”(레 24:8)이라고 말씀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죽음으로 새 언약으로 성취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요 6:32-33)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요 6:48-51)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 12:3-6)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할 때 허기진 상태에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먹을 것을 요구하자 내성소에 진설되었던 빵을 주어서 먹었다(삼상 21:1-6). 이것은 단순히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성전보다 크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먹은 것이라는 의미로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서 다윗은 다윗 언약 안에서 단순히 빵을 먹은 것이 아니라 진설상의 빵이 상징하는 언약의 성취로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먹은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진리의 말씀을 먹는 교회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이 되었기에 진설상의 빵을 먹는 존재가 된 것이다.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3-4)

 

“또 조각목으로 그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라 상을 이것으로 멜 것이니라”(28절)라고 하셨는데 법궤의 두 채는 이동 중이든지 놓인 상태에서도 빼지 말라고 하셨다(출 25:15). 그래서 금향단과 진설상, 놋제단도 채를 늘 끼워 놓아야 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법궤 외에 다른 기구들에 대해서는 채를 빼지 말라는 말씀이 없다. 그래서 금향단이나 진설상을 배치할 때는 채를 빼서 따로 보관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상을 멜 채”(27절)라는 표현이 이동을 위해 채를 끼워서 사용하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법궤는 일 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들어가는 곳이라 채를 빼지 않고 둘 수 있지만 향단과 진설상은 실제 향을 피우고 빵을 배열하는 일을 생각한다면 채가 그대로 있으면 불편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채를 빼서 보관하는 것이 상식적이라고 본다. 다만 채를 밖에 두지는 않았을 것이고 내성소 어딘가에 보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성소 비품을 밖에 반출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구름의 이동과 더불어 신속한 운반을 위해서는 같은 공간에 보관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만들되 순금으로 만들며”(29절). 진설상을 위한 몇 가지 용기들을 제작하라는 계시가 주어졌는데 사실 정확하게 어떤 물건인지 쉽게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또한 복수로 표현하였기에 적어도 2개 이상씩이다. “대접”의 ‘케아라’는 ‘큰 접시, 대접’이라는 뜻인데 복수이므로 ‘대접들’이다. 빵을 각 칸에 넣을 때 사용한 열두 개의 빵 그릇일 가능성이 크다.

“숟가락”의 ‘카프’는 ‘손(발)의 바닥, 우묵한 곳, 권세, 지배’라는 뜻이다. 즉 손잡이가 달린 작은 종지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역시 복수로 표현하였고, 두 줄의 빵들 위에 유향을 놓았다는 레위기 27:7 말씀에 근거하여 볼 때 두 개의 종지에 유향을 담았을 것으로 보인다.

“병”의 ‘카사’는 ‘항아리, 병’이라는 뜻이고, “잔”의 ‘메낙키트’는 ‘큰 잔, 대접’이라는 뜻이다. 사실 고대 히브리어이므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화목의 식탁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해 보자면 빵의 식사를 할 때 포도주는 음료로 마셨기에 병과 잔은 일상의 식탁 세트로 빵과 나란히 배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상징적인 배치였기에 실제로 포도주를 잔에 부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성소에서는 결코 전제가 행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출 30:9). 병과 잔이 진설상에 배치되었지만 어디에 놓였는지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모두 복수형이므로 최소 두 개씩이었을 것이고,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두 줄 빵 사이에 놓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함께 하는 식탁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내성소의 진설상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되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9)

 

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 10:16-17)

 

(20260426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출58.2523-30 진설상(2026042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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