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강론/마태복음

32. 마태복음 6:9-15 주께서 가르치신 기도(3)

불편한 진리 2024. 12. 11.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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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론 32

마태복음 6:9-15

주께서 가르치신 기도(3)

- 나라가 임하시오며 -

 

인간은 누구나 자기 이름을 위해 산다. 죄의 권세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죄인의 특성이 자기 이름을 내고 드높이는 것이다(창 11:4). 이러한 죄인들에게 예수님께서 하늘의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르게 하셨고, 또한 “그 이름이 정결하게 되어라”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러한 기도를 통해 자기 이름을 위해서만 사는 죄인이 자기 이름을 부정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드신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간구로 “나라가 임하시오며”(10a)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직역하면 ‘오라! 당신의 그 왕국이’라는 말이다. “임하시오며”라는 표현의 ‘엘코마이’는 ‘오다, 가다, 나타나다’라는 뜻으로 과거 명령형이다. 즉 이미 이루어졌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이다. 한마디로 약속하신 하나님 왕국이 오라고 구하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일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거룩한 통치가 이루어짐으로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께 굴복하고 경배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이 충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신의 그 왕국’이란 무엇인가? 예수님의 첫 선포를 마태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하나님 나라를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라는 차원에서 생각하기도 하고 또 나라의 세 요소로 ‘국민, 주권, 영토’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로 설명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설명들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에 비추어보면 단순한 하나님의 통치나 세상의 국가에 대한 세 요소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 어느 때든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 백성들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이방 나라들까지 늘 다스리고 계셨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굳이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선포하셔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구약의 말씀을 잠시 보자.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후 이스라엘이 이렇게 노래하였다.

 

13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출 15:13, 17)

 

이는 단순히 이스라엘의 찬양이나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이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지신 것은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기 위해서인데 거룩한 처소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처소로 삼으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지신 것은 단순히 가나안 땅이 목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처소로 삼으신다는 것에 있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처소로 삼으심이 바로 하나님의 다스리심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를 선택하셔서 하나님 왕국을 보여주려고 하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언약하신 이유이다. 후에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친히 왕으로 다스리시는 왕국을 세우실 것을 말씀하신다.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단 2:44)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세상의 나라와는 다른 하나님 왕국을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실 것을 선지자들을 통해 수없이 나타내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처소로 삼으신다는 것은 친히 영원한 왕국을 다스리실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며 결국 언약으로 오실 메시아를 통해 자기 백성들을 처소로 삼으실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왕국이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그 안으로 자기 백성들을 불러 모아 통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 왕국은 실현되었다.

예수님은 왕의 권세로 이적이나 말씀을 통해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셨다(마 11:12-13, 12:28, 눅 7:20-21).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 왕국이 실현되었고 이제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통치하신다는 현실로 바뀐 것이다. 하나님 왕국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미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영광스럽게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골로새서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

 

선악의 나무를 취한 아담을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시고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신 것(창 3:24)은 둘째 아담이요 마지막 아담이 땅적 존재를 회복시켜 하나님 편에서 동쪽의 그 길을 여실 것을 암시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휘장이 찢어져 그 길을 여신 것이다.

결국 하나님 아버지의 왕국은 아들의 나라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왕국 자체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로 인정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기 때문이다(마 3:17).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 왕국이 약속으로 성취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복음, 언약 성취를 하나님 왕국을 드러내신 것으로 말씀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눅 4:4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3)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그 왕국이 오라’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루신 하나님 왕국이 임하지 않고는 누구도 그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한 말씀이다. 들어가는 것이 아닌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기도를 함으로 내 힘과 내 노력, 나의 신앙심으로 들어갈 수 있는 왕국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날마다 우리 마음에 새기는 것을 통해 오는 나라이고 주어지는 왕국임을 확인하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하나님 왕국이고 곧 아들의 나라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를 입어 그분과 하나 되는 왕국이다.

 

24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27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눅 18:24-27)

 

이 말씀에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한 것을 사람이 할 수 없으니까 당연히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는 말로 쉽게 이해해서 죄를 지으면 회개하고, 선하게 살면서 믿음으로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나라에 넣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말씀은 사람 편에서의 어떤 조건이나 근거로는 도무지 불가능하고 하나님 편에서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흔히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나라라고 착각한다. 인간이 믿음으로 그 길을 열려고 한다면 믿음이라는 것도 우리의 행위에 불과하다. 오직 하나님 편에서만 가능하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로 오신 것이다. 이제 우리가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함으로 우리 스스로는 누구도 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또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고백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기 나라를 자기 백성들에게 덮어주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볼 수 있게”라는 말의 ‘파라테레시스’는 ‘파라테레오’(지켜보다, 관찰하다)에서 온 단어인데 ‘파라’(곁에, 가까이에)와 ‘테레오’(보존하다, 마음에 새기다, 지키다)의 합성어로 ‘감시, 숨어서 기다림, 정찰, 정확한 관찰’이라는 뜻이다.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고 하였을 때 “안에”라는 말의 ‘엔토스’는 ‘안에, 내부에, 가운데, 사이에’라는 뜻이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 사이에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왕국은 사람들이 관찰하고 감시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이미 자기 백성들 사이에 오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는 것이 하나님 왕국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선포하였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50)

 

하나님 왕국은 장소를 의미하는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영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교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해서 그곳이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윤리운동, 환경보호운동, 노동운동 등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세상이 하나님 왕국이 될 수 없다. 온갖 것으로 다 거룩한 척하며 엄숙하고 성스러운 것을 다 모아놓았다 할지라도 거기에 십자가가 없다면 하나님 왕국이 아니다.

‘하나님 왕국이 오라!’라는 기도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는 죽음 안에서 발견되는 생명으로서 왕국이다. 그러므로 이 기도를 하게 된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고 피의 공로에 파묻혀 있으며 그 왕국에 장악되어 있기에 세상의 것을 더 가지려고 하고 자아를 확대하고자 하는 모든 고집과 뜻이 부인되는 상태에 있다. 이 기도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장악함으로 내가 되어 세상과 세상의 것을 밀쳐내고 있음을 늘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20241211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마32.0609-15 주께서 가르치신 기도(3)(2024121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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