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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27강
출애굽기 12:37-51
출애굽-여호와의 밤
열 이적을 통해 이스라엘이 죽음 가운데 있는 죄인의 존재임을 폭로하고 출애굽하여 시내 산에서 주신 열 말씀을 통해 진리의 말씀으로 온전하게 됨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열 이적은 애굽인들에게는 재앙으로 받아들여져 심판 가운데 있는 모습으로 드러나지만, 언약 백성들에게는 재앙이 아니라 언약의 표로 받아들여져 유월절 어린 양의 피에 근거하여 열 말씀 안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37절). “라암셋”의 히브리어 ‘라메세스’는 애굽어에서 유래하였는데 ‘태양신 라가 창조하였다, 혹은 태양신 라가 창조한 땅’이라는 뜻이다. ‘라’가 창조한 눈에 보이는 땅, 세상을 통하여 하나님 왕국을 계시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들어갈 때 ‘땅 중의 땅으로 좋은 땅’(창 47:11)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언약 백성이 거주하는 곳이었기에 좋은 땅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그곳을 벗어났다. 품었던 언약을 상실한 땅은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일 수밖에 없다.
“숙곳”은 ‘숙코트’는 ‘피난 장소, 오두막’이라는 뜻으로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임시로 있었던 곳(창 33:17)과 다른 지명이지만 같은 이름으로 표현하여 하나님의 이끄심의 노정에 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라암셋은 숙곳과 대조된 지명이다. 어린 양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애굽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가는 그 일은 언약의 과정에 있고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그 길을 잘 가고 있다는 뜻이다.
“장정”은 용사와 같이 힘이 강한 겉사람을, “유아”는 이스마엘에게 희롱을 당한 어린 이삭과 같은 속사람을 비유한다(창 21:8-10, 갈 4:21-31). “육십만”은 민수기 1:45-46에서 계수된 숫자로 보면 603,550명인데 칠십만에 미치지 못하는 겉사람을 의미한다. 장정이라는 겉사람은 광야 40년 동안 낡아지는 존재이나 유아라는 속사람은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충만하게 되어 온전한 사람으로 언약의 땅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비유로 보여주는 것이다(참고 고후 4:16).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3-15)
그러니까 출애굽의 육십만은 죄악의 권세에 매인 육의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일을 비유하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 완성하심을 보여주는 숫자이다. 결국 하나님의 관심사는 광야에서 누구는 죽이고 누구는 살려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언약의 사람으로 언약의 땅에 채우시는 것이다. 그래서 신명기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1-3)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38절). “잡족”의 ‘에레브’는 ‘직물, 혼합, 섞인 무리, 씨, 줄’이라는 뜻이고, “가축”은 ‘미크네’로 ‘가축, 소유물’이라는 뜻이다. 이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였다는 것은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수많은”이라고 표현함으로 힘으로 여기는 율법적 행위들이 무너져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39절). 애굽에서 나오는 구원을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라고 표현한 것이다. 한마디로 율법적인 행위를 버리고 누룩 없는 진리의 빵을 품고 애굽에서 나왔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죄에서 구원은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는 것이다. “가지고 나온”이라는 말의 ‘야차’는 ‘나가다, 떠나다, 나가게 하다, 이끌어 내다, 분리, 죽음’이라는 뜻인데 완전히 벗어난다는 의미로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났을 때 사용된 표현이다(창 12:4). 즉 하나님께서 이끌어 내셨다는 것이다.
“쫓겨나므로”의 ‘가라쉬’는 ‘쫓아내다, 내던지다, 버리다, 추방하다, 이혼하다’라는 뜻인데 죄악을 상징하는 율법의 행위에 사로잡힌 애굽이라는 세상과 결별하고 이혼하였다는 의미로 나타낸다. 그래서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라고 하였는데 “준비”라는 말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다는 표현인 ‘아사’(일하다, 행하다, 만들다, 이루다)를 썼다. 즉 무교병이란 사람이 스스로 준비하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로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구원을 새 창조로 표현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40절). “사백삼십 년”이란 역사적으로 야곱이 130세(창 47:9, 요셉은 39세)에 그 가족과 함께 애굽으로 이주하였던 때(B.C 1876년)로부터 출애굽이 이루어진 때(B.C 1446년) 까지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기간은 창세기 15:13에서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라는 말씀과 30년의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이 기간은 단순히 숫자를 말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400’은 이스라엘이 무너지고 깨어져야 함을 말씀한 것이고, ‘30’(3×10)은 무너지고 깨어짐이 하나님에 의해 온전하게 성취된 것을 나타낸다.
