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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31강
출애굽기 14:15-31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2)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바다가 가로놓인 막다른 곳으로 인도하셨다. 만약 하나님의 인도가 없었다면 그들은 홍해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이스라엘을 바다 쪽으로 인도하셨다. 바로는 완악함 그대로 두심으로 이스라엘을 추격하도록 허용하셨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이스라엘을 궁지에 몰아넣으시니 모세를 대적하며 반역함으로 하늘의 생명을 모른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반역은 교회 역사 2,000년을 이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오늘날도 십자가의 은혜를 담은 자기 백성을 남기신다.
“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15-16절).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고 했던 모세가 왜 갑자기 두려워 부르짖는가? 이 표현은 모세가 부르짖었다기보다 백성들의 중보자로 모세가 부르짖었다는 의미이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은 자기를 위한 인간의 기도를 무색하게 하신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15절)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기도에 의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명령”(히, ‘다바르’), 즉 말씀에 의해 나아간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 말씀의 능력이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16절)라는 표현으로 보여준다. 즉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미는 것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니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16절)라는 표현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이스라엘이 기도하였기 때문이라든지 혹은 그 기도의 응답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그저 말씀에 이끌려 가는 것이다.
“17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18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17-18절). 하나님은 애굽 사람들을 쳐죽이는 것을 통해 영광을 얻으신다고 말씀한다. 더욱이 시편 136:15에 보면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하였고, 이어 18절에서도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시편 기록자는 노래하였다. 어찌하여 애굽의 군대를 홍해에 몰사시키고, 유명한 왕들을 죽이는 분이 인자하신 분인가? 더구나 그것으로 인해 영광을 얻으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한다. 이런 말씀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악취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중심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낸 것이다. 언약 성취를 위해 아들을 십자가 죽음에 내어주심으로 자기 영광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오직 십자가만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러므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18절)라는 말씀은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 하나 되는 것으로 온전히 성취되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교회는 수억 원의 파이프오르간과 오케스트라를 거느린 것을 자랑하는 교회나 많은 수의 교인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교회가 아니며, 세계적으로 선교하며 사람들이 놀랄만한 큰일을 하는 교회가 아니고, 기도와 전도로 인간의 공로가 드높아지는 교회가 아니며, 상급의 차등에 대한 잘못된 믿음으로 경쟁이 난무하는 교회도 아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애굽의 병거나 마병과 같은 것으로 바다에 빠뜨려 몰사되고 이름도 빛도 없이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모습으로 십자가만 드러나는 교회이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사 31:1)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 20:7)
“19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20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19-20절). “구름 기둥”(19절)으로 상징된 이스라엘에게 임한 하나님께서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을 갈라놓으신다. 애굽 쪽은 구름과 흑암이었고 이스라엘 쪽은 밤이었지만 밝은 상태로 유지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짐으로 애굽에게는 심판이고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은혜가 임한 것은 그들의 잘남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언약의 성취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히 11:29)
“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22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21-22절).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21절)라는 표현은 앞에서 생각한 바와 같이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마른 땅”(21절)은 ‘얍바사’와 다른 단어로 ‘하라바’로 ‘마른 땅, 황무지’를 뜻하는데 그러면 ‘얍바사’(16, 22, 29절)와 어떻게 다른가?
22 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얍바사)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23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24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수 4:22-24)
‘얍바사’는 창조 언약에서 “뭍”은 아랫물(바다)에서 드러난 것이다(창 1:9-10). 이런 점에서 마른 땅을 건너 언약의 땅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마른 땅의 처음은 ‘하라바’로 황무지이다. 다시 말해서 처음의 황무지를 지나 ‘얍바사’를 밟고 언약의 땅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황무지라는 ‘하라바’는 ‘헤레브’(칼)와 자음으로는 같은 단어이다. 이스라엘은 ‘헤레브’와 같은 ‘하라바’를 넘어 ‘얍바사’를 밟아 언약의 땅으로 가게 되지만 애굽은 마른 땅을 밟았으나 그들에게는 칼(히, ‘헤레브’)이 되어 멸망의 자리가 된다. 하라바를 건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언약에 의해 이루어진다. 결국 바로가 1:22에서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라고 선포하여 모세와 이스라엘을 수장시키려고 하였던 것이 애굽으로 되돌려 애굽이 수장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23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24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25 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23-25절). 갈라진 바다는 죽음이다. 그 속에 이스라엘과 애굽이 같이 있다. 이것은 애굽에서 장자의 심판 속에 이스라엘과 애굽이 같이 있었던 것과 같다. 그러나 지금은 이스라엘은 어린 양의 피로 말미암아 새로 태어난 존재이다. 결국 홍해에서 이스라엘이 살고 애굽이 죽는 것은 새로 태어난 하나님의 백성과 옛사람의 애굽인이가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새사람이 된 존재와 피와 상관없이 옛사람 그대로 있는 자의 운명이 결과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를 홍해 사건을 통해 분명히 나타내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넘으로써 단지 죽음에서 살아났다는 것이 아니라 애굽이라는 옛 세계와 결별하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온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홍해 사건은 세례의 의미를 보여준다.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1-2)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벧전 3:21)
“모세에게 속하여”라는 표현은 ‘모세 안에서’라는 뜻이다. 즉 모세가 예표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은 것이다. 세례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하기에(롬 6:3-4) 예수 그리스도의 죽죽음 안에서 홍해를 건넜다는 것이다. 우리의 행위가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세례를 받음으로 옛사람을 죽음에 날마다 넘기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만 본 자는 역시 새로운 세계에서도 무엇을 행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라 날마다 십자가 죽음이 하나님께 영광이다.
“2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27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28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26-28절). 물이 다시 흐른다는 것은 애굽인은 아랫물이라는 율법의 문자에 갇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바다라는 세상은 죄악의 권세와 같은 것이다. 애굽의 군대라는 죄가 죽음이라는 바다에 던져졌다는 뜻이다.
“29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더라 30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애굽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더라 3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29-31절). “그러나”(29절)라는 반어적 접속사로 애굽과 대조됨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히, ‘얍바사’)로 행하였다. 언약의 땅으로 가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의로움이 아니라 유월절 어린 양의 피에 근거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구원이다.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19-20)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하신다는 의미는 나를 날마다 죽이신 후 살리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바다에는 길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길을 내셨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만든 길이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길이다(20251221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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