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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54강
출애굽기 23:14-33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14절). “세 번”이란 문자적으로는 ‘세 발, 세 걸음’이다. “절기를 지킬지니라”의 ‘하가그’는 ‘축제를 하다, 춤추다, 절기를 지키다’라는 뜻이다. 즉 단순히 율법적 행위로 지키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매년”이란 이스라엘 절기가 일 년을 주기로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매년이란 성도의 전 생애를 표현한 것으로 세 번의 절기는 세 걸음 곧 삼 일 길을 의미한다.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15절). “무교병의 절기”란 ‘유월절’과 ‘무교절’을 하나로 표현한 것인데 유대력으로 1월(아빕월) 15일-21일이다. 유월절은 어린 양의 희생으로 구속함의 은혜를 입은 것이고 곧 7일간 무교절로 들어가 누룩 없는 떡을 먹는다는 것은 순전한 진리의 말씀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어린 양의 피로 구속의 은혜를 입은 자가 사람의 계명과 교훈이 들어가지 않은 온전한 말씀을 먹음으로 씨 가진 남자를 기억하는 것(히, ‘자카르’)이 무교절이다. 이것이 언약 안에 있는 모습이다.
“빈손”이라고 번역한 ‘레캄’은 ‘공허하게, 헛되게, 쓸데없이, 이유 없이’라는 뜻이다. “빈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라는 말씀을 직역하면 ‘공허한 것을 보여 주지 말라’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단순히 헌금을 가지고 나오라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채워지지 않은 상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알지 못하는 상태로 무교절을 의미 없이 문자적으로 지켜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16절). 그런데 15절에서 유월절로 표현하지 않고 무교절로 표현한 것은 추수와 관련된 절기로 말씀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이어 “맥추절, 수장절”을 말씀한 것인데 무교절의 1월(태양력으로 3-4월)은 보리 추수와 관련된 절기이다. “맥추절”이라고 우리 성경에는 보리 추수를 연상시키는 표현으로 번역하였는데 ‘카치르’는 ‘수확, 수확물, 큰 나뭇가지’라는 뜻으로 엄밀하게 말하면 ‘수확절’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유대력으로 3월(시완월, 태양력으로 5-6월) 6일인데 밀 추수와 관련되어 있다. 무교절 때 수확한 보리로 첫 이삭을 드린 날로부터 일곱 주가 지난 50일째가 되는 날이기에 ‘칠칠절, 오순절’이라고도 한다.
10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11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 15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곡식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16 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하여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레 23:10-11, 15-16)
“수장절”의 ‘아시프’는 ‘거둬들임, 수확, 모여진’이라는 뜻으로 가을 추수의 기간으로 모든 곡식과 열매들을 최종적으로 거두어들여 창고에 저장하는 절기로 7월(티쉬리, 태양력으로 9-10월) 15-21일에 지킨다. 후에 ‘초막절’로도 불린다.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신 16:13)
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신 16:16-17)
이스라엘을 구속하여 말씀으로 이루어진 열매로 거둬들이는 구원의 완성이요 충만을 의미한다.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농부로 농사를 지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그 열매들을 하나님 왕국의 창고에 모아들임으로 구원이 충만하게 완성되는 것을 계시한다.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17절). “남자”의 ‘자쿠르’는 ‘자카르’에서 유래한 단어로 ‘수컷, 남자’라는 뜻인데 ‘기억된 남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의 모든 언약 백성을 대표하는 비유적 표현이다. 여기서도 “세 번”이란 표현으로 삼 일 길을 강조한 것이다.
