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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19강
출애굽기 9:13-35
우박 이적
일곱째 이적으로 우렛소리와 우박, 땅에 떨어진 불덩이가 처음으로 애굽 사람을 죽인다. 그래서 사전 경고가 주어진다. “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서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14 내가 이번에는 모든 재앙을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에게 내려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네가 알게 하리라”(13-14절). “아침에” 바로 앞에 선다는 것은 이제까지 여러 이적이 있었다 할지라도 바로는 여전히 자기 종교 행위를 버리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다(출 7:15, 8:20). 그러나 모세는 계속하여 저녁을 거쳐 아침이라는 빛을 맞이하는 말씀을 바로에게 전한다.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13절)이란 표현은 이미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친히 죽음을 건넌 자로서 주시는 말씀이다(출 3:18, 5:3, 7:16, 9:1, 10:3). 그러므로 여기서도 “내 백성”(13절)이란 하나님께서 여호와로 이 땅에 오셔서 자기 죽음으로 만드시는 자기 백성, 곧 하나님께 예배하는 교회를 지칭한다.
“모든 재앙”(14절)의 히브리어 ‘막게파’는 ‘치명적인 타격’을 뜻한다(겔 24:16). 하늘에서 직접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14절)라고만 번역하였는데 개역한글판에서는 “네 마음”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네 마음 안에’라는 말이다. 즉 치명적인 타격으로 그 마음 안에 있는 것이 어떤 것인가가 드러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21절 참고).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네가 알게 하리라”(14절)라는 말씀을 직역하면 ‘땅이 여호와께 속해 있다는 것을 너에게 알게 하리라’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늘이 내려와 땅과 하나 되어 새 하늘인 땅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그래서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다. 즉 죽음 안에서 만나는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 그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이다.
“15 내가 손을 펴서 돌림병으로 너와 네 백성을 쳤더라면 네가 세상에서 끊어졌을 것이나 16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17 네가 여전히 내 백성 앞에 교만하여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느냐”(15-17절). “네가 세상에서 끊어졌을 것이나”(15절)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재앙으로 치시는 목적은 이 땅에서 애굽인을 몰살하고 세상에서 완전히 끊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것에 있다. 그래서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16절)라고 말씀한다. 바울 사도는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 9:15-18)
하나님께서 바로를 세우신 이유는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완악한 자는 완악함 그대로 드러나게 하시기 위함이다. 한마디로 긍휼을 입히시거나 진노 가운데 두시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그것은 우리의 행위가 기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것임을 계시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내 이름”(16절)이란 여호와께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 땅에 이름을 가진 존재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마 1:21). “교만”의 ‘살랄’은 ‘높이다, 쌓아 올리다, 격찬하다, 찬양하다, 명백히 하다’라는 뜻으로 자기 의를 쌓아 올려 하나님의 언약을 거부하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18 내일 이맘때면 내가 무거운 우박을 내리리니 애굽 나라가 세워진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그와 같은 일이 없었더라 19 이제 사람을 보내어 네 가축과 네 들에 있는 것을 다 모으라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릇 들에 있어서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들에게는 우박이 그 위에 내리리니 그것들이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18-19절). 사전에 경고를 주신 것은 그것을 대비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재앙이란 사람이 대비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고식으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의한 것이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내일”이란 단순히 시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영역이라는 의미이다.
“무거운”이란 ‘카베드’는 ‘무거운, 엄격한, 격렬한, 고통스러운’이라는 뜻이고 “우박”의 ‘바라드’는 ‘우박’이라는 뜻인데 하늘에서 내린다는 측면에서 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따라서 23절에서 함께 내려지는 “우렛소리, 불”도 말씀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재앙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갈망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말씀이 은혜로 받아지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이다. 말씀이 은혜로 받아진다면 우리의 마음에 오직 십자가만 남게 된다.
우박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얼어서 떨어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말씀을 문자로 해석하는 상태를 비유한 것이다. 따라서 우박이 비처럼 내린다는 것은 문자가 주는 고통이 얼마나 무겁고 힘겨운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교인들은 율법의 몇 가지 조항을 문자로 지키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행위로 지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는 것과 같은 것인지를 실감하면서도 고난과 인내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는 자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그 모든 것을 “들”에 두지 않고 “집”에 들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집에 두게 되면 심판에 가운데 버려둔 상태가 아닌 성전에 감추인 상태가 된다는 의미이다.
