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출애굽기

20. 출애굽기 10:1-20 메뚜기 이적

불편한 진리 2025. 10. 12.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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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20강

출애굽기 10:1-20

메뚜기 이적

 

여덟째 메뚜기 이적이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2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1-2절).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1절)이라는 표현은 바로와 신하들이 스스로 완악한 상태로 죄의 권세에 매여 있음을 드러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이용하여 자기 언약을 이루시는 일로 나타내신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1절)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1절)이란 직역하면 ‘그들 마음 가운데 놓기 위함’ 혹은 ‘그들 가운데 적용하기 위함’이라는 말이고, “표징”(1절)이란 ‘오트’로 언약의 표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바로와 신하들의 마음을 완악한 상태로 두신 것은 열째 이적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나타내시기 위한 것이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언약의 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마음 가운데 놓으시기 위함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2절)이란 언약의 일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열 이적은 여호와의 온전한 말씀을 드러내기 위한 표적이고 그것은 언약을 나타내시는 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일이다. 결국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2절)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신다는 것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3절).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 하나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일로 하나님의 언약이 아니고서는 결코 하나 될 수 없음을 말씀으로 확인하게 된다. “겸비”로 번역된 ‘아나’는 ‘~하기에 바쁘다, ~에 종사하다, ~에 빠지다, 괴롭히다, 압제하다’라는 뜻인데 바로가 자기 의를 세우기에 바쁘고 거기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상태가 죄의 권세 아래에서 율법을 행위로 지켰던 우리의 상태를 보여준다. 따라서 “바로”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존재로 드러나고 “내 백성”은 구별되어 구원받는 존재로 드러난다.

“4 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를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니 5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 메뚜기가 네게 남은 그것 곧 우박을 면하고 남은 것을 먹으며 너희를 위하여 들에서 자라나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이며 6 또 네 집들과 네 모든 신하의 집들과 모든 애굽 사람의 집들에 가득하리니 이는 네 아버지와 네 조상이 이 땅에 있었던 그 날로부터 오늘까지 보지 못하였던 것이리라 하셨다 하고 돌이켜 바로에게서 나오니”(4-6절). “메뚜기”(4절)의 ‘아르베’는 ‘라바’(많다)에서 유래한 단어로 ‘메뚜기, 황충’이라는 뜻인데 ‘무수한 것, 수가 많아지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헬라어로는 ‘아크리스’로 번역된다. ‘말과 기병, 군대’로 비유한다(욜 2:4, 25, 욥 39:19-20).

 

4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5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 6 다른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7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욜 1:4-7)

 

“팥중이”의 ‘가잠’은 ‘성숙하지 못한 메뚜기’라는 뜻이고, “느치”의 ‘옐레크’는 ‘어린 메뚜기’라는 뜻이며, “황충”의 ‘하실’은 ‘메뚜기의 종류’인데 모든 메뚜기에 의해 남김없이 철저하게 먹어 치우는 상태를 표현하였다. 즉 하나님께서 이방인 바벨론을 들어 유다를 심판하실 것을 메뚜기의 모든 종류를 언급하여 황폐하게 될 것으로 말씀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요한계시록에서 이렇게 밝혀준다.

 

7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8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으며 9 또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10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계 9:7-10)

 

메뚜기 떼로 언급하지만 사실은 “사람 얼굴 같고”라고 하였다. 성경에서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따라서 면류관을 쓰신 예수 그리스도(계 14:14)와 같이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라고하여 예수 그리스도 같은 모습으로 권세를 드러내지만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은” 존재이다. 물론 여기서 말씀하는 전쟁이라는 표현은 이미 요한계시록 강론을 통해 확인한 바와 같이 물리적인 전쟁이 아니라 진리와 비진리의 전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여덟째 메뚜기 이적은 거짓 선지자들이 비진리로 애굽을 군대와 같이 점령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5절)라는 표현은 15절에서 “메뚜기가 온 땅을 덮어 땅이 어둡게 되었으며”라는 말씀으로 설명해 준다. 여기서 “어둡게 되었으며”의 ‘하샤크’는 ‘어두워지다, 침침해지다, 숨기다, 흐리게 하다’라는 뜻인데 아홉째로 주어질 이적에서 드러나는 “흑암”(히, ‘호세크’)을 전제한 것이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창 1:2)에 있는 상태를 보여준다. 애굽을 흑암의 상태로 되돌려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땅적 존재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런 점에서 “네 집들과 네 모든 신하의 집들과 모든 애굽 사람의 집들에 가득하리니”(6절)라는 말씀은 애굽의 모든 성전이 비진리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율법적 행위로 채워지는 자기 의가 가득한 성전 그것이 비진리로 십자가를 대적하는 원수의 상태이다. 오늘날 교회들은 인간의 의로 가득한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하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한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정작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 자신을 성전으로 세우시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므로 “들에서 자라나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이며”(5절)라는 말씀은 진리를 드러내야 할 성전뿐만 아니라 성전 바깥도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 먹힌 나무들 곧 선악의 나무와 하나 된 자들만 즐비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네게 남은 그것 곧 우박을 면하고 남은 것”(5절)이란 “31 그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32 그러나 밀과 쌀보리는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출 9:31-32)라고 한 그것이다. 우박으로 인하여 계절적으로 아직 나지 않은 것일지라도 그것은 메뚜기 이적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나타낸다.

