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사무엘하

20.사무엘하 17:1-29 아히도벨과 후새의 전략

불편한 진리 2014. 12. 4. 13:06

20(2013.6.9)

사무엘하 17:1-29

아히도벨과 후새의 전략

 

반역을 일으킨 압살롬은 한 번 싸우지도 않고 예루살렘을 차지하였다. 이제 압살롬은 왕궁을 버리고 도망한 다윗을 계속 추격하여 죽이고 바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할 것인지 아니면 일단 전열을 가다듬고 다음날 쳐들어가서 다윗을 잡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이 되었다. 압살롬은 이 문제는 혼자 생각하여 결정하지 않고 자기 책사들을 불러서 의견을 듣는다. 압살롬에게 의견을 제시한 두 사람은 압살롬의 참모인 아히도벨과 다윗의 참모였던 후새였다.

아히도벨의 전략은 당장 일만 이천 명의 군사를 동원해 도피 중에 있는 다윗 왕을 추격하여 공격하면 백성들은 도망을 갈 것이니 그들을 추격하지 말고 다윗만 죽이면 된다는 것이었다. 다윗 왕이 죽으면 나머지 백성들은 더 이상 압살롬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아히도벨의 제안에 대하여 다른 신하들뿐 아니라 압살롬도 그 전략을 좋게 여겼다. 압살롬은 자기 아버지를 죽이자는 아히도벨의 의견에 크게 동조했다. 압살롬의 관심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며 아버지와 연관된 인륜에 있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오직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었다.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모략을 듣고 나서 후새의 의견도 들어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압살롬은 후새를 불러 아히도벨의 전략을 이야기하면서 혹 다른 의견이 있으면 말하기를 요구했다. 압살롬은 다윗 왕이 의도적으로 예루살렘에 남게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후새는 아히도벨의 전략이 무리가 있음을 주장하면서 먼저 다윗 왕이 전쟁에 능한 장수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그래서 너무 급하게 서둘러 공격하면 다윗의 군대가 광야의 흩어진 요새들에 비밀리에 숨어 있다가 갑작스럽게 역공격을 해온다면 속수무책이 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후새의 전략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새의 이런 전략은 다윗 왕이 더 멀리 도망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고 또한 아히도벨은 견제해야 할 인물임을 우회적으로 암시하고 있었다. 아히도벨의 지휘를 받고 있는 예루살렘 인근의 병사들을 보내서 다윗 왕만 죽이게 되면 그것이 도리어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아히도벨을 지휘관으로 임명해서 보내지 말고 압살롬이 친히 지휘하여 직접 나서야 할 것을 말함으로 아히도벨이 또 다른 반란을 일으켜 압살롬에게 위협이 될지 모른다는 듯 넌지시 말했다.

두 사람의 의견을 들은 압살롬은 자신의 참모인 아히도벨의 의견을 따르지 않고 다윗의 참모인 후새의 전략을 따른다. 결과는 압살롬이 결정을 잘못 내린 것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본문을 대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압살롬이 참모를 잘못 썼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선택을 잘못했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다윗 왕은 도망을 가면서도 후새라는 인물을 왕궁에 남게 하여 압살롬의 계획을 무산시키도록 한 지혜가 있었고 후새라는 신실한 신하를 둔 것이 다윗의 훌륭한 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주위에 지혜로운 사람들을 많이 두고 더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교훈을 본문 안에서 찾기도 한다. 과연 성경이 말씀하고자 하는 내용이 그런 것일까?

압살롬을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영웅이 될 만한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다. 사무엘하 14:25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그는 외모가 뛰어나고 흠이 없는 존재였다. 또한 누이 다말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친히 그것을 처리하고 그로 인해 도망하여 살아야 하는 수모도 감당하는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도 훔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야망도 누구보다 강한 존재였다. 중대한 결정을 할 때는 한 편의 말만 듣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들어 결정하고자 하는 신중함도 있는 인물이었다. 이런 사람을 세상에서는 영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훌륭한 영웅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참모인 아히도벨의 전략을 듣지 않고 다윗의 참모였던 후새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전략대로 다윗을 죽인다고 할지라도 결코 왕이 될 수 없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언약의 나라이고 이스라엘에 세워지는 왕은 언약의 왕이다. 이스라엘이 잘났든 못났든 언약을 주시고 애굽에서 건져내시며 왕을 세우셔서 이끄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왕을 주시는 분도 언약의 하나님이시고 왕을 거두어 가시는 분도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폐위하는 것이지 정세에 따라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판단에 따라 전투력에 따라 인물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말을 듣지 않고 후새의 말을 들어서 다윗을 쫓지 않은 것은 압살롬의 판단착오가 아니라 압살롬의 한계이다. 그것이 바로 죄인의 한계이다. 압살롬의 한계는 언약의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그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에 다윗이 도망한 이유는 어떻게든 왕권을 지켜보려고 버티는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 다윗이 왕권에 목적을 두었다면 도망가지 말고 육백 명의 군사로 이백 명에 불과한 압살롬의 군대를 진압했어야 했다. 또한 다윗이 도망할 때에 시므이가 조롱할 때에도 바로 시므이를 죽여버리면 될 것이었다. 하지만 다윗은 압살롬을 제압하지 않았고 시므이를 죽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한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고 왕권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면 예루살렘을 떠날 때 언약궤라도 가지고 갔어야 했다. 자신이 왕으로 계속 다스리는 것과 물러나는 것은 다윗 자신의 능력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언약의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다윗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일하심에 맡기고 예루살렘을 떠났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를 범하며 자식들의 분란과 반역을 겪으며 자신의 죄와 언약의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압살롬이 왕이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히도벨의 말을 듣느냐 후새의 말을 듣느냐 하는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어떻게 다루실 것인지에 달려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말씀해 주는 것이 바로 본문 14절 말씀이다.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 압살롬이 판단착오를 하였기 때문에 왕권을 잡는 일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압살롬이 왕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압살롬으로서는 최고의 결정, 가장 확실한 결정을 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압살롬을 거부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압살롬이 보는 다윗은 의롭지 못했고, 자신은 다윗 왕보다 의롭다고 스스로 생각하였기에 충분히 왕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다윗의 범죄를 통해서라도 언약을 알리시지만 압살롬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한 계획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보여주고자 하신 언약의 내용은 외모가 준수하고 흠 없는 사울과 같은 세상의 영웅이 아니라, 아버지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모든 사람들이 왕으로 세움 받을 인물이 되지 못한다고 여긴 말째 아들 다윗을 통해서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세상이 원하는 영웅 니므롯과 같은 존재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아주 볼품없고 세상 사람들이 인정할 수 없는 모습으로 오셨다. 세상이 원하는 영웅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가장 낮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셨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가장 완벽하게 보여 주는 것이 된다. 오늘 우리가 세상에서 영웅이 되든지 아니면 영웅을 갈망하여 그 영웅에 의해 세상에서 편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보자는 정신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는 마음으로, 십자가의 정신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성도로 부름 받은 자의 진정한 모습이다.

모든 사람들이 바로 압살롬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하나님께 잘 보이면 하나님께서 들어 써 주시고, 하나님께 잘못 보이면 하나님이 진노하시며 벌을 주고 버리신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 어느 참모의 말을 듣고 어떤 결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압살롬의 근본 문제가 하나님에 대한 오해였고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오해였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죄다.

우리가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를 지셨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자기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고 그 십자가는 대속의 죽음이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의 말을 듣고 따라 살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가신 진리이며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죄 용서함을 얻을 수 있고 언약의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분이 하신 말씀 안에서만 주님을 믿을 수 있다.(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