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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론 33
마태복음 6:9-15
주께서 가르치신 기도(4)
-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주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두 번째 기원에서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간구는 ‘하나님 왕국이 오라!’라는 말씀으로 약속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왕국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이루어지는 아들의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누구도 우리 스스로는 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며 또한 아들의 나라이기 때문에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그 나라에 합류되는 것임을 확인하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이제 세 번째 기원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10절b)라는 간구이다. 직역하면 ‘당신의 그 뜻이 이루어져라! 하늘 안에서처럼 땅 위에서도’라는 말이다. “뜻”의 ‘델레마’는 ‘델로’(바라다, 원하다)에서 유래한 단어로 ‘뜻, 의도, 소원, 목적’을 의미하는데 70인역에서 주로 히브리어 ‘하페츠’(즐거워하다, 기뻐하다)와 ‘라촌’(기쁨, 호의, 뜻, 소원)의 역어 사용되었다.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다. 그러면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가? 시편에 보면 이렇게 말씀한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라촌)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시 40:8)
여기서 주의 법과 주의 뜻을 같은 의미로 표현하고 있는데 주의 법이란 율법의 말씀이다. 즉 하나님의 뜻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말씀이고 그것이 곧 언약의 말씀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는 것이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3, 참고 마 12:7)
하나님께서 율법의 말씀으로 제사를 주셨는데 인간들은 그 제사를 주신 말씀의 본질적인 의미를 알지 못한다. 인간들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모르고 주셨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하나님은 율법을 껍데기로만 이해하고 자기 행위로 지키려는 인간의 죄성을 알고 주셨다. 그 이유는 인간들이 자기 죄로 말미암아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음을 알라는 것과 동시에 그것을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 죄인을 부르실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신 것이 율법이다. 그러므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제사 안에 담아놓은 하나님의 긍휼, 불쌍히 여기심을 아는 것이 말씀이다. 이런 점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다음과 같다.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하페츠)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헤페츠)을 성취하리로다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사 53:10-11)
하나님의 원하심, 뜻은 의로운 종이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로운 종으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 죽음으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죄인들의 죄를 친히 담당하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인간들의 제사가 아니라 긍휼을 원하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시는 제사,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안에 긍휼을 담아놓으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 것이다.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38-40)
그러므로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십자가 사건이 무계획적으로 역사 속에서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하늘에서는 완성된 창세 전 언약이었다는 의미이다.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창세 전 언약이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것을 역사 속에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땅에 오셨다고 선언하였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갈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 18:14)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9-10)
결국 아버지의 뜻은 자기 백성을 잃지 않고 그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 6:40)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살리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날”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 안’이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요 성도는 종말을 사는 존재이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매일 매일이 마지막 날이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날의 문제가 아니라 상태의 문제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이냐 밖이냐 하는 문제라는 말이다. 이렇게 볼 때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씀에서 “땅”은 단순히 지구상의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의 마음 밭을 의미한다.
1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2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신 32:1-2)
1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낼지어다 2 그의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 3 하나님께 아뢰기를 주의 일이 어찌 그리 엄위하신지요 주의 큰 권능으로 말미암아 주의 원수가 주께 복종할 것이며 4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노래하며 주의 이름을 노래하리이다 할지어다 (셀라)(시 66:1-4)
땅에 하나님의 입의 말씀이 떨어져야 한다. 그래서 말씀을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이슬로 비유한 것이다. 말씀의 씨가 땅에 뿌리는 것을 통해서만 온 땅이 주를 경배하고 주를 노래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 8:15)
선악의 나무를 취한 ‘나’라는 또 다른 아담은 죄의 권세에 매인 존재이기에 늘 자신의 뜻만 구현하기 위해 사는 존재이다. 한마디로 좋은 땅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였기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다. 이 땅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수행하신 분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말씀의 씨를 뿌려 하나님의 뜻인 언약의 말씀을 온전히 성취하셨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만이 하나님의 뜻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신약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많이 기록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살전 4:3)
“거룩함”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구별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란을 버리고”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부르심을 입은 자는 우상 숭배와는 단절된 상태에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것은 육체의 남은 때를 사는 중에 있는 것으로 환난과 고난 중에 있는 것이다(벧전 3:17, 4:2).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는가? 우리가 스스로 거룩해질 수 있는가? 죄인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들을 결코 이룰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이것을 우리 편에서 가능하다고 하는 자들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필요 없는 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믿어진 자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힘이나 지혜로는 결코 불가능하다고 우리의 죄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고 실천하라고 주신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신 예수님께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는 것은 이 기도를 통해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것이고, 동시에 십자가를 확인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기도로 기도하시고 또한 친히 이루시고 그 이루신 것을 자기 백성들에게 적용시키시니 나의 뜻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인 언약의 말씀들은 우리가 이루어야 하고, 만들어야 할 내용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루신다는 자기 약속이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자에게는 생명의 은혜 안에서 즐거움과 감사하는 감격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여기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는 말씀은 중수디포태로 쓰였다. 즉 기도하게 하시는 원인자가 계신다는 뜻이다. 내가 자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게 하시는 분에 의해 늘 기도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함의 상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안에 있는 교회요 성도의 상태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은혜이다(20241218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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