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강론/사도행전

45.사도행전 28:30-31 사도행전의 끝

불편한 진리 2014. 9. 3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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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의 끝

사도행전 28:30-31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지식이나 실력을 힘으로 삼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식에 대한 실력이라는 것은 중요합니다. 내가 가진 실력만큼이나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느냐 하는 것은 이 사회에서 살아남는 힘이나 근거가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실력을 쌓아 남보다 한 발 앞서 가려고 합니다.

실력이 안 되면 다른 사람의 노력이나 실력을 도용해서라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목표한 결과만 만들어 내면 되기 때문입니다. 결과에 치중한다는 말은 실적을 중요시하고 따진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세상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목회자대로 교회를 키우는 목회 실력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교인들은 교인들대로 신앙에 대한 실력이 있어야 다른 교인들 위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서로 남보다 나은 실력을 가지고 다른 교인 위에 군림하려고 합니다. 주일에 모이면 서로 누가 나은가 하는 실력의 경주장 같습니다. 성가대는 노래 실력의 경주장입니다. 교회 내의 각 모임들은 천국 상급을 누가 많이 쌓는가 하는 경주장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실한 성도는 복음을 아는 자가 이렇게 없는가, 정말로 교회다운 교회가 이렇게 없는가 하고 답답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회란 인간의 실력을 가지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란 주님이 주신 결과를 받아 누리는 모임일 뿐입니다. 사도행전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인간이 복음을 전해서 실적이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것이고 신자는 그것을 누리고 증거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얼마나 아는가 또는 교회를 얼마나 부흥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하는 지식적 차원에서 실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세상의 것을 버리도록 요구하십니다. 세상적인 것을 부인함으로서 주님의 증인이 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말씀은 이렇습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이것이 사도행전의 끝입니다.

사도행전의 시작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지 않습니까? 성령이 불 같이 임하고 능력을 받아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있었던 사도행전의 시작과는 반대로 사도행전의 끝은 바울이 셋집에 유하며 죄수의 몸으로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다른 사도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숫적으로 부흥된 상태를 말씀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가 사도행전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성령님의 능력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부흥된 교회, 사도들의 위대성, 성령의 능력에 대한 결과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아니 본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저 바울 사도가 죄수로서 복음을 전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사도행전의 초점은 사도들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성령님에 대한 것도 아니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비록 바울 사도는 죄수의 몸으로 매여 있고 감금되어 있는 상태이지만 복음은 매일 수 없고 방해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방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복음을 묶어 놓을 수 있는 세력은 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가능한 것입니까?

주님이 일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이 시작하셨고, 주님께서 계속해서 일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주님의 복음을 단절시키거나 소멸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 주님께서 마무리를 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사도행전이 기록될 초대교회의 상황만 아니라 앞으로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복음에 관한 한, 즉 하나님 자신의 약속을 이루시는 것에 관한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흔히 사도행전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 말을 할 때에 조심해야 합니다. 지금 일어난 교회의 일을 가지고 사도행전으로 이어서 계속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붙잡고 일하시는 그 일하심이 계속되고 있고, 오늘날에도 그 주님의 일을 방해할 어떤 세력도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16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장터에 노는 아이들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11:16,17).

세례 요한이 금식하니까 유대인들은 그가 귀신이 들렸다고 비난했고, 예수님이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며 먹고 마시니까 먹는 것을 탐하고 술을 즐기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비난했습니다(11:18,19). 그래서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하신 중요한 말씀이 19절 하반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같은 말씀이 누가복음 7:35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지혜란 무엇을 말합니까?

구약에서 지혜는 여호와()를 아는 것이라고 했는데 신약에서 예수님 자신을 주로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지혜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다면 지혜가 일을 행하고, 누가복음의 표현대로 하자면 지혜가 자기 자녀를 두고 그들로 인하여 옳다함을 인정받는다고 했습니다.

즉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말씀을 연관시켜서 생각하자면, 지혜이신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동조하든 하지 않든 예수님 홀로 독자적으로 자기 자녀를 만들어 가십니다. 그리고 그들로 인하여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그들로 인하여 주님만 옳고 진리임을 인정받는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16에서 예수님은 이 세대를 무엇을 비유할꼬라고 하셨습니다. 즉 이 세대는 비록 예수님을 진리로 혹은 하나님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주님은 자기 백성들을 천국 백성으로 만들어 가시며 그들로 인하여 진리가 받아들여지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현실적으로 복음을 아무도 받아들이는 자가 없는 것 같으나 결코 복음이 이 세상에 선포되어져 무의미하게 되거나 허공을 치는 메아리 같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마귀의 어떤 방해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방해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방해받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 은혜로 우리를 그 나라에 참여시켜 주셨을 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아프지 않아야 되고 만사형통의 축복이 내게 주어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내가 좋지 않은 형편에 처한 것으로 주님의 복음이 가리워지고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적인 욕심입니다. 오히려 그 생각이 주님의 일을 방해하려고 하는 요소가 됩니다. 복음 때문에 내가 병들 수 있고, 망하는 자리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과 같이 매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복음은 방해받을 수 없습니다.

일은 주님이 하십니다. 내가 일하지 않아도 주님이 알아서 다 하십니다. 우리더러 어떤 실적을 만들어 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전도를 해서 예배당을 채우라는 명령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의 은혜에 나를 참여시켜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도행전 강론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점검합시다. 주성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만 증거하고 가르칩니까? 그것 때문에 매인바 되어도 괜찮고 망해도 감사할 수 있습니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그만 두라고 하시는 뜻이 나타난다면 얼마든지 이제까지 해 온 것을 공로로 생각하지 않고 그만둘 수 있습니까?-사도행전 강론 끝-(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