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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열 말씀 강론 09_출애굽기 20:14 간음

불편한 진리 2023. 6. 2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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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열 말씀 강론 09

출애굽기 20:14

간음

 

‘윤리’란 사전적으로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거나 행해야 할 도리나 규범’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목적은 아름답고 이상적인 삶의 환경으로 만들자는 것이고 이런 점에서 사회와 국가의 발전과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는 죄가 된다. 따라서 윤리는 사회적 관계에 있는 인간들이 선하고 의로운 쪽으로 만들고자 하는 기대의 표출이다.

이러한 윤리의 개념은 종교와 맞닿아 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종교는 좀더 차원 높은 윤리여야 되고 또한 윤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리적이지 않은 종교는 사람들에게 외면당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모든 종교는 인간으로 시작해서 인간으로 마치는 인간 중심의 종교이다.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종교이다. 이런 점에서 윤리의 종착지는 자기 자신이다. 다시 말해서 궁극적으로 자신 자신을 위해 윤리적인 것이 통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기독교 윤리’라고 신학에서 정의하는 모든 내용이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기독교라는 탈을 쓴 윤리적 규범이 성경 말씀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윤리적인 것이 믿음의 척도가 되어 비윤리적인 모습은 자연히 신앙이 부족하고 연약한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보니 소위 말하는 십계명 가지고도 윤리적 시각으로 보고 사람들을 평가한다. 예컨대 교회 내에서 어떤 이의 간음이 드러나면 7계명을 범하였다고 정죄하면서 심하면 용서받지 못할 죄처럼 취급한다.

“간음하지 말라”라는 언약의 열 말씀을 계명으로 이해하는 자들은 간음뿐만 아니라 어떤 모양과 형태로든 일체의 음행을 금지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 말씀을 가지고 정상적인 부부관계에 대한 교훈만 아니라 동성애도 금지한 내용이 이 계명 속에 들어 있다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계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이 계명대로 살고자 하는가?

신명기 22:22에 보면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라고 하였고, 레위기 20:10에서도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는가?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이 지금도 그대로 지켜야 할 계명이라면 이 말씀대로 우리는 행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실제 이 말씀을 해석에 두 부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미 스스로 간통이나 간음을 했다고 여기는 사람이 이해하는 것과 아직 한 번도 바람이라고는 피워본 적이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의 이해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또한 그중에서도 한 번 혹은 두세 번 정도 한 사람은 시도 때도 없이 간음한 사람과는 자신이 다르다는 차원에서 이 계명을 이해하는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자기 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그런 말씀이 될 수 없다.

창세기에서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창 2:23)라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하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계 19:7)라는 혼인 잔치로 끝을 맺는다.

이런 점에서 이 말씀 이면에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본질적으로 가르치고자 하신 뜻이 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차원에서 우리는 계속 생각해 왔었다. ‘언약의 열 말씀’이라는 관점에서 주신 말씀이기에 윤리 도덕적으로 간음을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도 결코 윤리 도덕적인 가르침으로 받아들여 이 말씀으로 인하여 자기 자신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며 더 나아가 사회를 건전하게 지키는 말씀이 된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간음하지 말라”라는 말씀은 히브리어로 ‘로 티나프’라는 단 두 단어인데 ‘티나프’의 원형이 ‘나아프’이다. ‘간음하다’라는 뜻인데 비유적으로 ‘우상숭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단순히 아내가 있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성적인 관계를 맺거나 또는 남편이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문제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음란함을 폭로하였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혼증서를 주었다고 선언하였다.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호 1:2)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렘 3:8)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기에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를 주셨다고 하였다. 여기 ‘이혼증서’의 히브리어의 표현은 ‘이혼책’이라는 말인데 ‘갈라져 나누어진 책’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어떤 증서(책)를 주신 적이 있었는가?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주신 상황을 이렇게 말씀한다.

 

1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2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 3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6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 24:1-8)

 

여기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서”가 ‘언약책’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는 언약의 말씀으로써 열 말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책은 하나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배역하여 갈라져 나누어진 책이 되었다. 그것을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혼서”라고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아 언약을 맺으시고 언약의 책을 주셨으나 인간들은 그것을 이혼책으로 만들어버렸다.

하나님은 예배의 대상이며 섬김을 받아야 할 신적인 존재이고 인간은 율법을 가지고 열심히 행동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언약을 무시한 결과로 갈라진 상태가 된다. 나 자신을 1인칭, 하나님을 2인칭으로 두고 섬기려는 상태는 하나가 아닌 둘이 된 상태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바로 언약증서가 이혼증서가 된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바로 간음의 상태이다. 우리가, 내가 간음한 죄인이다(마 15:19). 이 죄인의 상태에서 벗어나 인간이 하나님과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 2:16-20)

 

“장가들어”라는 말의 히브리어 ‘아라스’는 ‘약혼하다’라는 뜻이다. “남편”의 ‘이쉬’는 ‘사람, 남자, 남편’이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편, 남자, 사람이 되시겠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남편, 남자로 오셨다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대속의 죽음으로 하나를 이루신다(요 17:21-26).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실패를 극복하고 참 이스라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 된 교회가 이스라엘이며 곧 신부, 여자이다. 갈라져 나누어져 있던 것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본문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라는 말씀은 율법을 남편으로 삼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랑을 확증하셨다. 이것이 바로 언약의 완성이다. 말씀 안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흐르고 있는 진리이고 그 진리의 말씀이 내 안에 흐르고 있어야 너와 내가 없는 진짜 하나 된 상태로 유일한 남편이신 그리스도와 결혼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예수로 오심은 유일한 남편이신 그리스도와의 하나됨을 보여주시는 것이고 그 하나됨의 진리를 알게 된 바울 사도는 그것이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 된 것임을 전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

 

여기 “한 남편”이라는 말은 ‘유일한 남편’(신랑)이라는 말이고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라는 말은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한 몸이 되도록 세운다’라는 뜻이다. 이 모든 것이 율법으로 행하는 우리의 노력이나 우리의 열심에 의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된 것이 구원이고 복이다.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계 19:9)

 

결국 율법을 내 남편으로 삼아 내 행위로 지키려고 하는 것 그것이 간음이다. 곧 세상을 벗으로 삼아 하나 되어 하나님을 대적하여 원수의 상태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도 세상과 하나 된 상태를 간음으로, 하나님의 원수 된 상태로 표현한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 4:4)

 

그러므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요 성도는 날마다 자기 부인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라고 하셨다. 십자가란 자기 부인이다. 나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은 율법을 남편으로 삼고 살던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은 상태를 말한다. 언약의 성취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아는 것, 생명으로 흘려줄 진리가 내 안에는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상태를 의미한다. 지금 나에게서 이 고백이 나오는가?(20230628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언약의 열 말씀 강론 09_출2014 간음(2023062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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