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강론/십계명(열 말씀) & 언약

언약의 열 말씀 강론 11_출애굽기 20:16 거짓 증거

불편한 진리 2023. 7. 5. 16:09

https://www.youtube.com/live/QYj8ZNIFZuk?feature=share 

 
 
 
언약의 열 말씀 강론 11

출애굽기 20:16

거짓 증거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라는 이 말씀을 해석한 책이나 대부분의 설교를 보면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말의 성실함에 대한 교훈을 주는 계명이라고 한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계명대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 계명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데 무엇보다 내 안에 어둠의 세력을 쫓아내야 하고 거짓말과 유사한 나쁜 말 곧 험담이나 폭력적인 말, 근거없는 말이나 확대 과장된 말을 하지 않아야 하며 거짓말하지 않는 좋은 습성을 길러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은 이웃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느냐 하는 것에서 나오기에 이웃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설교가 넘쳐난다.
물론 중간중간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잊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설교들이 복음을 제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말씀을 이렇게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교훈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가? 윤리 도덕적인 교훈을 하면서 성경,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그것을 복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왜 교회에서 이런 설교를 들어야 하나? 거짓말하지 않고 말에 진실함이 있다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거짓말하지 말라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삶의 기본적인 이런 가르침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셨는가?
사실 이런 교훈 정도는 교회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말씀을 전하는 입장에서 저는 늘 이런 생각을 가지는데 오늘 나와 함께 말씀을 나눈 성도들이 어떻게 말씀을 받아들였으며 어떤 결심을 하고 돌아갔을까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오늘 본문을 통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진리의 말씀만 남도록 전하였는가 하는 것이 말씀을 나눈 후에 항상 제가 가지는 고민이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고 보여 주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뜻대로 잘 드러내고 흘려주었는가 하는 것은 말씀을 전하는 자뿐만 아니라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가 함께 늘 점검해야 할 부분이다.
십계명은 단순히 우리가 지켜야 할 계명이 아니라 열이라는 완전한 말씀으로 주신 언약의 말씀이다. 열 말씀이 언약의 말씀이라는 것은 우리가 무엇인가 해야 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일에 우리의 열심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열심으로 언약의 말씀대로 이루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를 보여 주시는 복음이다. 이른바 이 아홉 번째 계명 역시 우리에게 혀를 어떻게 잘 단속할 것인가에 대한 행동 지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복음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거짓 증언”이란 히브리어로 ‘에드 셰케르’인데 ‘샤카르’(거짓으로 행하다)에서 유래한 ‘셰케르’는 ‘거짓말, 속임, 사기, 실망, 허위’, ‘에드’는 ‘증인’이라는 뜻이다. 여기서도 미완료이니까 ‘거짓 증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다. 앞에서 보았던 예레미야 7장 말씀의 일부를 다시 보자.
 
8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9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렘 7:8-10)
 
내가 구원의 확신을 가졌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구원이 좌우되는 문제가 아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다고 해서 구원을 얻지 못하고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해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하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하고 구원을 얻은 것에 대해 감사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도둑질하고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으로 맹세하며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하나님의 집에 와서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고 구원의 확신을 말하는 것을 가증한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가증한 일”의 히브리어 ‘토에바’는 ‘혐오스러운 것, 가증한 것’이라는 뜻인데 성경에서 ‘우상’의 동의어로 사용되며(사 44:19, 왕하 23:13), ‘우상숭배’(신 7:25-26, 27:15) ‘인신 제사’(신12:31, 왕하 16:3), ‘율법의 말씀을 듣지 않는 기도’(잠 28:9) 등에 대한 표현으로 사용된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이 성전에서 제사하는 행위를 하나님은 우상 숭배하는 혐오스러운 것으로 말씀하신다.
결국 “거짓 증언”이란 거짓말에 의존하여 도둑질, 살인, 간음, 거짓 맹세를 하는 것을 바알에게 분향하고 다른 신을 따르는 것으로 말씀하심으로 이미 열 말씀으로 주신 한 가지를 설명하는 다른 표현이다. 즉 단순히 죄질이 같다는 의미가 아니라 언약을 파괴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있는 도둑의 소굴로 만들고 있다는 측면에서 같은 내용을 의미하는 말씀이다.
우리 성경에서는 거짓 증거, 거짓 증언, 거짓 맹세라고 다르게 표현하고 있지만 히브리어에서는 다 같은 단어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이 하나님께 대한 것만을 말하는 것이라든지 아니면 이웃에 대한 것만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 안에 이런 말씀을 주셨다는 것은 애굽 땅에서 행하였던 것이고 그것은 곧 모든 인간이 다 거짓 증언을 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실상을 이렇게 선포하였었다.
 