“너는 네 제물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내 절기 제물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지니라”(18절). “제물의 피”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가리킨다. 언약의 피에 죄악을 상징하는 누룩이 포함된 빵을 함께 희생 제물로 드릴 수 없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사람의 계명과 교훈을 혼합하여 다른 복음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제물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지니라”라는 말씀은 메시아, 즉 기름은 야훼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이 땅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은 매일 매일 주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음식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레 3:16)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19절). “처음 거둔 열매”의 ‘빅쿠르’는 ‘첫째, 처음, 시작, 최상의 것’이라는 뜻인데 단순히 시간적인 첫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표현은 다음 “가장 좋은 것”이라는 표현으로 그 의미를 잘 보여 주는데 ‘레쉬트’는 ‘첫째, 처음, 시작’이라는 뜻인데 ‘로쉬’(머리, 시작, 우두머리, 가장 중요한, 탁월한)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모든 열매를 대표하는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말씀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낳은 우리가 가장 좋은 첫 열매가 되게 하신다(롬 12:1).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 1:18)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라는 말씀에서 “염소 새끼”란 태어날 때부터 율법으로 살게 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이들은 아무도 가르쳐주는 이가 없는 상태에서 어미가 된다. 그러나 성도는 성령의 인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드리는 영과 진리의 예배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염소 새끼들에게 어미의 교훈인 율법을 전하지 않게 된다. 사람의 계명과 교훈을 섞어서 다른 복음으로 전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여호와의 전”이란 ‘여호와의 집’이다. 즉 성전으로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드릴지니라”는 ‘보’로 ‘들어가서 하나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가장 좋은 것, 곧 진리의 복음만 용납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염소 새끼를 어미의 젖으로 삶지 않은 것, 즉 사람의 계명과 교훈이 섞이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20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21 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22 네가 그의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20-22절).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단순히 가나안 땅이 목표가 아니라 언약의 땅으로 상징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을 처소로 삼아 성소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출 15:17). 이 일을 하나님께서 먼저 앞서서 행하신다. 이것을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22절)이라고 표현은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행하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말씀이 이루신다는 것이다.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22절)라는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대로 일하신다는 것을 말씀한 것이다(창 12:3). 그래서 “내이름”(21절)을 그에게 두셨다고 하셨다. 즉 이스라엘 안에 구원의 이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언약의 후손으로 주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23 내 사자가 네 앞서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로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끊으리니 24 너는 그들의 신을 경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고 그것들을 다 깨뜨리며 그들의 주상을 부수고 25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23-25절). 하나님의 구원은 원수를 진멸하심으로 이루어진다. 그 원수를 현실적으로 애굽으로 말씀한 것과 같이 가나안 땅의 족속들로 표현하신다. 가나안 족속을 심판하신다는 것은 그들의 우상을 쳐부수신다는 것과 같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점령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점령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먼저 우리가 가나안 땅의 족속으로 살게 하셨으나 나중에는 언약으로 나를 점령하여 겉사람을 벗고 속사람, 영의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이다.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25절)이라는 표현이 이스라엘이 야훼 하나님을 잘 섬기면 된다는 조건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으로 행하여 이루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고 그분이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25절)라는 말씀대로 양식과 물로 상징되는 진리를 넘겨주시는 복을 주심으로 예수를 육으로만 아는 병에서 고침을 받고 놓임을 받는 것이다.
“26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27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네가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물리치고 네 모든 원수들이 네게 등을 돌려 도망하게 할 것이며”(26-27절). 언약의 후손이 이어질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 후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으로 이스라엘을 이끌어 가심이 날 수를 채우는 것이다.
“28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29 그러나 그 땅이 황폐하게 됨으로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 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30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31 내가 네 경계를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강까지 정하고 그 땅의 주민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지라 32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들과 언약하지 말라 33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를 내게 범죄하게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들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28-33절). 가나안 땅의 족속들을 이스라엘이 쫓아내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언약을 맺는다는 것은 그들과 연합하고 하나가 되는 것이다. 곧 결혼 관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 안에서 이미 결혼이 이루어졌기에 언약의 말씀이신 남편, 곧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다는 뜻이다. “올무”(33절)가 된다는 것은 사람의 계명과 교훈이 함정이 되고 덫이 된다는 의미이다.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20절), “내 사자가 네 앞서 가서”(23절),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27절),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28절)라고 같은 의미의 표현을 다른 말로 강조하였다. “사자”(히, ‘말라크’), “위엄”(히, ‘에마’), “왕벌”(히, ‘치르아’)은 말씀과 두려움, 구원과 심판(신 7:20, 수 24:12)을 동반한 자로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셨고 은혜로 주시는 땅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루시고 자기 언약의 완성으로 이끌어 가신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를 하나님의 처소로 만드시기 위하여 앞서서 행하신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십자가이다(20260405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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