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출애굽기

29. 출애굽기 13:11-22 처음 난 것

불편한 진리 2025. 12. 1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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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29

출애굽기 13:11-22

처음 난 것

 

 

처음 난 것의 대속에 대한 말씀을 반복하여 주심으로 다시 확인시키신다. 단순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출애굽이라는 구원은 처음 난 것의 거룩에 대한 계시이다. 그래서 거룩히 구별하고, 기억하여야 하며, 무교병을 먹는 것을 통해 진리를 마음에 담고, 자녀에게 진리를 넘겨주도록 하셨는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기억하여 행하신다는 의미이다.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11절).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라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언약의 땅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언약 때문이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였기 때문이 아님을 다시 확인시키신다. 다시 말해서 영원한 규례를 통해 구원의 사건을 하나님께서 계속 현재화하여 이루신다는 것이다.

“인도하시고”의 ‘보’는 ‘들어가서 하나 되는 것’을 뜻한다. 즉 언약의 땅에 들어간다는 것은 언약의 땅과 하나 된다는 것이고 곧 하나님 왕국이 된다는 의미이다. “주시거든”을 ‘나탄’(주다, 두다, 놓다, 세우다)이라는 단어를 썼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언약의 땅으로 들어가 하나 되게 하시는 것은 언약 백성을 그 땅에 세우시기 위함이라는 뜻이다. 그 땅에 세우시는 이유는 자기 언약을 나타내시기 위한 것이다.

“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과 네게 있는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12절). “구별하여”의 ‘아바르’는 ‘지나가다, 건너가다, 사라지다, 소멸하다, 넘겨주다, 통과하다, 끝나다, 화내다’라는 뜻이다. 여기서도 “돌리라”라는 표현은 없는데 번역하면서 넣은 말이다. 구별한 것은 여호와의 것이라고 강조한 표현이다. 13:2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라고 하셨는데 이때 “구별하여”를 ‘카다쉬’로 썼다고 우리는 앞의 강론에서 확인했었다. 그러니까 애굽을 건너가서 분리되고 단절되는 것이 거룩(히, ‘카도쉬’)이고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다시 넘겨준다는 것이다. 언약 백성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거룩하다고 할 수 없기에 거룩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고백한다는 의미이다.

“수컷”의 ‘자카르’는 언약 용어로 ‘씨 가진 남자’를 말한다. 애굽을 건너서 분리되고 단절된 자는 남자이다. 다시 말해서 언약을 성취할 씨 가진 남자를 계시하기 위해 “여호와의 것”임을 강조한다. 그러니 수컷, 남자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다. 이스라엘이 어린 양의 피를 문에 발라 죽음의 심판을 받지 않은 것은 씨 가진 남자를 위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결국 씨 가진 남자가 피 흘리는 죽음으로 언약을 성취하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런데 “태에서 처음 난 것”과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까지 여호와의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씀한다. 여기서 “가축”은 이미 2절에서 “사람이나 짐승(히, ‘베헤마’)을 막론하고”라고 말씀한 것과 같은 표현으로 ‘베헤마’를 쓰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도 생물학적인 가축이나 짐승이 아니라 유월절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네발 가진 땅적 존재인 가축, 짐승으로 표현한 것이다.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니라”(13절).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갑자기 “나귀의 첫 새끼”를 말씀하시는 이유를 문자적으로만 보면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13:2의 “짐승”과 12절의 “가축”을 어린 양을 알지 못하여 짐승의 상태에 있는 존재로 이해한다는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나귀”는 율법의 짐을 지고 있는 부정한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고(레 11:1-8), “첫 새끼”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어린 존재라 할지라도 율법의 짐을 지고 태어난 부정한 존재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라는 말씀은 목을 벤다는 뜻이다. 머리가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부정한 자의 머리가 베어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머리가 교체된다는 언약의 말씀이다. 나귀의 입장에서 보자면 태어나자마자 죽어야 할 운명이다. 그러나 어린 양이 있으면 살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 말씀이다. 결국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 네 아들 중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니라”라는 표현은 아들 중 장자에 대하여 율법의 짐을 진 부정한 자를 나귀로 대표하여 설명하면서 어린 양으로 대속해야 한다고 말씀한 것이다.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 1:18-21)

 

“14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찌 됨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15 그 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셨으므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수컷들은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내 아들 중에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하리니 16 이것이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가 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14-16절).

