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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론 31
마태복음 6:9-15
주께서 가르치신 기도(2)
-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모든 기도가 다 하나님께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기도란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라는 언약 관계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죄의 권세 아래 매인 인간은 예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그 기도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인데 “이렇게 기도하라”라는 말씀에 합당한 존재로 기도 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언약을 완성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주기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아들의 기도이고 그 아들 안에서만 우리 아버지께 할 수 있는 기도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9절a)라고 부른 후 첫째 기원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9절b)라는 기도이다.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표현은 ‘하기아조’인데 ‘거룩하게 하다, 성별하다, 정결케 되다’라는 뜻이다. 직역하면 ‘당신의 그 이름이 거룩하게 되어라, 혹은 정결하게 되어라’라고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당신’이란 앞에서 언급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다.
이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의 기도가 자기중심적인 것과 대조해서 나타내신 말씀이다. 즉 하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를 시작한다는 것은 기도의 초점이 ‘인간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기도의 가장 중요한 기본원리이다. 죄인인 자기 자신이 죽은 상태가 되지 않는다면 인간의 기도는 모조리 자기 의를 내세우고 자기 자존심을 드러내는 기도가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기 이름을 나타내며 자기 영광으로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4)
41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 5:41-44)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는 것은 자기 이름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죄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자기 영광을 취하는 죄인의 모습을 보여주심과 동시에 다시는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시겠다고 선언하셨다.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36:23)
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줄을 민족들이 알리라 하라(겔 39:7)
그러면 “이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실 때 조금씩 다르게 드러내신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는 ‘전능의 하나님’(엘 샤다이, 창 17:1, 출 6:3)으로 드러내셨고, 이 외에도 ‘이레의 하나님’(창 22:14), ‘승리의 하나님’(여호와 닛시, 출 17:15), ‘치료의 하나님’(여호와 라파, 출 15:26), ‘두려움의 하나님’(신 28:58-59), ‘복수의 하나님’(출 21:24, 신 7:2), ‘전쟁의 하나님’(사 13:4, 28:22), ‘심판의 하나님’(전 12:14) 등으로 자신을 드러내기도 하셨다. 그 외에도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진노의 하나님 등등 여러 표현을 할 수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은 언약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신 표현이다. 그중에서 출애굽 사건을 앞두고 모세에게 자신을 이렇게 나타내셨다.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출 3:14-15)
모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누가 보냈느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는지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서 자신을 “여호와”(또는 ‘야훼’) 즉 “스스로 있는 자”(히, ‘예흐예 아쉘 예흐예’)로 드러내셨다. 누군가에 의해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시며 모든 주권을 가진 분이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 자손과 특별한 관계, 즉 언약 관계라는 의미이다. 자기 언약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라는 하셨는데 “기억할”이라는 말의 ‘제케르’는 ‘자카르’(기억하다)의 명사형이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언약대로 일하심을 나타내는 언약 용어이다. 그렇다면 언약 성취는 영원한 이름으로 오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있는 자”라는 표현은 이름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이름이 없다. 아니 이름을 가질 필요가 없는 분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온 천하에 전파되기 위하여 능력을 베푸셨고(출 9:16), 또한 자기 이름을 두실 곳을 선택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에게 언약의 땅을 주셨으며(출 20:24, 신 12:5, 11, 21, 14:23-24, 16:2, 6, 11), 결국 솔로몬을 통해 그 이름을 두실 집을 건축하도록 하셨다(삼하 7:13, 왕상 8:16). 이렇게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해 일하신다(시 23:3, 79:9, 143:11 등). 이름을 두실 곳이 성전이었고, 그 성전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이름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은 곧 언약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이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해 일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요 5:43)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요 17:4-6)
그러면 “거룩” 혹은 ‘정결’이란 무슨 뜻인가? 레위기 22:32에서 “너희는 내 성호를 속되게 하지 말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요”라고 말씀하셨다. 이와대비하여 열 말씀에서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 20:7)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거룩한 것과 속되고 망령된 것은 대치되는 개념으로 말씀하셨다. 한 마디로 속된 것, 망령된 것과는 구별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거룩이란 말은 스스로를 구별되게 드러내신 하나님이라는 의미이다.
구별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인들과 교제가 가능한가? 그것을 하나님께서 구약에서는 제사 제도를 통해 보여주셨다. 양을 잡아 그 머리에 안수하고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곧 양에게 자신의 모든 죄가 전가되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는 대속의 죽음에 대한 예표였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친히 십자가를 지고 대속의 죽음을 이루신 것은 인간이 행하는 이 땅의 어떤 의식으로도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천명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이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하나님을 거룩하게, 정결하게 여기실 수 있는 분이다.
이런 점에서 ‘그 이름이 거룩(정결)하게 되어라’라고 명령형으로 말씀하신 것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다는 언약의 말씀이다. 그 언약을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언약을 완성하셨다. 결국 하나님의 이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지상에 드러내신 유일한 계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또한 그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하나님께서 죄인들과 원수들에게 행하시는 심판과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 독특하게 드러나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성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구별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정결하게 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완전하게 드러나 그것을 통해 영광스럽게 되시는 것을 의미한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6-22, 26)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 안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기도임을 나타내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을 거룩하게 된 자, 곧 성도로 만들어서 이 기도에 동참시키신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5-11)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된 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날마다 무릎을 꿇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는 것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고 정결하게 드러나는 것이다(20241204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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