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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 (이장우목사/창원늘푸른교회)

불편한 진리 2015. 5. 13. 11:43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 (이장우목사/창원늘푸른교회)

 

 

 

미술관에 가 보면 작품에 손대지 말라는 경고가 붙어 있는 것을 봅니다.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어떤 사람은 평생의 노력을 쏟아 부은 작품인데 문외한인 사람들이 함부로 만져버리면 작품을 버리게 되기에 그렇게 할 것입니다.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출 20:25).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하여 제단을 쌓을 때에 정으로 돌을 다듬으면 보기도 좋고 쌓기도 좋을 텐데 정으로 돌을 다듬지 말라고 합니다. 만약 다듬으면 부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까? 사람은 자기의 이름과 영광을 남기고 싶어 하는 죄인이기에 그렇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에 집 앞에 있는 바위에 저의 이름을 남기고자 새겨본 적이 있습니다. 어려서 한 일이지만 그 저의에는 자기의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욕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한다고 하면서도 결국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고자 하는 모든 행위들이 다 부정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일들을 가지고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룩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일에 자기의 이름이 들어가야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절에 가면 온갖 건축물에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교회나 신학교에 가도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히 신학교에서 어떤 건물을 지을 때는 아예 광고를 합니다. 얼마를 기부하면 어디에 이름을 새겨주겠다는 것입니다. 이러고서도 주님의 거룩한 일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지금 새벽기도회 때에 ‘거룩’이라는 주제로 성경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이사야 6장까지 거룩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지금까지의 결론은 거룩이란 사람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홀로의 솜씨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에 사람의 솜씨가 발휘되면 그것은 부정하게 될 뿐 아니라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사사기에서 미가 집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자식이 어머니의 돈을 훔치고 어머니는 이로 인하여 저주를 하자 아들이 저주 받기 싫어서 훔쳤던 돈을 내어 놓습니다. 이런 아들을 그 어미가 축복하면서 그 돈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린다고 합니다. 그 돈으로 드라빔을 만들고 에봇을 만들고 자기 아들 중에 제사장을 세워놓았습니다. 그렇게 만든 이유는 복을 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우상을 숭배하면서 살아가는데도 거룩한 일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어떻게까지 나오는가 하면, 성경에서 우상숭배이며 죄라고 고발해도 그 자신을 가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나는 이렇게 바르게 전하기에 나는 다른 사람보다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나를 공격하는 자들을 적으로 여기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하나님의 거룩이 나타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사야 6장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자신이 거룩한 하나님을 뵙게 되었을 때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는 고백이 나온 것입니다. 자신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때의 배경은  웃시야 왕이 죽던 때라고 되어 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심히 강성하여지자 교만하여 자신이 성전에서 분향하려다가 이마에 문둥병이 들어 쫓겨난 자입니다.

 

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뵙기 전에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선지자로 증거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5장에서만 범죄한 자들을 향하여 “화 있을진저!”를 6번이나 외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 앞에서 자신이 화로다 망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자신은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서 거하면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았기에 망했다는 것입니다. 문둥병자는 윗입술을 손으로 가리고 부정하다고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접촉을 피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였을 것입니다. 바로 자신이 문둥병자처럼 부정한 자요 망할 자임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이 나타난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인간은 손을 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손을 대면 오히려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이루어낸다고 적극적으로 이루어낸 일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나사렛 이단의 괴수를 처형하였는데 오히려 그 사건이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시는 거룩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볼 때는 거리끼는 것이며 헬라인들이 볼 때는 미련한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미련한 전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를 장식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로 장식을 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형틀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을 이루는 도깨비 방방이로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의 행위를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아니하시고 모든 사람들이 싫다고 버려 버린 십자가의 미련한 방식으로 오늘도 하나님은 거룩한 일을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그 확정적인 거룩의 사건을 이 땅에 지금도 분명하게 펼쳐내시고 계십니다. 그 주님을 만난 자는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이며 죽임 당한 어린양 앞에서 죽은 자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 양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 5:12,13).

출처 : 주성교회
글쓴이 : 김영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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