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레위기

16.레위기 26:1-46 언약에 대한 순종

불편한 진리 2015. 1. 2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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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6:1-46

언약에 대한 순종


이스라엘은 희년 공동체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나님은 그것을 26장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1-13절은 언약의 말씀이 제대로 시행되어 하나님의 복이 임한 상태를 말씀하시고, 14-46절은 언약의 말씀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 상태를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이라고 해서 무조건 평안히 살 수 있는 안식의 땅이 아니다. 안식의 땅은 하나님의 안식이 그대로 보존되고 드러나는 상태이다. 다시 말해서 에덴동산이 하나님의 안식의 상태로 유지될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인간들의 범죄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약속의 땅이 안식의 상태로 유지되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시행될 때에 가능한 것이다. 이 말은 약속의 땅에서 안식 할 수 있는 것이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조건이 아니다. 조건이 있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결코 은혜의 약속이 될 수 없다. 조건이 아니라 약속의 땅에서는 약속의 말씀대로만 시행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이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권고하여 나의 너희와 세운 언약을 이행하여 너희로 번성케 하고 너희로 창대케 할 것이며”(9)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때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1:28). 번성하여 충만하라고 하신 말씀은 결코 인간을 향한 명령이 아니라 창세기 1:28 서두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과 같이 인간에게 복을 준 상태를 일컫는 말씀이다. 즉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복을 준 상태가 번성하고 충만하게 되는 상태이다. 그것은 인간이 노력하고 그 말씀대로 지켜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에덴의 모든 것들을 누리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복이 온 땅에 흘러넘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죄의 권세에 매여 있는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그 종 된 것을 면케 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너희 멍에 빗장목을 깨뜨리고 너희로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12,13)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은 바로 걸을 수 없는 자였다. 하나님의 안식과는 관계가 없던 자였는데 그들의 빗장목을 깨뜨리고 애굽에서 건져내셔서 하나님의 안식 안에 있게 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해 희년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게 된 것 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결코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로 돌이키는 자들이 아니라 말씀을 거스르며 거부하는 자들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냥 두시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를 열방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여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 너희가 대적의 땅에 거할 동안에 너희 본토가 황무할 것이므로 땅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 그 때에 땅이 쉬어 안식을 누리리니”(33,34). 이스라엘을 이방인들의 포로로 만들어서라도 약속의 땅을 안식하도록 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는 약속이 지향하고 있는 한 인물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언약을 생각하여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고 그 땅을 권고하리라”(42)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후에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하지 않으시고 바벨론 포로에서 남은 자로 돌아오게 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의 언약 때문이었다(44). 결국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한 조치였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죄 됨을 보시지 않으시고 자기 백성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시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세우신 새 언약의 피에 근거한 구원이기 때문에 우리의 행위에 의해 취소되거나 좌절될 수 없는 확실한 구원이다(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