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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23강
출애굽기 12:1-14
여호와의 유월절(1)
11:4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라고 하신 말씀대로 이제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셔서 하실 일을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1절).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히, ‘아마르’)하셨다는 것은 이제 이 열 번째 이적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성취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3-14)
여호와의 선포는 단순히 말이 아니라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애굽 땅”으로 이스라엘 스스로는 도무지 나올 수 없는 땅이다. 그러기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루신다.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2절). “달”의 ‘호데쉬’는 ‘하다쉬’(새롭게 하다, 새로 만들다, 다시 세우다)에서 온 단어로 ‘초승달, 달, 매달의, 월삭’이라는 뜻이고, “시작”은 ‘로쉬’로 ‘머리, 꼭대기, 우두머리, 시작, 처음’이라는 뜻이며, “첫 달”의 ‘리숀’은 ‘로쉬’(머리)에서 유래한 단어로 ‘첫째의, 최초의’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장자의 죽음 이적을 나타내시는 달을 머리로 삼아 첫째로 새롭게 하신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새 달이란 첫 열매를 상징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다시 세우는 일이니 곧 아들로 만드시는 일이다.
아빕(아비브)월을(호데쉬)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신 16:1)
14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아비브) 볶아 찧은 것으로 네 소제를 삼되 15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레 2:14-15)
유월절은 “아빕월”에 있는데 히브리어 ‘아비브’는 ‘부드럽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곡식의 여린 이삭, 녹색’이라는 뜻이다. 소제의 제물이 첫 이삭으로 ‘아비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첫 열매로서 유월절 언약의 성취자이시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고전 15:20-23)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 1:18)
이제 이스라엘은 출애굽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영역 안에서 새로운 삶으로 새로운 시간에 살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구원은 무엇을 더 받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육은 죽고 영으로 부활의 세계 안에서 첫 열매가 되는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3절). “회중”의 히브리어 ‘에다’는 ‘에드’(증인, 증거, 기록자)에서 유래하였는데 ‘모임, 집회, 회중, 떼, 무리’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단순한 백성이나 무리(히, ‘암’)가 아니라 증거하고 기록하기 위한 모임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스스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불러내어진 것이다. 이는 야곱 언약에서 “총회”(창 35:11)로 번역하였던 ‘카할’로 출애굽 이후에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달 열흘”이란 표현은 첫 달의 열 번째 날은 완전한 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언약의 첫 열매를 어린 양으로 취하여 확정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가족”, “식구”라고 번역하였는데 ‘바이트’로 ‘집, 가정’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집은 언약의 말씀이 담겨 있기에 아버지의 집과 같은 것으로 곧 성전이다. “어린 양을 취할지니”라는 말에서 히브리어 ‘라카흐’는 ‘취하다, 받아들이다’라는 뜻이다. 즉 성전에 어린 양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언약적 관점에서 어린 양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의미이다. 성취된 언약의 차원에서 표현하자면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만이 성전이요 하나님의 집이다(요 1:12, 고전 3:16, 고후 6:16).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
모세를 통해 주어진 첫 번째 유월절에 대한 말씀을 알기 쉽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10일째 되는 날에 가족대로 흠 없고 1년 된 수컷으로 어린 양이나 염소를 취하여 간직한다.
② 14일째 되는 날 해질 때 양을 잡아 양을 먹는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다.
③ 밤에 고기의 머리와 다리, 내장을 불에 구워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쓴 나물을 함께 먹는다.
④ 고기는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남은 것은 불에 태운다.
