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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론 19
마태복음 5:10-12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의 복
천국이 박해를 받는 자의 것이라면 지금 박해를 받지 않는다면 천국과 관계가 없다는 뜻이 된다. 박해를 받는다는 이 말씀을 흔히 국가가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숨어서 예배하다가 발각이 되면 감옥가는 그런 상태를 생각한다. 또한 자신이 교회 생활하는 일에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시달림을 당하는 것을 박해를 받는다고 착각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상황은 자유롭게 모이고 신앙할 수 있는 상태이기에 어쩌면 나와 상관없는 말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박해를 받는 상황에 일부러 자신을 밀어 넣어 좋은 신앙인 것처럼 드러내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이런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의미의 말씀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10절). 직역하면 ‘복이 있다. 의 때문에 박해를 받은 자들은, 왜냐하면 하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이다. “의”란 헬라어로 ‘디카오쉬네’인데 ‘의로운’이라는 뜻의 ‘디카이오스’에서 유래한 단어로 구약의 히브리어 ‘체데크’ 혹은 ‘체다카’(올바름, 공정함, 의로움)의 역어로 사용되며 가끔은 ‘헤세드’(선함, 친절, 은혜, 긍휼, 은총)의 역어로도 사용된다. 여호와는 의로우신 분(신 32:4, 시 11:7, 사 5:16, 렘 12:1 등)으로 거룩하시다(사 5:16). 공의로우시며 거룩하시다는 의미는 죄와 상관없는 존재로 죄에 대해 심판하시고 구원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라는 의미이다(시 31:1, 50:6, 103:6, 사 45:21, 51:5 등). 인간은 하나님의 의와 상관없는 완악한 죄인이기 때문이다(사 46:12). 그래서 하나님께서 의로 찾아오심이 구원이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체다카)를 심고 인애(헤세드)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체데크)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 10:12)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체데크)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사 32:1)
“공의를 비처럼 내리시리라”라는 말씀은 의를 은혜로 베푸시겠다는 것인데 그 은혜는 친히 왕으로 오셔서 통치하시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노아를 의인이라고 하셨고(창 6:9),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시며 의롭다고 선언하신 것이었다(창 15:6). 즉 언약 안에서 진짜 의인을 보내시겠다는 것인데 곧 하나님께서 친히 오신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이렇게 선언하였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0-22)
결국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의는 율법과는 다른 의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율법의 의와 하나님의 의를 대조하였는데 이렇게 대조한 의미는 율법의 의가 하나님의 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성경에서는 “의를 위하여”라고 번역하였는데 ‘헤네카’는 ‘~을 위하여’라는 뜻도 있지만 ‘~때문에’라는 뜻도 있다. ‘위하여’는 목적이 되지만 ‘때문에’라고 하였을 때 그 의미는 그것 자체가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표현이다. 즉 우리가 의를 위해서 무엇을 하였다는 식으로 받아들일 문제가 아니라 의가 들어와서 그 의가 원인이 되었기 때문에 주어진 박해이다. 핍박을 받는 원인이 의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성경에서는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번역하였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인간은 율법의 행위로 자기 의를 가지고 하나님의 의가 되고 싶어 하나 불가능한 것이다. 죄인이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박해”란 헬라어로 ‘디오코’인데 ‘뒤쫓다, 추구하다, 박해하다’라는 뜻으로 히브리어 ‘라다프’(추적하다, 뒤따르다, 괴롭히다, 박해하다)의 역어로 쓰인 것이다(출 15:9, 창 31:23, 시 23:6). 그러면 박해에 대해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을 보면 박해가 왜 있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갈 4:29)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행 8:1)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갈 1:13-14)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 3:4-6)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계 12:13)
본래는 우리가 박해를 하는 자들이었다. 육체를 따라 난 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박해를 받은 자가 되었다. 그래서 “박해를 받은”이라고 완료형으로 쓰고 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는 것은 율법적인 행위이지만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찾아오시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박해를 받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박해를 받은 상태가 복의 상태이다. 그래서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11절)라고 “나로 말미암아”라고 하셨다. “욕하고”는 ‘오네이디조’인데 예수님께서 받으신 것이다.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오네이디조)(마 27:44)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오네이디조)(막 15:32)
예수님은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하시면서 “그들”이라는 3인칭을 사용하였으나 이제 “너희”라고 2인칭을 사용하셨다. “너희”란 일차적으로 ‘제자들’이나 이차적으로 제자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를 지칭한다. 교회는 다른 말씀으로 인해 치욕을 받는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상태가 욕하고 박해를 받은 것이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오네이디조)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4)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요 15:18-21)
“거짓으로”라는 말의 ‘프슈도마이’는 ‘거짓말하다, 거짓으로 속이다’라는 뜻인데 성경이 말씀하는 거짓이란 한마디로 비진리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사람의 계명과 교훈으로 바꾸는 것이다. “거슬러”라는 말은 ‘~에 대적하여, 대항하여’라는 뜻이다. 그래서 진리를 대적하는 말이 “악한 말”이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롬 1:25)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계 3:9)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12절). “기뻐하고”(헬, ‘카이로’), “즐거워하라”(헬, ‘아갈리아오마이’)라는 말씀은 세상적인 기쁨과 즐거움이 아니라 “주 안에” 있는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빌 4:4).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카이로)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카이로) 기뻐하게(아갈리아오마이) 하려 함이라(벧전 4:13)
“상이 큼이라”라고 하였는데 “상”이란 ‘미스도스’로 ‘품삯, 임금, 보상’이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신 하나님이 “지극히 큰 상급”이시다(창 15:1). 크신 하나님께서 주신 상급으로 구원을 의미한다(고전 3:10-15, 9:16-19, 계 11:18, 22:12). 땅적 존재가 이미 하늘이 된 것 자체가 상이다.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라는 말씀에서 선지자들이 받는 박해의 결국은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다(마 23:29-31).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마 23:37)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루살렘은 성전을 중심으로 행하는 율법적 행위를 상징한다. 바리새인들은 자기 의를 위해 선지자들을 죽였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죽임을 당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우리가, 내가 선지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증거물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찾아오셔서 의가 되게 하신 은혜의 증거물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20240612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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