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출애굽기

26. 출애굽기 12:21-36 첫 유월절

불편한 진리 2025. 11. 2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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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26강

출애굽기 12:21-36

첫 유월절

 

11:1-10에서 마지막 열 번째 이적에 대한 예고가 있고, 12:1-14에서 유월절, 15-20에서 무교절에 대한 말씀이 주어지고, 21-28절에서 이스라엘에게는 첫 유월절이 행해지고, 29-36에서 애굽에게는 처음 난 것들의 죽음 이적이 기록되었다. 그리고 37절 이하에서 드디어 출애굽이 이루어진다.

“21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22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21-22절).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21절)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열 번째 이적을 말씀대로 시행하시겠다는 뜻이다. “장로”의 ‘자켄’은 ‘늙은, 오래된, 옛날(사람)’이라는 뜻으로 믿음 없음의 옛사람에 대하여 심판하고 언약 안의 새사람으로 구원을 이루시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언약이 주어진 속사람의 구원은 언약의 대적자 겉사람에 대한 심판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우슬초”(22절)의 ‘에조브’는 ‘우슬초, 히솝풀(박하과의 작은 풀)’이라는 뜻인데 히솝풀은 70인역에서 ‘휫소포스’를 영어로 번역한 것에 기인한다. 성경에서는 피와 물로 정결하게 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레 14:4-6, 49-52). 그런데 민수기에 보면 붉은 암송아지로 시체와 접촉한 자를 정결하게 하는 재를 만들 때 “제사장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가져다가 암송아지를 사르는 불 가운데에 던질 것이며”(민 19:6)라고 말씀한다. 열왕기상 4:33에 비추어 보면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새번역에서는 “벽에 붙어서 사는 우슬초”라고 번역하였다)라고 하여 가장 귀하게 여기는 백향목에서부터 가장 하찮은 우슬초까지라는 뜻이다. 즉 모든 사람이 붉은 암송아지의 죽음이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정결하게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요한복음만 우슬초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하였다.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 19:29-30)

 

죄가 없으신 완전한 의인이신 예수님께서 하찮은 존재인 우리 죄인과 같은 모습으로 낮추어 생명을 주시는 구원을 이루셨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우슬초에 어린 양의 피가 적셔져 문에 바른다는 것은 죄인이 어린 양의 피로 말미암아 정결케 되는 것을 상징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우슬초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어린 양,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 되는 죄인들을 가리킨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밧세바 사건을 폭로하였을 때 다윗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7)

 

“그릇”(22절)의 ‘사프’는 ‘담는다, 대야, 대접, 잔, 문지방, 문’이라는 뜻이다. 이사야서에는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사프)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사 6:4)라고 “문지방”으로 번역하였다. 어린 양의 피가 현관, 곧 문지방에 있다는 것은 어린 양을 문에서 잡았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문의 좌우 기둥과 인방에는 바르지만 문지방에는 바를 필요가 없었다. 그러므로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22절)라는 말씀과 연결하여 생각해 보면 어린 양의 피가 있는 문을 넘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피가 문의 이쪽과 저쪽을 갈라 놓으신 것이다.

