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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리 2015. 5. 5. 12:44

성경은... (퍼온글)

 

 

 

성경은 이 땅에 이야기가 아닌 하늘의 것 들이다.
하늘의 것이란 말은 일단 우리적이지 않다는 것이고

다른 차원의 것을 의미하는 거룩이란 말이기도 하다.
거룩하란 말씀은 세상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태어나 세상에 사는 세상적 존재인 우리가

어찌 이 세상을 벗어나 세상적이지 않을 수 있는가!
이 불가능에 부딪치지 않은 사람은 거룩을 모르는

그것은 성경을 모르는 한낮 종교인에 불과할 뿐이다.

 

성경은 분명 우리 말로 번역되어 우리 것 같지만

우리 것이 아닌 다른 차원의 하늘의 것을 말한다.
거듭난다는 말이 쉽게 들려 다 아는 것 같지만

당시 가장 엘리트인 니고데모가 이해할 수 없었다.

 

거듭난다 말은 하늘로부터 난다는 말로서

하늘로부터 나지 않으면 그 나라를 알 수 없음이고
성경은 그 하늘의 것을 그 나라 사람들에게 알림이니

하늘로 나지 않으면 성경을 알 수 없음이 당연하다.
 
성경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하늘과 땅처럼 서로 너무나 다른 우리에게
그 하늘 곧 하나님을 알려 주는 다른 차원의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이해하는 것은 기적이고 은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누구나 듣고 이해하지 못한다.

주님 당시에 그렇게 이해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직접 들었음에도 몰랐다.

기적을 누린 사람조차 알지 못해 주님은 그들을 피했다.

 

그런데 의외로 이방인인 백부장이나 죄인 삭개오는 알았다.
주님 십자가에 함께 달렸던 한편 강도는 그 은혜를 누렸다.
배워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배워야 한다.
성경을 말씀으로 주신 것은 그 내용을 알라는 것이잖는가!

 

성경을 이해하는 것은 반드시 그 말씀이 주어진 사람에게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하기에 은혜인 거다.
성경은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절대적이지 않다.
전문가의 연구가 도움도 되나 방해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도우심과 먼저 그 말씀을 받은 사람이 전제될 때
전문가는 성경 해석의 많은 도움이 되고 실제적 유익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그 전제가 없이 전문가 만을 의지할 때는
오히려 심각한 해독으로 바리새인적인 형태로 변질된다.

 

성경이 바울을 대표적 인물로 선택하고 보여주는 것은 
그런 부정 긍정의 양면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많은 학문과 지식이 그를 오히려 반그리스도적이게 했었고
은혜로 말씀을 받을 때 비로서 모든 것이 그리스도적이 된다.

 

실은 성경의 대부분의 인물들이 그런 양면을 동시에 갖는다.
그 양면은 곧 진리를 모를 때와 반대로 알 때로 나누어 진다.
모를 때는 말씀이 율법으로 이해되었다면 알면 복음이다.
아브라함이 생애가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바울이 안다. 

출처 : 주성교회
글쓴이 : 김영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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