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강론/십계명(열 말씀) & 언약

언약의 열 말씀 강론 06_출애굽기 20:8-11 안식일

불편한 진리 2023. 6. 1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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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열 말씀 강론 06

출애굽기 20:8-11

안식일

 

열 말씀이 아닌 십계명으로 보면 4계명을 문자적으로 지키기 위해 안식일을 기억해야 하고 또한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이것을 굳이 기억해야 하나? 기억하지 않고 있다가 안식일이 되면 남들이 지키니까 그들과 같이 그냥 지키면 안 되는가? 기억하고 지키는 것과 기억하지 않고 지키는 것이 차이가 있는가? 그뿐 아니라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지 않았으면 안식일을 지킬 자격조차 없는가? 요즘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많은 나라가 주 5일 근무제로 바뀐 것은 4계명을 근본적으로 무시하는 것인가?

또한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가? 아니 어떻게 해야 거룩하게 지키는 것인가? 유대인들은 이 계명을 거룩하게 잘 지키기 위하여 율법에 근거하여 안식일에 금지해야 할 것들을 39가지 세부적인 것들을 규정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세부적인 규정을 만들어 잘 지키면 거룩하게 되는가? 거룩이란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닌데 몇 가지 행동을 한다고 해서 거룩하게 될 수 있는가? 그런데 어떻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스스로 거룩을 유지할 수 있는가?

유대인의 안식일이란 금요일 해가 지면서부터 토요일 해가 질 때까지이다. 안식교 등 일부 종교단체에서 성경대로 안식일을 이렇게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이 안식일이 예수님의 부활에 근거하여 주일로 바뀌었다고 하면서 ‘주일성수’라는 말을 흔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이 맞는 것인가? 이런 모든 오해들의 근본적인 것은 언약의 말씀이 아닌 계명으로 오해하여 문자적으로 지키려고 한 데서 생긴 잘못된 현상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8절)라고 하였는데 히브리어에서는 동사가 먼저 나오기 때문에 “기억하여” 즉 ‘기억하라’가 첫 단어이다. 히브리어 ‘자카르’는 ‘기억하다, 마음에 품다, 남자가 되다, 씨 가진 자’라는 뜻이다. 창세기 1:27에서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한 말씀에서 “남자”가 ‘자카르’이고 “여자”가 ‘네케바’이다. 성경에서 남자, 아들이란 씨를 가진 존재이고 여자는 씨를 필요로 하는 존재를 의미한다. 즉 자카르라는 말은 ‘기억한다는 것은 씨를 가진 상태, 아들을 품은 상태’를 의미한다.

“안식”이란 히브리어로 ‘샤바트’인데 ‘중지하다, 쉼, 일을 그침’이라는 뜻이다. “안식일”에 정관사 ‘하’가 붙어 직역하면 ‘그 안식의 날’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안식하셨다는 날을 가리킨다(창 2:1-3). “거룩하게 지키라”라고 하였는데 히브리어 ‘카다쉬’는 ‘거룩하게 하다, 구별하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안식일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안식의 상태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우리 성경에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9절)라고 번역하였는데 “힘써”라는 표현은 번역하는 과정에서 삽입된 말로 히브리어로는 ‘일하다, 섬기다’라는 뜻을 가진 ‘아바드’를 쓰고 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엿새 동안 우리의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엿새라는 것으로 보여 줄 “일”이 있다는 것인데 히브리어 ‘멜라카’는 말씀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일을 의미한다(말 1:1). 그동안 창조로 일하신 것이 말씀으로 섬긴 것이고 그 하나님을 마음에 품는 것이 안식이고 거룩이라뜻이다. 신명기의 열 말씀은 안식일을 기억해야 할 근거를 애굽에서 구원하신 것으로 말씀한다(신 5:15). ‘창조’라는 일하심으로 보여주신 것이 ‘구원’이다. 그것을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섬기신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창조로 언약 갱신을 통해 구원이라는 새 창조를 신명기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10-11절)라고 부연 설명을 하신 것이다. 여기서 “아들, 딸, 남종, 여종, 가축, 객”은 “문안에 머무는” 존재를 총칭한 것이다. “문”이라는 ‘샤아르’는 성읍이나 궁정의 문을 의미한다. 너의 아들이나 딸, 다른 주의 권세에 매인 종, 이방인이었던 객,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있던 가축(히, ‘베헤마’)으로 땅적 동물이라고 할지라도 씨 가진 남자가 오셔서 이루시는 안식의 집 문 안에 있게 된 자라면 그 안에서 아무 일을 하지 않는 거룩의 상태가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이다.

