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출애굽기

53. 출애굽기 23:1-13 가난한 자의 안식

불편한 진리 2026. 4. 5.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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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53강

출애굽기 23:1-13

가난한 자의 안식

 

언약의 말씀은 “거룩한 사람”(출 22:31)을 만드시는 것이다. 그래서 이 율법은 거룩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된다(마 5:17).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거룩한 자 곧 성도이며 한몸된 교회이다.

“1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2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1-2절) “거짓된 풍설”(1절)이란 ‘거짓된 허위 소문, 공허한 소식’이라는 말로 진리를 사람의 계명과 교훈으로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거짓 증언은 악인과 연합하는 일이고 그것 자체가 폭력이다. “위증”(1절)이라고 번역한 ‘하마스’는 ‘폭력, 난폭, 부당 행위, 불법, 악’이라는 뜻이다(창 6:13).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2절)라는 말씀과 같이 악인은 많은 사람의 힘을 따라 진리를 결정한다. 이렇게 다수가 결정한 진리는 이웃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거짓 증거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악인들로 뭉친 무리는 종교성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살해할 뿐이다.

 

59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60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61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62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마 26:59-62)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3절). “가난한 자”의 ‘달’은 ‘낮은, 약한, 가난한’이라는 뜻이다. “편벽되이”의 ‘하다르’는 ‘부풀어 오르다, 꾸미다’라는 뜻이다. 외형상 가난하다는 것이 의롭게 되어야 할 근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구원은 꾸민 외모(행위)를 보지 않고 행하신다는 언약의 말씀이다.

“4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5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4-5절). 이웃의 소나 나귀가 길을 잃은 것을 보았다면 이 규례대로 행할 수 있을 것이다. 신명기에서 “1 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그것들을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 2 네 형제가 네게서 멀거나 또는 네가 그를 알지 못하거든 그 짐승을 네 집으로 끌고 가서 네 형제가 찾기까지 네게 두었다가 그에게 돌려 줄지니”(신 22:1-2)라고 말씀한다. 그러나 원수나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이 규례대로 행할 수 있을까?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율법을 온전히 성취하시면 원수와 미워하는 자들까지 형제로 만들어 주심으로 이 말씀은 성취가 된다. 따라서 소는 율법의 일꾼, 나귀는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진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비유한다.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 2:14-16)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6절). 여기서 “가난한 자”(6절)는 3절의 “가난한 자”와 달리 ‘에브욘’으로 표현하였는데 ‘궁핍한 자, 가난한 자’라는 뜻이다. 문자적으로는 가난한 약자를 무시하고 부자에게 유리한 재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재판은 대부분 기득권을 가진 부자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불공평한 재판이 된다. 그래서 가난한 약자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불공정한 재판으로 판결하여 십자가 죽음으로 내몰았다.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눅 23:4)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7절). “거짓 일”의 ‘다바르 셰케르’는 거짓 된 일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거짓 된 말씀’이다. 즉 비진리의 말씀은 언약 백성 이스라엘 안에서는 제거되어야 한다. 죄가 없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살해함으로 유대인들은 악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율법주의자들에게서 죽임을 당하셨다. 이는 단순히 유대인들만 악인이라는 뜻이 아니다. 유대인은 이 땅의 모든 죄인의 대표상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로 알고 성경을 연구하여 율법으로 의인이 되고자 하는 모든 자가 악인이다. 이런 점에서 이 땅의 모든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악인이요 사람의 계명과 교훈인 비진리(거짓 일)를 좇는 자라는 뜻이다(롬 2:14-15). 결국 이 규례는 문자와 행위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8절). “뇌물”의 ‘쇼하드’는 ‘선물, 뇌물, 보상’이라는 뜻이다. 뇌물이란 주는 자와 받는 자, 부탁하는 자와 부탁받고 결정하는 자 모두를 만족하게 하려는 의도로 이루어진다. 곧 꼬리와 머리의 관계이다.