“7 바로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하고 8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로 다시 데려오니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갈 자는 누구 누구냐”(7-8절). 히브리어 성경으로 보자면 “사람”(7절)이라는 표현은 없다. “함정”(7절)의 ‘모케쉬’는 ‘(짐승을 잡기 위한) 올가미, 덫, 미끼, 유혹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바로의 신하들이 보는 것은 모세와 아론을 하찮은 존재로 보고 상황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보내어”(7절)라고 하였을 때 ‘에노쉬’(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로 쓰고 있다. 즉 죽을 죄인들을 보내서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는 것이다.

신하들이 말하는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7절)라는 표현은 하나님을 섬기게 이스라엘을 내보내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일이라고 천명한다. 그렇게 애굽이라는 나라를 살리는 것이 자신들이 고수할 수 있는 진리라는 의미이다. 오늘날 교회들 역시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나라를 살리는 것이 애국이고 그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세상 나라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집단적인 죄인들에 불과하다. 다만 성경에서 나라란 최소한의 정의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방편에서 종말의 상태에 유지하게 하실 뿐이다.

“9 모세가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 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 10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와 너희의 어린아이들을 보내면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함과 같으니라 보라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 11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9-11절). “절기”(9절)의 ‘하그’는 ‘희생 제사, 축제, 절기의 희생’이라는 뜻이다. 출애굽의 목적은 하나님의 희생 제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출애굽을 통한 희생 제사의 참여는 남자나 여자나 늙은이나 어린아이의 차별이 없고 구분도 없기에 한 사람도 빠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는 희생 제사를 하려면 어린아이들을 제외한 “장정”(히, ‘게베르’ : 힘의 절정에 이른 남자)만 가면 된다는 것이다. “나쁜 것”(10절)의 ‘라’는 ‘나쁜, 악한, 악, 악한 것’이라는 뜻으로 어린아이들까지 간다는 것이 죄악이라고 주장한다. 결코 내어줄 수 없는 것이 이스라엘을 종으로 삼아 율법적으로 압제하는 것이다. 죄인은 율법적인 행위를 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것이 자기 의가 되어 자신의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 땅 위에 네 손을 내밀어 메뚜기를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여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 13 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 불게 하시니 아침이 되매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 들인지라 14 메뚜기가 애굽 온 땅에 이르러 그 사방에 내리매 그 피해가 심하니 이런 메뚜기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라 15 메뚜기가 온 땅을 덮어 땅이 어둡게 되었으며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애굽 온 땅에서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12-15절).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매”(13절)라는 표현을 통해 메뚜기 이적을 나타내시는 것이 지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임을 분명히 하신다. 이런 점에서 “동풍”(13절)(히, ‘루아흐 카딤’)이라는 표현으로 성령께서 진리를 나타내 보여주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언약의 실체인 십자가를 알게 되면 비로소 내가 어둠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언약으로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나 애굽인은 이적을 통해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진리로 알아볼 수 없는 어둠의 상태에 있었다.

“16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 이르되 내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죄를 지었으니 17 바라건대 이번만 나의 죄를 용서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은 내게서 떠나게 하라 18 그가 바로에게서 나가서 여호와께 구하매 19 여호와께서 돌이켜 강렬한 서풍을 불게 하사 메뚜기를 홍해에 몰아넣으시니 애굽 온 땅에 메뚜기가 하나도 남지 아니하니라”(16-19절). 바로의 회개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닌 재앙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거래하고 흥정하는 우리의 종교성이다. 죽음이 자신의 최종적인 종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서풍”(19절)이란 성령에 의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20절). 비록 거짓 선지자들이 없어진다고 할지라도 죄의 권세에 매여 비진리 가운데 있는 우리의 실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적을 통해 자신의 언약을 나타내시고 그것을 우리 마음에 두고자 하시는 일하심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의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십자가로 주어지는 하늘의 생명은 일방적이며 강압적인 찾아오심의 은혜이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 2:5)

 

(20251012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출20.1001-20 메뚜기 이적(2025101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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