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강론/예수님의 비유

마가복음 4:26-29 씨가 뿌려진 땅의 비유

불편한 진리 2018. 11. 25. 21:37

❊ 예수님의 비유 강론 16


마가복음 4:26-29
씨가 뿌려진 땅의 비유


많은 사람들이 성경 해석을 어렵게 생각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인들은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에 그치고 그 말씀대로 실행에 옮기느냐 옮기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로 고민한다. 한마디로 말씀대로 사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말씀은 잘 모른다. 그러다보니 어떤 이들이 소위 말하는 영적인 해석으로 신비한 뜻을 담아서 풀이하면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휩쓸린다. 최근에는 소위 말하는 원어를 가지고 히브리어와 헬라어 풀이를 하는 것이 마치 성경 해석인 것처럼 인식되는 상황까지 왔다. 그래서 원어를 모르면 성경 해석은 아예 목사나 신학교수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원어란 없다. 성경은 개인적인 학식이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 준비된 자들에 의한 문학 작품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여 생명을 전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말씀이기 때문에(요일 5:13, 딤후 3:15-17)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원어라고 할 수 있다. 히브리어, 헬라어를 제대로 알고 풀이 한다고 해서 저절로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성경 해석이 왜 어렵게 느껴질까?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신 계시의 말씀은 한 마디로 ‘묵시’이다. 묵시를 역사 속에 펼쳐 놓으니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일하신 것이라는 관점에서만 생각하고 역사 안에서만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 해석이 어려운 것이다. 아니 어렵다기보다 인간의 역사로 하나님의 묵시 세계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물론 역사를 무시하고 성경을 해석하자는 말은 아니다. 묵시를 전달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역사는 이 땅의 죄를 드러내고 보여 주는 장에 불과하다. 결국 성경 해석이 어렵고 이해할 수 없다는 것과 말씀이 말씀되게 받아 들여진다는 것은 우리의 지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없음과 있음의 차이이다.


오늘 우리가 상고하고자 하는 비유는 ‘자라나는 씨 비유’, ‘저절로 자라는 씨앗 비유’ 혹은 ‘은밀히 자라는 씨 비유’, ‘씨를 뿌리고 거두는 농부 비유’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마가복음만의 비유이다. 예수님의 비유들 대부분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주로 기록되었고 마가복음에는 명확하게 비유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막 4:3-20), ‘겨자 씨 비유’(막 4:30-32), ‘포도원 주인과 농부 비유’(막 12:1-12), ‘무화과나무 비유’(막 13:28-37)와 오늘 이 비유를 포함하여 5개 정도이다. 본 비유는 비교적 간단한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26-29절).
마가복음 4장의 시작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1-20절)를 말씀하고, 그 다음에 등불은 등경 위에 둔다는 말씀(21-23절)이 나오는데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는데 그것은 결코 숨겨두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서 감추어져 있는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말씀으로 오심으로 인하여 감추어진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천국이 온전히 드러나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오늘 이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나라가 어떤 상태로 완전하게 드러나게 될 것인가를 말씀하시려는 의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라고 하였기 때문에 이 비유 역시 천국 비유이다. 그렇다면 이 비유를 통해 우리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본질과 그 원리를 깨달아 그 천국의 비밀을 내 마음에 담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다고 하였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라고 하여 “씨”는 “말씀”이라고 하셨다(막 4:14). 그래서 이 비유에서도 우리는 무조건 ‘씨’에만 초점을 맞추어 저절로 자라나는 것으로 이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 본문에서 씨가 단독적으로 저절로 자라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비유에서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 “(씨를 뿌린)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라는 말씀은 씨를 뿌린 사람이 게을러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씨가 자라는 일에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는 그 다음 말씀에서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라고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단지 씨를 뿌린 농부는 어떻게 씨가 자라는지 알지 못할 뿐이라는 말씀이다.
오히려 본문에서는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라고 하였는데 “스스로”(헬, 아우토마테)라는 말이 사도행전 12:10에 보면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저절로”(헬, 아우토마테)라고 번역된 말이 “스스로”라는 말과 헬라어로는 같은 단어가 쓰였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에 주의 천사에게 이끌려 나가려 하니 문이 “저절로”열렸다는 것은 문이 자동문이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하셨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씨가 저절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땅이 씨로 하여금 저절로 자라나게 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뜻을 암시한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의 천지 창조 상황을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9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0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1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9-12)


하나님께서 물을 한 곳으로 모아 바다를 구분하여 땅을 드러내시고 그 땅에 말씀하시기를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고 하시자 땅이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었는데 그것을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였다.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니 그 말씀대로 시행되었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땅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한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땅이고 그 땅은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되게 시행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사람을 지으신 것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그 땅(아다마)에서 흙(아파르:티끌, 먼지)을 취해 사람(아담)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호흡을 불어넣으시니 산 존재가 되었다. 이처럼 사람은 땅에서 취한 흙이 하나님의 호흡에 의해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는 것은 땅과 하나님의 말씀의 관계를 설명하고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본 비유에서 “땅”은 헬라어로 ‘게’(ge)라고 하는데 같은 단어가 4:5에서는 “흙”으로 번역이 되어 같은 의미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그 땅의 흙은 선악과를 먹어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말았다. 그 결과를 성경은 이렇게 선언한다.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7-19)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땅이 더 이상 땅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저주의 상태가 되어 창조 상태를 무효로 돌리시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래서 땅은 아담으로 인하여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에게 생명을 회복하실 언약을 주셨고(창 3:15) 후에 아브라함을 통해 언약의 후손(씨)과 땅의 회복을 약속하셨다(창 12:1-3). 따라서 땅의 회복을 이루시는 언약의 후손이 오실 때에 비로소 언약이 성취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실 때에 땅의 회복을 가시적으로 가나안 땅을 주시는 것을 통해 언약을 설명하고 보여 주셨다.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됨의 의미는 약속의 땅에 걸맞게 땅의 요구에 합당한 모습이어야 했다(참고 레 26:43). 그것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의 정신으로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땅은 차지하였지만 언약의 땅에 합당한 언약 백성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땅이 이스라엘을 거부하여 이방 땅 바벨론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참고 사 24:1-5, 대하 36:21). 이스라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언약은 실패하지 않았다(겔 36:35-36).
이런 점에서 이 비유를 통해 씨를 뿌려 그 씨가 땅에 의해 저절로 자라 열매를 맺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은 참 이스라엘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비유이다. 기존의 땅, 흙인 존재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되게 드러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오셔서 자신을 씨로 뿌려 그 말씀이 말씀되게 이루어지는 현장으로서의 땅이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셨다. 말씀이 말씀답게 이루어지는 땅이 회복되었다는 것을 비유로 나타내신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이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말씀이 말씀답게 이루어지는 것이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고 성취되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1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1-2) 


“열매가 익으면”이라고 번역하였는데 ‘파라디도미’(넘겨주다)라는 말이다. 즉 씨가 온전한 땅에 의해 맺어진 열매를 넘겨주어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는 상태가 된 것을 “추수 때”가 이르렀다는 말씀으로 나타내고 있다. 십자가로 이 은혜가 임한 자들이 새 하늘과 새 땅이 된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말씀이 말씀되게 받아 들여진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넘기워졌다는 뜻이다(20181125 강론/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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