출애굽기 31장에 보면 안식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 14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15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16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17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출 31:13-1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안식일을 “지키라”라고 하신 ‘샤마르’는 ‘듣다, 순종하다’라는 ‘샤마’에서 온 말로 ‘보존하다, 순종하다’라는 뜻이다. 즉 듣는 것이 지키는 것이고 순종하는 것이며 마음에 품고 새기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애초부터 무엇인가 지키는 것으로 날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든다든지 아니면 거룩한 날이라고 구별하여 그날을 지키면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만이 거룩이시고 그분이 자기 언약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신다. 그래서 “표징”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히브리어 ‘오트’는 ‘언약의 표, 표적’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날을 더럽힌 자는 죽이라고 하셨다. 그날이 더럽혀질 수 있는가? “안식”이란 일을 하지 않는 것인데 그것 자체가 거룩이라는 뜻이다. 일하지 않는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거룩이고 안식이다. 엿새 동안 일하는 것을 통해 일곱째 날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엿새 동안 했던 일을 일곱째 날에도 하고 있으면 반드시 죽이라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에게 안식이 오고, 거룩이 주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는데 누가 겁나서 어길 수 있었을까? 하나님은 그 사건을 일으켜 죽음을 통해 율법의 진의를 보여주고자 하셨다.

 

32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류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33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 앞으로 끌어왔으나 34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3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36 온 회중이 곧 그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니라(민 15:32-36)

 

이 말씀을 통해 율법을 어기고 죽는 자가 이 땅에 있을 것이라는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엿새 동안의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이가 나오고 그래서 그를 죽여야 하나님의 안식과 우리의 안식이 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언약이 온전히 성취되는데 그 죽을 일을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오신 하나님이 친히 하신다고 성경은 밝히고 있다.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 5:16-18)

 

안식, 날, 씨가 다 같은 의미로 하나의 뭔가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은 바로 이런 의미를 담고 주어졌다. 창세기 12:1-3에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실 때에 너는 복이라고 하시며 땅에 대한 것과 후손을 주셔서 큰 민족을 이루실 것이라는 내용을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언약에는 씨(후손)를 품고 있는 언약이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 안에는 생명의 씨를 품고 있는 것이고 그 씨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오심으로 언약이 성취된 것이라고 신약에서 선언하였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밀밭 사이로 지나갈 때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였다고 예수님을 향해 도전해 왔다. 예수님의 답변은 다윗이 함께 한 자들과 성전의 떡을 먹은 것을 말씀하시며 제사장이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 일하는 것을 죄로 여기지 않는 것이 율법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자신은 성전보다 더 크다고 말씀하시며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밝히셨다. 주인 마음대 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안식일의 본질이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의미이다.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7-28 / 마 12:8 / 눅 6:5)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라고 하니까 흔히 안식일은 ‘우리,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사람”은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해 창조로 일하셨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심으로 안식을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자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창세 전 언약이다. 하나님께서 안식 안에 불러들이기 전의 상태는 땅적 존재로 네발 가진 짐승이요 동물이며 죄인의 자녀로서 아들, 딸이고 죄의 권세에 매인 종에 불과한 그런 존재였다. 그러나 진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심으로 하나 되게 하시는 은혜를 입히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안식 안에서 비로소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열 말씀은 전체가 연결된 하나의 말씀이기 때문에 문맥 속에서 본문의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을 언약의 말씀이라는 차원에서 앞의 구절과 연결해서 정리하자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이란 내가 1인칭이 되어 하나님을 2인칭으로 앞에 두고 나의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것인데, 그것으로는 결코 정결하게 될 수가 없다. 그러나 안식이라는 날이 의미하는 생명의 씨를 품으면 그것이 바로 거룩이다. 그것을 말씀으로 섬기는 일을 하실 자가 오시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의미의 말씀이다.

결국 소위 말하는 네 번째 계명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은 안식일을 토요일로 지켜야 하느냐 일요일로 지켜야 하느냐 하는 그런 논쟁거리를 제공하는 말씀이 결코 아니다. 또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규정하여 그것으로 거룩하게 되고 안 되고 하는 날에 대한 계명이 아니다. 어느 날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보여주는 언약의 말씀이다.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17)

 

그러므로 이제 특정한 날로써의 주일은 없다! 모든 날이 십자가로 언약을 성취하신 주님의 날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 있는 자는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즉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홀로 다 이루신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셨던 생명의 씨를 품게 하셨고 그 안식이라는 거룩 안에 있게 되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된 구원의 상태이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씨 가진 남자를 품은 자가 신부 된 교회요 성도이다. 내가 이룬 것이 아니기에 은혜라고 한다(20230614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언약의 열 말씀 강론 06_출2008-11 안식일(2023061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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