⑤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두려운 마음으로 먹는다.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사람 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4절). 식구가 적어서 잡은 양 한 마리를 다 먹을 수 없는 경우라면 이웃과 함께 양 한 마리를 다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마리를 다 먹을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집으로 온전히 다 드러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웃과 함께함으로 하나의 집이 되어 성전 됨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언약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성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웃”이란 나는 할 수 없는데 나와 함께 하여 성전 됨을 드러낼 수 있는 자를 말한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이웃은 항상 단수로 표현되어 성전 됨을 드러낼 수 없는 나를 하늘에서 찾아와 하나 되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한다.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5절). “어린 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세’는 ‘양이나 염소를 포함한 가축’을 의미한다. 뒤에 언급된 “양”은 ‘케베스’로 ‘어린 양’이고, “염소”는 ‘에즈’로 ‘염소’를 지칭한다. “흠 없고”의 ‘타밈’은 ‘타맘’(완성하다, 끝나다, 충분하다, 그치다)에서 유래한 단어로 ‘완전한, 흠 없는, 온전한, 순결한, 올바른, 진실한’이라는 뜻이다. 즉 어린 양은 온전하고 진실하기에 율법을 완성하여 끝내는 존재이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3-5)
“일 년 된”이라고 번역된 말을 히브리어로 보면 ‘벤 샤네’인데 ‘벤’은 ‘아들’이라는 뜻이고, ‘샤네’는 ‘일 년. 해, 전체의 시대, 긴, 오래된, 매년’이라는 뜻이다. “수컷”의 ‘자카르’는 일 년 된 아들, 즉 씨 가진 자로 언약을 기억하여 드러낼 수 있는 존재를 가리킨다. 곧 언약의 성취를 나타내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6절) “열나흗날”에서 ‘열’(히, ‘아사르’)은 완전함을 상징하고, ‘넷’(히, ‘아르바’)은 땅의 네 방향이나 언약으로 주어졌다는 점에서 보자면 에덴동산의 네 강의 근원(창 2:10)과 네모반듯한 날이니 곧 하나님 왕국이 시작되는 날이다(계 21:16). 이는 “해질 때”라고 표현하여 해가 지는 어둠을 거쳐 빛이 비치는 밝은 상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해질 때”라는 말의 ‘바인 에레브’를 쌍수로 썼는데 ‘저녁들 사이, 두 개의 저녁’이라는 뜻이다. 즉 첫 번째 저녁은 정오에서 정점을 찍어 해가 지기 시작한 것이고, 두 번째 저녁은 해가 진 오후 6시경부터를 가리킨다. 이렇게 봤을 때 이스라엘은 두 저녁의 가운데 쯤(약 오후 3시경)에 양을 잡기 시작하여 오후 5시쯤에는 양 잡는 일을 끝내고 6시쯤에는 저녁 만찬으로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약 안에서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보여주고 있다.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눅 23:4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막 15:34)
여기서 “이스라엘 회중”은 ‘카할’로 표현하였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자체로 아무 의미가 없다. 하나님의 언약이 담겨 있기에 이스라엘이다. 이런 점에서 양을 잡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적 부르심에 참여된 존재로 드러낸다. ‘카할’은 신약에서 ‘에클레시아’로 번역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교회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어린 양의 죽음에 참여된 성전이다.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7절). 여기서 우리 성경에 빠뜨린 번역이 있는데 ‘라카흐’(취하다, 받아들이다)이다. 즉 ‘그 피를 취하여 혹은 그 피를 영접하여’라는 말이다. “바르고”는 ‘나탄’으로 ‘주다, 두다, 놓다, 세우다’라는 뜻이다. 즉 문에 하나님께서 정하여 세우셨다는 의미이다. 우리 성경에 “좌우”라고 번역한 ‘셰나임’은 ‘한 쌍, 이중, 두 번째, 짝’이라는 뜻이다. “문설주”의 ‘메주자’는 ‘문기둥’을 뜻하는데 곧 성막 뜰의 문설주이기도 하다(삼상 1:9). “인방”의 ‘마쉬코프’는 ‘(위에 걸려 있는) 뼈대’라는 뜻이다. “양을 먹을 집”이란 어린 양과 하나 되는, 성전이 되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을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문의 두 기둥과 인방에 어린 양의 “피”(히, ‘담’)를 정하여 세우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정하여 세우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이란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동안 문자적인 율법과 세상적 교훈, 사람의 계명에 행위로 말미암은 자기 의에 갇힌 문의 저쪽 편과 어린 양의 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성전이 되는 것으로 구분하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정하여 세우신 것으로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죄의 권세에 매인 속박에서 자유의 상태에 놓이는 구분이다. 진리와 하나 되는 것이 구별이요 자유이다(요 8:32)(20251109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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