 

1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와 종려나무 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 15 그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그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16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을 미혹하니 인도를 받는 자들이 멸망을 당하는도다(사 9:14-16)

 

머리와 꼬리가 하나 되어 다른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 뇌물을 주고받는 자들이다. 결국 야훼 하나님을 찾지 않고 땅적 관계 안에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물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하는 것이다.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다(엡 2:8).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9절). “이방 나그네”는 출애굽 때 함께 나온 “수많은 잡족”(출 12:38)에 속한 자들이다. 이스라엘은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으나 스스로 벗어날 수 없었다. 야훼 하나님이 아니면 그들은 영원히 이방 나그네의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함께 거주하는 이방인들을 압제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이방 나그네의 삶을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안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고 이방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일을 통해서 이 땅에 나그네로 오셔서 구원을 이루실 언약의 실체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씀 역시 문자의 율법이 아니라 언약의 말씀이다.

“10 너는 여섯 해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11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10-11절). “여섯 해”(10절)의 ‘6’은 인간의 수요 짐승의 수로 문자의 율법을 따라 행위로 사는 과정을 보여 주고, “일곱째 해”(11절)의 ‘7’은 언약으로 일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살게 하시는 안식을 보여 준다. 처음에는 종으로 살지만 나중에는 아들로 살게 하신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파종하여 소산을 거두어 내가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아버지께서 언약으로 일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신다. 처음에는 내가 땅의 주인으로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땅 주인이 야훼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신다. 그래서 땅 주인의 말씀에 의해 일 년 동안 땅을 묵히게 되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11절)과 “들짐승”(11절)도 먹는다는 것은 일하지 않은 자들, 곧 언약의 혜택을 누릴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조차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푸시는 안식을 누린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포도원과 감람원”(11절)으로 비유되는 하나님의 왕국이 들짐승과 같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안식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안식년의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 지켰다고 할지라도 율법이 말씀하는 복음으로 알지 못하고 그저 문자로 지켰다.

 

너희가 그 땅에 거주하는 동안 너희가 안식할 때에 땅은 쉬지 못하였으나 그 땅이 황무할 동안에는 쉬게 되리라(레 26:35)

 

11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렘 25:11-12) …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

 

하나님께서 강제로 땅의 안식을 주셨고 또한 그 땅을 남은 자로 채우시는 일도 하나님께서 하셨다. 결국 안식년은 이스라엘이 지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키고 성취하신다는 것을 나타내셨다.

“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12절). 출애굽기의 열 말씀에서 안식은 창조를 근거로 말씀하지만(출 20:8-11), 신명기의 열 말씀에서는 출애굽의 구원을 근거로 말씀한다(신 5:12-15). 즉 창조는 구원을 계시하는 말씀이다. 따라서 “일곱째 날”은 창조와 구원의 완성은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일하신 결과로 주어진다는 것을 나타낸다.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출 31:14)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죽여야 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일하심으로 죽임을 당하실 것을 계시한 언약의 말씀이다. 그것이 십자가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7-28)

 

“사람”을 나로 착각하여 안식일이 나의 쉼을 위해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나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주인이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주인을 죽인 짐승들의 죄악을 폭로하셨다. 다시 말해서 짐승들은 안식년, 안식일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결국 구약의 안식에 대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복음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소, 나귀, 여종, 자식, 나그네”로 비유된 율법의 짐을 지고 쉼이 없이 일한 자들에게 넘겨주신 안식이다.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하지 말지니라”(13절). “부르지도 말며”의 ‘로 자카르’는 ‘기억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여기서도 “다른 신들”(히, ‘엘로힘 아헤림’)이란 야훼 하나님을 향해 마주 서 대적하는 나를 의미한다. “들리게도 하지 말지니라”는 ‘로 샤마’로 ‘들리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자신이 신이 되어 율법의 문자를 기억하여 행위로 순종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기억하시고(히, ‘자카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진리로 들리게 하시겠다는(히, ‘샤마’) 언약의 말씀이다(20260405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출53.2301-13 가난한 자의 안식(2026040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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