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레위기

15.레위기 25:1-55 희년에 대하여

불편한 진리 2015. 1. 26.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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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5:1-55

희년에 대하여


본 장은 희년에 대한 말씀인데 희년의 기초가 되는 안식년에 대해서 먼저 기록하고 있다. 육년 동안은 파종하되 제 칠년에는 땅을 쉬게 하라고 말씀한다. 2절에 의하면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고 했고 4절에는 제 칠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안식년은 땅의 안식이다. 땅의 안식이 왜 있어야 하는가? 땅의 안식이란 이스라엘에게 어떤 의미인가?

창세기 2:2에 보면,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안식이란 단순히 쉰다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을 보시기에 좋았다는 개념이다(4, 10, 12, 18, 21, 25, 31). 따라서 안식이란 일곱째 날 하루에 관한 것이 아니라 7일 전체가 안식이며 인간의 안식이 아닌 하나님의 안식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한 모든 것들로 인하여 안식의 상태에 거하신다는 뜻이다. 이러한 안식을 ‘7’이란 수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함으로 땅은 저주 아래에 있게 되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3:17). 비록 저주 아래에 있는 땅이지만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말씀하시고 안식년과 희년에는 그 땅을 쉬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안식년과 희년을 통해 약속의 땅만큼은 본래 하나님의 안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땅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안식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이다.

그러므로 안식년의 7년이 일곱 번 반복하여 강조된 희년이란,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년과 안식년이 일곱 번 반복된 50년째를 희년으로 지킬 것을 말씀하신다. 희년에는 토지를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줌으로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준 처음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건져내어 여호와께서 주신 약속의 땅에 살게 된 존재가 이스라엘이기에 모든 백성들이나 땅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이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은 애굽의 품꾼이 아니라 하나님의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살아가는 하나님의 품꾼이다. 따라서 어떤 형편에 의해서 종이 되었든지 희년이 되면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

땅을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어서 처음으로 되돌려 놓는다는 것이나 종을 해방시켜 주는 것으로 이스라엘은 구원의 하나님을 늘 기억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기에 희년의 근본적인 취지는 23절과 38, 55절 말씀 속에 담겨 있다 :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23),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또는 가나안 땅으로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38), “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품꾼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나의 품꾼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55).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었다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취지를 제대로 드러내고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약속이 지향하고 있는바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이다. 즉 누군가의 희생에 의해 애굽에서 건짐 받아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들의 삶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안식년과 희년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표현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희년이 되면 파종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희년 전에 삼년 쓰기에 족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것이다(21).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것에 목표를 두고 축적하는 나라가 아니라 세상을 것을 포기하고 나누어 주는 나라임을 하나님께서는 희년이라는 제도를 통해 가르치시는 것이다. 희년이 되어 노예를 해방시켜 줌으로써 하나님 나라는 누가 누구를 지배하거나 군림하는 나라가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나누는 나라라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아야 했다.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지 아니함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것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희년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희년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이사야 5:8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라고 했고, 미가 2:1,2에서는 침상에서 악을 꾀하며 간사를 경영하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취하니 그들이 사람과 그 집 사람과 그 산업을 학대하도다라고 선지자들은 율법을 말씀을 가지고 희년을 무시했다고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했다. 이스라엘은 율법의 말씀을 무시했다. 희년을 비롯한 모든 율법의 말씀대로 사는 것에 실패했다.

이스라엘의 실패 때문에 메시야가 오시지 않으면 안 된다. 누가복음 4:16-21에 보면, 예수님은 이사야 61:1이하의 말씀을 인용하여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주의 은혜의 해(희년)가 오늘(안식일) 성취되었다고 선언하셨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희년이 의미하는바 하나님 나라가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안식임을 주장하셨다(6:5). 그러면 희년이란 무엇인가 라고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희년이란 누구인가 라고 물어야 한다. 희년은 누구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진정한 안식,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께 있는 것이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안식 자체이시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희년 안에, 안식 안에 있는 자이다. 그 사람들을 교회라는 한다. 그러면 교회란 당연히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자들이어야 한다. 내 것은 없고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에 의해 살아감을 늘 고백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그것은 곧 주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은혜임을 공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 교회 많은 목회자들은 주님의 십자가를 보여주지는 않고 오히려 안식년의 구약 제도를 가지고 7년 동안 목회를 했으면 쉬어야 한다는 핑계로 안식년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안식년이나 희년은 결코 인간이 쉰다는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파종하지 않음으로 땅을 쉬게 한다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기희생이라는 은혜에 근거해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안식을 맛보는 것이었다. 그 안식은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 죄에서 해방되어 땅의 저주 아래에서 놓임 받아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보여주며 사는 자가 오늘날 이스라엘로서의 교회이다(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