“20 바로의 신하 중에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 종들과 가축을 집으로 피하여 들였으나 21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의 종들과 가축을 들에 그대로 두었더라”(20-21절).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20절)이란 말씀을 마음에 두는 자이다(21절). 이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다. 죄인의 속성은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롬 1:28). 그러므로 바로의 종들이 스스로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 말씀이 그렇게 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애굽인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긍휼을 입히시면 말씀을 마음에 두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하신 것에 근거하여 성령께서 이루시는 일이다(참고 겔 36:26-28).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1-33)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어 애굽 전국에 우박이 애굽 땅의 사람과 짐승과 밭의 모든 채소에 내리게 하라 23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우렛소리와 우박을 보내시고 불을 내려 땅에 달리게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우박을 애굽 땅에 내리시매 24 우박이 내림과 불덩이가 우박에 섞여 내림이 심히 맹렬하니 나라가 생긴 그때로부터 애굽 온 땅에는 그와 같은 일이 없었더라”(22-24절). 대부분의 교인들이 건물 교회에 다니며 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으로 말씀을 먹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말씀은 씨가 없는 짐승들이 먹는 율법의 문자이다. 그러므로 껍데기 말씀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애굽 전국에 우박이 애굽 땅의 사람과 짐승과 밭의 모든 채소에 내리게 하라”(22절)라는 말씀이 주어진다.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은 자들에게는 “우박이 내림과 불덩이가 우박에 섞여 내림이 심히 맹렬하니”(24절)라고 하였는데 “맹렬”이란 ‘카베드’(무거운, 엄격한, 격렬한, 고통스러운)로 말씀이 주어지면 인간의 죄악이 들통나게 되어 있고 문자의 율법 가운데서 고통스러운 상태로 심판 가운데 있음이 드러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우박, 우렛소리, 불덩이’이라는 말씀이 주어질 때 그 말씀을 무엇으로 듣든지 구원과 심판으로 갈라지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런 차원에서 주어진다.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계 16:21)
“25 우박이 애굽 온 땅에서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밭에 있는 모든 것을 쳤으며 우박이 또 밭의 모든 채소를 치고 들의 모든 나무를 꺾었으되 26 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는 그곳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더라”(25-26절).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더라”(26절)라는 말씀을 가지고 흔히 하나님께서 믿는 자를 재앙으로부터 보호하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다. 인류 역사 속에서 많은 재난이 발생하고 있지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구별하여 발생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말씀은 믿는 자를 보호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담겨 있는 하나님의 언약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잠시 재앙을 구별하여 나타내실 뿐이다.
“27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28 여호와께 구하여 이 우렛소리와 우박을 그만 그치게 하라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다시는 머물지 아니하리라”(27-28절). 바로의 이 말은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간 편에서 하나님께 다가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립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죄인의 종교성이다. 그러나 복음은 비참하고 죽은 가운데 있는 자에게 십자가로 찾아오심이다. 따라서 바로가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28절)라고 하였는데 이스라엘을 내보내시는 것은 바로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구원의 일이다.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성에서 나가서 곧 내 손을 여호와를 향하여 펴리니 그리하면 우렛소리가 그치고 우박이 다시 있지 아니할지라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왕이 알리이다”(29절), “모세가 바로를 떠나 성에서 나가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펴매 우렛소리와 우박이 그치고 비가 땅에 내리지 아니하니라”(33절)라는 말씀은 단순히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든지 모세가 기도하니 하나님이 응답하셨다든지 하는 그런 말씀이 아니다. 모세는 엘로힘 하나님과 짝으로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30 그러나 왕과 왕의 신하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아직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줄을 내가 아나이다 31 그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32 그러나 밀과 쌀보리는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30-32절). 겉사람, 곧 육의 사람은 심판 가운데 죽을지라도 속사람, 곧 영의 사람은 살려주심의 은혜를 입는 것임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가 환난 중에서 고통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날마다 육을 죽이고 영으로 살리는 은혜이다.
“34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 35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34-35절). 바로의 완악함은 죄인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 바로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인 자들의 마음이고 곧 우리, 나의 마음이다. 율법의 문자에 사로잡혀 그것을 자기 의로 삼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의를 알게 되었다는 것은 진리의 영이 찾아오셔서 날마다 십자가로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 16:7-8, 13-14)
(20250928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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