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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28강
출애굽기 13:1-10
영원한 규례
본문은 단순히 유월절, 무교절 규례를 반복하여 주시는 것이 아니다. 출애굽의 의미를 유월절과 무교절 규례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이르시되”(1절). “일러”는 ‘다바르’이고 “이르시되”는 ‘아마르’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월절의 의미를 말씀으로 선포하고 알려주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2절). “짐승”의 ‘베헤마’는 ‘네 발 가진 짐승’이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라고 번역하였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라는 표현은 없다. “거룩히”의 ‘카다쉬’는 ‘거룩(하게) 하다, 성별하다, 구별하다, 신성하게 여기다’라는 뜻이다.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이란 그다음에 발생되는 것을 대표하는 하나이다. 다시 말해서 처음 난 것 안에 그다음 난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처음 난 것만 여호와의 것으로 인정하면 되는 것이지 왜 짐승의 처음 난 것까지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해야 하는가? 짐승이 유월절을 알 수 있는가? 결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단순한 짐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과 같은 땅적 존재를 지칭하는 것이다. 유월절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네 발 가진 땅적 짐승과 같은 존재이다. 이런 점에서 짐승을 거론한 것은 짐승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아직 어린 양을 알지 못하고 그 어린 양을 말하지 못하는 짐승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사람에 의해 짐승이 유월절을 알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 것”이란 사람에 의해 네 발 가진 짐승의 존재는 하나님의 언약 안의 소유가 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구원이다. 그러니까 처음 난 것만 구원이 아니라 그다음에 난 것들도 모두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다. 사람, 곧 처음 난 분에 의해 짐승과 같은 땅적 존재의 그다음의 것이 구원을 받았으니 구원하신 분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월절 규례는 장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다음 것들이 구원을 얻는다는 약속이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고전 15:20-23)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원은 개인 구원도 아니고 단체 구원도 아니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구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만 구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만 초태생이요 첫 열매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날 교회들이 내가 구원을 받아야 한다든지 또는 확신이 있어야 된다든지 확신을 가지고 믿음을 키워야 한다든지 하는 그런 모든 가르침은 거짓말이다. 성경에 없는 말이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이루어지는 구원이다. 건물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 곳에서 인도해 내셨음이니라”(3절). “기념하여”의 ‘자카르’는 언약 용어로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것이고 또한 씨 가진 존재를 통해 언약을 완성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어린 양의 피로 이루시는 구원이다.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이루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는 “유교병”, 즉 누룩이 들어간 빵을 먹어서는 안 된다. 율법의 종으로 있을 때 먹던 것이 유교병이기 때문이다. 곧 애굽이라는 껍데기 성전에서는 사람의 계명과 교훈이 들어간 다른 복음으로 종교 생활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린 양의 피 외에 문자적인 율법의 행위나 인간의 계명이나 교훈 그 어떤 것도 첨가되거나 추가될 수 없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다(마 16:6).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란 교회요 성도는 율법적 행위가 없는 자라는 뜻이다. 따라서 할례, 안식일, 십일조, 절기 지킴 등의 율법 준수는 내버려야 할 누룩이다.
“4 아빕월 이 날에 너희가 나왔으니 5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 곧 네게 주시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시거든 너는 이 달에 이 예식을 지켜 6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고 일곱째 날에는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라”(4-6절). “아빕”(4절)의 ‘아비브’는 ‘녹색, 곡식의 여린 이삭’이란 뜻이다. 이 날은 1월 15일 무교절이다. 한마디로 여호와의 순전한 말씀으로 출애굽 하였다는 뜻이다. 이미 12:2 강론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비브’는 ‘부드럽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즉 여호와의 순전한 말씀이 양식으로 주어지고 있다는 뜻이니 곧 딱딱한 율법적 행위가 아닌 부드러운 복음이 이스라엘에게 양식이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5절)이라고 표현하였는데 가나안 족속의 숫자는 창세기 13:7에서는 ‘둘’(가나안, 브리스), 본문에서와 민수기 13:29에서는 ‘다섯’(아멜렉, 헷, 여부스, 아모리, 가나안), 또는 출애굽기 3:8, 사사기 3:5에서는 ‘여섯’(가나안, 헷, 아모리, 브리스, 히위, 여부스), 창세기 15:19-21에서는 ‘열’(겐, 그니스, 갓몬, 헷, 브리스, 르바, 아모리, 가나안, 기르가스, 여부스), 창세기 10:15-18에서는 ‘열 둘’(가나안, 시돈, 헷, 여부스, 아모리, 기르가스, 히위, 일가, 신, 아르왓, 스말, 하맛) 등으로 표현된다.