“41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42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41-42절).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여호와의 군대”(41절)가 나온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제까지 열 이적의 과정이 전쟁이었다는 뜻이다. 출애굽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고 그 전쟁은 이스라엘의 전쟁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치루신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그저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승리에 참여하게 된 전쟁이다. 따라서 “여호와의 군대”(41절)는 여호와 하나님과 하나 되었기에 여호와의 소유가 된 군대로 신약에서 교회를 지칭한다.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계 19:11-14)
그러기에 이 구원은 “밤”(42절)에 이루어진 전쟁이다. 야곱이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갈 때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나 “하나님의 군대”(창 32:2)라고 하였고, 거기서 하나님을 대면함으로 육의 사람이 죽고 영의 사람으로 살아나 “이스라엘”(창 32:28)이라는 언약의 이름이 밤에 주어졌다(창 32:13, 21, 22, 24, 26).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은 밤에 이루어진 민족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에는 밤이라는 어둠의 존재를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에 근거하여 투쟁하시고, 다스리심으로 아침, 밝음의 상태가 되게 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언약의 이름이다.
결국 1월 14일 저녁, 곧 밤에 지키는 유월절을 통해 어린 양으로 죽임을 당하심으로 자기 백성들을 어둠의 상태에서 빼내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한다. 이런 점에서 “여호와의 밤”은 구원의 밤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신 밤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42절)라는 말씀은 대대로 지키는 것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지킨다’라는 말의 히브리어 ‘쉼무르’는 ‘망보기, 경계, 감시, 철야’라는 뜻으로 계속 경계하며 유월절의 피를 대대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약의 표현으로 하자면 늘 깨어 있는 것이다(마 24:42, 25:13, 고전 16:13, 골 4:2, 벧전 5:8 등).
“43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유월절 규례는 이러하니라 이방 사람은 먹지 못할 것이나 44 각 사람이 돈으로 산 종은 할례를 받은 후에 먹을 것이며 45 거류인과 타국 품꾼은 먹지 못하리라 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47 이스라엘 회중이 다 이것을 지킬지니라”(43-47절). “이방 사람”(43절)이란 ‘다른 나라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유월절 어린 양은 그 고기를 먹는 사람들로 하여금 말씀을 먹게 하려고 보내심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그 양을 먹지 못하는 자는 하늘나라에 속한 아들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아들에 불과하다.
“돈으로 산 종은 할례를 받은 후에 먹을 것이며”(44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할례를 통해 “돈으로 산”, 즉 대속의 은혜를 입은 자는 어린 양을 먹을 수 있는 자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할 수 있는 은혜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거류인과 타국 품꾼은 먹지 못하리라”(45절)라는 말씀은 이방인이 어떤 존재인가를 거류인과 타국 품꾼으로 비유하여 설명한다. 잠시 머무는 자, 다른 나라에 속한 자는 언약 안에서 유익을 얻기 위해 종교 생활을 하는 자들이다. 품꾼은 일을 하여 그 삯을 받는 자이다. 그러므로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여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종교인에 불과하다.
“한 집”(46절)에서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이 된 자들만 먹을 수 있다. ‘하나’의 ‘에하드’는 첫째이시고, 독생자, 곧 하나의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성전이 되는 것을 계시한다. 그러기에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46절)라는 말씀은 진리의 말씀은 하나님의 집 안에 구별되었고 그 진리의 본질은 꺾이지 않고 온전한 것이어야 한다(민 9:12, 시 34:20).
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 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요 19:33, 36)
“48 너희와 함께 거류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 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49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거류하는 이방인에게 이 법이 동일하니라 하셨으므로 50 온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으며 51 바로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무리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48-51절). “할례”(48절)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유월절 어린 양을 먹어 하나가 되게 한다는 뜻이다. “이 법이 동일하니라”(49절)라는 표현은 ‘토라’는 ‘하나’로 가르치는 말씀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본토인(이스라엘인)이나 이방인을 하나 되게 하는 말씀이시다.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엡 2:19-20)
(20251207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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