이 말씀은 13:8-9 말씀의 반복이다. 이렇게 계속 반복하신 것은 강조하신 것이고 또한 그 말씀을 확증하신다는 의미이다. 이스라엘이 처음 난 것을 여호와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넘겨주어야 되는 이유는 애굽의 장자는 치셨지만 이스라엘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인하여 대속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약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이스라엘 자체가 처음 난 것이다.

 

12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맏이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13 처음 태어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태어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태어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하게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민 3:12-13)

 

어린 양으로 대속한다는 것은 오직 어린 양 안에서만 부정한 존재가 거룩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처음 난 것을 어린 양으로 대속한다는 것은 어린 양의 죽음을 늘 기억하게 하시는 언약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은 이 언약을 나타내도록 선택되어 언약의 땅에 세워진 민족이다. 그러기에 유월절 규례를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의 피를 드러내고 증거하기 위해 선택된 것이다. 그 선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완성된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우리의 구원은 첫 열매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 1:18)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17-18절). 애굽에서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은 지중해 연안을 따라 블레셋 땅을 통과하는 것이다(성경학자들의 추론에 의하면 도보로 10일이면 가능한 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인도하시지 않고 광야로 인도하신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표현이 나온다. 블레셋 땅의 길로 인도하시지 않은 이유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17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광야를 거쳐서 가는 길에서 전쟁이 없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물리적인 전쟁이 목적이 될 수 없기에 야곱이 경험한 것과 같이 에서와의 전쟁이 아니라 이스라엘로서 하나님과 겨루었듯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대로 군대로서 하나님과의 전쟁, 곧 언약을 확인하는 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성경에 “대열을 지어 나올 때”(18절)라고 번역하였는데 ‘하무시’는 ‘전쟁 준비를 갖추다, 전투 대형을 이루다’라는 뜻이다. 즉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아 언약의 말씀을 확인하는 것을 위해 전쟁 준비를 갖추었다고 표현한 것이다. 광야로 간다는 것은 모세가 경험하였던 그 시내 산에 서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을 이미 모세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 3:12)

 

시내 산에 당도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에 보내어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신 증거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경이 70인역의 번역을 따라 “홍해”라고 번역하였는데 히브리어로는 ‘얌 수프’로 문자적으로 ‘갈대 바다’이다. ‘수프’(갈대)는 ‘파피루스’를 의미하는 애굽어와 관련되어 있다. 아무튼 이스라엘은 “광야”로 인도함을 받았는데 히브리어 ‘미드바르’는 ‘다바르’에서 온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갈대 바다를 거쳐 자신의 말씀 가운데로 인도하셨다는 뜻이다. 말씀은 이스라엘을 육에서 영으로 바꾸어 놓으실 것이다.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19절).

 

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창 50:24-25)

 

25절에서 “돌보시리니”의 ‘파카드’(방문하다)를 “너희를 찾아오시리니”라는 말씀에서도 같은 단어를 사용하여 언약으로 하나님의 찾아오심이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진두에 요셉의 유골을 가졌다는 것은 언약 안에서 죽은 요셉이 처음 난 것이 되어 언약 백성들을 인도한다는 의미이다. 곧 언약의 말씀이 이스라엘을 이끌고 있음을 나타낸다. 결국 믿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찾아오심은 십자가 죽음으로 언약이 성취되었고 우리가 그 죽음에 참여함으로 생명 안에 거하게 되었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히 11:22)

 

“20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20-22절). “에담”(20절)의 히브리어 ‘에탐’은 ‘그들과 함께‘라는 뜻이다. 그것을 가시적으로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21, 22절)으로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불로 임한 심판이 구름으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에게 임하여 말씀으로 함께하는 것이 구원이라는 의미이다(시 99:7)(20251214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출29.1311-22 처음 난 것(2025121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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