일반적으로 ‘가나안 일곱 족속’(신 7:1)으로 일컬어져 육체의 모양에 있어서 언약을 믿는 것과 같은 모양으로 그 종교성을 나타낸다. 겉모양을 언약으로 나타내고 있는 모습을 지녔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대적하고 있는 상태를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가나안 족속은 늘 언약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심판받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런 점에서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구원은 언제나 심판을 전제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복음을 알게 되고 믿게 되었다는 것은 가나안 일곱 족속의 모습, 곧 십자가를 대적하는 죄악된 마음이 이미 심판받았음을 전제한다. 그것을 죽음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내가 예수를 믿었다는 식의 주장은 성경 말씀과 배치된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롬 4:17)
“젖과 꿀이 흐르는 땅”(5절)이란 “젖”이란 가축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꿀”은 꽃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이스라엘이 가축을 기르는 모습을 상징한다. 가축들에게 풀을 많이 먹여 젖을 생산하는 것이다. 풀이 많으니 자연히 풀의 꽃들을 통해서 꿀도 많이 생산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기로는 실제 가나안 땅이 그런 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가축을 길러 풍성한 상태가 된다는 것은 언약적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언약을 통해 가축과 같은 땅적 존재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언약적 관점에서 가나안 땅은 하나님 왕국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바르게 세워주는 일을 위해 선택된 자들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시거든 너는 이 달에 이 예식을 지켜”(5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지키라’는 표현은 ‘아바드’로 섬기는 것을 말한다. 즉 유월절을 “예식”으로 주셨지만 그것은 이스라엘이 행동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섬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섬기는 것이 유월절 예식의 완성이다.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고 일곱째 날에는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라”(6절)라고 하였는데 이는 “너희에게 첫날에도 성회요 일곱째 날에도 성회가 되리니 너희는 이 두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각자의 먹을 것만 갖출 것이니라”(출 12:16)라는 말씀의 반복으로 7일 동안 무교절 기간에 첫날과 마지막 날에는 성회로 모이라는 것이다. 즉 훗날 하나님의 아들들이 말씀을 양식으로 삼는 그 일을 멈추지 않게 될 것을 언약하시는 말씀이다.
“이레 동안에는 무교병을 먹고 유교병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며 네 땅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라”(7절). “이레”의 ‘7’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일하심을 나타내는 숫자이다. 따라서 이 말씀은 언약의 땅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순전한 진리의 말씀만 용납되는 땅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왕국을 보여준다.
“너는 그 날에 네 아들에게 보여 이르기를 이 예식은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로 말미암음이라 하고”(8절). “아들에게 보여 이르기를”이라는 표현은 출애굽을 경험하였다는 것은 단순히 나는 구원받았다는 자기 이기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그런 구원이 아니다. 아들에게 선포(히, ‘아마르’)하는 것이다. 우리 성경에 “나를 위하여”라고 번역하였는데 정확하게 표현하면 ‘나에게’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나에게 행하신 일이다. 나에게 행하신 일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죽음에서 건져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식을 계속 지킨다는 것은 문자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월절 규례는 문자적인 율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월절은 과거의 출애굽 사건을 현재화시킨 것이다. 그러니까 출애굽 사건은 과거에 일어난 역사 속의 일이지만 그 구원을 현재에도 기억하고 설명함으로 계속 누려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영원한 규례”(출 12:14, 17)이다. 영원한 규례란 묵시의 일이 역사 속으로 침투하여 현재화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영원하다는 의미는 영원하신 분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월절 규례가 완성되어 그 뜻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이기에 단순히 이스라엘이 행동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의미하는 바를 알고 그 언약을 지금, 날마다 마음에 품고 새기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요 성도는 유월절을 행동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는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9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강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10 해마다 절기가 되면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9-10절).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9절)라는 말씀은 단순히 입으로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입이란 마음의 가장자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우리의 마음에 진리의 말씀을 담은 상태여야 한다는 뜻이다. “지킬지니라”의 히브리어는 ‘샤마르’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 순종하게 된 상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을 위해 손의 기호, 미간의 표를 삼는 것이다.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4-9)
(20251207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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