“뿌리고”(22절)의 ‘나가’는 ‘갖다 대다, 닿다, ~에 이르다, 도달하다, 치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양의 피를 뿌린다는 것은 죄인의 집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드러내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에 도달하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사 제도에서 피 뿌림은 이런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인간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언약 안에 가두어 두심으로 보호하신다는 것이다. 문을 벗어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없는 율법적 행위, 다른 복음, 비진리를 좇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레 3:2)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23절). “지나가실 때”라는 표현을 히브리어로는 ‘아바드’(일하다, 섬기다)를 썼다. 단순히 하나님의 일이라고 볼 수 있지만 섬긴다는 의미로 보면 애굽을 치시는 일과 동시에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 백성을 섬기신다는 의미로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흔히들 이스라엘이 문에 피를 바른 행위가 있지 않았느냐 그러기에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포함되어야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주장(신인협력설)을 하기도 하는데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라는 표현은 인간의 행위를 완전하게 차단하는 말씀이다. 피가 죽음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하나님께서 피를 보신다는 것은 피가 뿌려진 집은 이미 다 죽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율법적 자기 행위가 다 죽었고 그것을 어린 양의 피로 덮어 하나님의 집이 되었기에 언약이 그들을 보호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죽음에서 살리는 것이 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대속의 죽음으로 섬김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24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25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24-25절). 유월절 예식에 담긴 뜻은 이스라엘도 애굽과 동일하게 죽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의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언약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구원을 얻는다. “이 일”(24절)을 ‘다바르’로 썼다. 즉 하나님의 일하심이 언약으로 자기 백성들을 섬기신 일이기에 그 일 자체가 언약의 말씀이다. 따라서 어린 양의 피로 구원을 이루신다는 말씀 자체가 이스라엘에게는 규례이다.

“규례”(24절)의 ‘호크’는 ‘규정, 법령, 관습, 의무’라는 뜻인데 ‘하카크’(긁다, 새기다)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그러니까 “영원히 지킬 것이니”(24절), “지킬 것이라”(25절)라는 ‘샤마르’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지키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보자면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25절)이란 지리적으로는 가나안 땅을 가리키지만 본질적으로는 약속의 땅이고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 성경에는 “허락하신 대로”라고 번역하였지만 히브리어로는 ‘다바르’를 쓰고 있다. 즉 ‘여호와께서 주신 말씀으로 주시는 땅’이라는 말이다.

“26 이 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26-27절). “자녀”(26절)라고 번역하였는데 정확하게는 ‘아들’(히, ‘벤’)이다. “묻기를”(26절)이라는 말은 ‘아마르’이다. 언약의 역사는 아들 만들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언약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의 후손을 통해 언약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른다. 그러므로 아들들이 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로 말하지 않는다. 문자가 가리키는 말씀의 본질, 곧 언약의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모들이 경험한 유월절 구원을 선포하게 되면(히, ‘아마르’) 그 아들이 언약 안에서 아들들이 되고 역사적으로 출애굽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어린 양의 피로 이루신 언약의 말씀에 의해 구원을 경험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말씀을 전해주는 부모는 하나님과 같은 일을 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열 말씀’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라고 하신다.

이것을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27절)라고 한다. “제사”의 ‘제바흐’는 ‘희생, 희생 제물’이라는 뜻이다. 즉 여호와께서 친히 희생 제물로 이루시는 언약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하심, 곧 하나님의 말씀에 “경배”(27절)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언약으로 이루시는 구원은 “애굽 사람에게 재앙”(27절)을 내리심으로 치시는 심판과 동시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27절)을 넘으시고 보호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어린 양으로 죽으심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요 9:39)

 

“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28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아들 만드시는 역사의 그 길을 이스라엘이 함께 걷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단순히 지리적으로 애굽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언약으로 일하시는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다.

“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30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29-30절). “4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5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은 왕위에 앉아 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으리니 6 애굽 온 땅에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이 있으리라”(출 11:4-6)라고 이미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시기 위해 반복하여 표현하였다. 11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다는 것은 묵시 안에서는 이미 이루어진 일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 곧 ‘다바르’의 의미이다.

“31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32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 33 애굽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그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보내려 하므로 34 그 백성이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니라 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31-36절).

이 말씀 역시 “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22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출 3:20-22)라는 말씀의 성취를 보여준다. 이 말씀과 관련하여 11:3에서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였더라”라고 하였는데 이 일로 인하여 모세가 큰 자로 보이게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세가 가리키는 언약의 성취자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것이다. 결국 구원이란 단순히 나를 지옥에서 건지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증거하는 것이다(20251123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출26.1221-36 첫 유월절(2025112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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