30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 5:30-31)
 
출애굽하여 시내 산에서 율법은 받은 이스라엘이 살게 될 땅은 언약의 땅이다. 언약의 땅에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에 근거한 언약의 말씀만 충만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우상을 좇으며 거짓을 예언하며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다. 약속이 깨진 상태가 된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성에 의한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 15:18-20)
 
그런데 이것이 마귀의 권세에 사로잡힌 결과임을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 8:44-47)
 
거짓을 선포한다는 것은 진리가 없는 거짓의 아버지에게 속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귀에게서 나오는 거짓이란 단순히 거짓말이 아니라 진리가 아닌 것이다. 곧 마귀에게는 진리가 있을 수 없기에 진리를 대항하는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은 이렇게 진리가 아닌 거짓에 속하여 거짓의 아비와 하나 된 존재이다. 그 속에 진리가 없고 거짓에 속한 존재이기에 늘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진리를 드러내셨다. 그러나 죄인들은 진리를 믿지 않았다.
“네 이웃에 대하여”라는 ‘베레아’는 ‘네 이웃 안에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웃”이 누구인가? 히브리어로 ‘레아’는 ‘이웃, 친구, 동료’라는 뜻인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18)라고 말씀하신 그 이웃이다. 이웃에 대하여 누가복음 10:25-37에서 예수님께서 분명히 밝혀주셨다.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으며 자기를 의롭게 드러내기 위하여 이웃이 누구인지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소위 말하는 ‘사마리아 사람 비유’를 말씀하셨다.
여기서 강도 만난 자는 유대인들이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사마리아 사람에 의해 살아난다. 결국 이웃이란 강도 만난 자에게 자비를 베푼 자이다. 죄인들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엄밀한 의미에서 자기만 아는 죄인들에게 이웃이란 없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웃이 되어주시기 위해 찾아오셨다. 그러므로 이웃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하기에 성경에서 항상 ‘단수’로 표현된다. 이런 점에서 요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만 진리라고 선포한다.
 
21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 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일 2:21-25)
 
예수님은 죄인들의 거짓 증거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진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거짓 증거들을 만들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짓 증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지만 부활하심으로 온전하고 유일한 진리이심을 스스로 증거하셨다.
 
55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56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함이라 57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여 이르되 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59 그 증언도 서로 일치하지 않더라(막 14:55-59 / 마 26:59-61)
 
열 말씀은 언약의 말씀이기에 단순히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거짓 증거하지 않는 존재로 만드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다. 여기서 “하지 말라”라는 ‘로 아나’는 단순히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직역하면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화답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 이웃 안에서 거짓 증언으로 응답하지 않게 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즉 유일하게 자비를 베푸는 이웃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진리로 화답할 수 있기에 거짓 증거들로 응답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을 이루시겠다는 의미이다.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 4:21-25)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새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따라 새 사람을 입었다는 것은 거짓이 없는 진리로 완성된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거짓 증거들을 버릴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된 자들과 함께 진리를 전하고 흘려주는 삶으로 살게 되어 있다(20230705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언약의 열 말씀 강론 11_출2016 거짓 증거(20230705).pdf
0.14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