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강론/예수님의 비유

마태복음 13:47-50 바다의 그물 비유

불편한 진리 2018. 8. 6. 14:21

예수님의 비유 강론 08

 

마태복음 13:47-50

바다의 그물 비유

 

마태복음 13장은 흔히들 천국 비유장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이제까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밀과 독보리 비유, 그리고 겨자씨와 누룩 비유, 밭의 보화와 진주 장사 비유 이렇게 6개의 비유를 다 살펴보았다. 이제 천국은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다고 하신 일곱 번째 비유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모든 비유를 깨달았느냐고 물으시며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을 비유로 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비유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13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는 바닷가(1)에서 4, (36)에서 4개를 말씀하신 것이 된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47-50). 이것이 일곱 번째 비유의 내용인데 흔히들 이 비유를 전도에 대한 비유로 이해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말하는 그런 전도와 전혀 관련이 없는 말씀이다. 좋은 씨를 뿌린 자의 비유에서 세상 끝에 독보리를 거두어 불사른다는 내용과 유사하지만 이 비유 역시 예수님의 자세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어렵게 생각될 수 있으나 그 의미는 명확하다.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다고 하였다. 바다는 성경에서 대부분 세상에 대한 상징적인 용어이다(참고 계 13:1). 그렇다면 바다에 친 그물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천국이 세상 속에 던져져 있는데 그 그물 안에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가 함께 있다는 것은 세상 자체가 이미 예수님의 그물에 걸려 있는 상태라는 뜻이다.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에서는 공존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물 가로 끌어 내어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를 분리해 낸다. 본문에서 못된 물고기는 악인이고 좋은 물고기는 의인이라고 하였다. 좋은 것은 그릇에 담지만 못된 것은 버린다고 하였는데 버린다는 의미는 풀무 불에 던져 넣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주체는 그물의 주인이신 예수님인 것은 분명한데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 의인과 악인을 갈라내는 기준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좋은 씨를 뿌린 사람의 비유에서는 밀과 독보리라는 것으로 분명하게 다르다는 차원에서 갈라내어 독보리를 불에 태웠지만 여기서는 외형상으로는 같은 물고기인데 그물의 주인은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로 갈라낸다고 표현하였다. 그렇다면 그 기준이 무엇일까?

여기서 좋은 것이란 아름다운’, ‘선한’, ‘가치 있는이라는 뜻이고 못된 것이란 나쁜’, ‘썩은’, ‘무가치한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단어를 마태복음 7:17-18에서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라고 하였다. 여기서 좋은 나무가 좋은 것, 선한 것, 가치 있는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것, 썩은 것, 무가치한 열매를 맺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즉 좋은 나무이기 때문에 선하고 가치 있는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이기 때문에 나쁘고 무가치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시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구원이 악인들에게서 멀어짐은 그들이 주의 율례들을 구하지 아니함이니이다(119:155)

 

출애굽기 18:15에서 모세가 그의 장인에게 대답하되 백성이 하나님께 물으려고 내게로 옴이라라고 하였을 때 물으려고라는 말의 히브리어가 다라쉬(darash)인데 묻는다’, ‘구한다는 뜻이다. 이 말에 ’(ro)가 붙으면 부정을 뜻하는 말이 된다. 바로 여기 시편에서 구하지 않는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로다라쉬’(rodarash)이다. 그러면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하나님의 율례, 즉 진리의 말씀을 구하지 않는 자가 악인이라는 의미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가치 없는 것들을 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께는 관심이 없으며 진리의 말씀을 구하지 않는 자들이 못된 물고기이며 악인이다. 그러므로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 의인과 악인으로 갈라내는 기준은 천국이시며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당연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믿고 있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이러한 비유들은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율법적인 신앙을 뿌리채 흔들어 놓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선포하고 보여 주신 천국에서는 율법을 지켜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으로 의인이냐 악인이냐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그물의 주인이신 그분에 의해서 그물에서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를 갈라 내시는 것으로 판결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2:16)

 

여기서 믿음이란 나의 행위로써의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와는 대비된 개념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라고 번역하였는데 헬라어 원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라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의롭게 된다는 것은 죄와 상관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에 의해 살아지는 삶이다. 이런 점에서 바울 사도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예수라는 이름을 부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이적을 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7:21-22). 물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다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행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진리의 말씀이시고 천국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하는 문제이다(6:29). 그것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이다(6:40).

세상 끝에 심판이 온전히 드러났을 때에 풀무 불에 던져진 자들이 울면서 이를 간다는 것은 자신의 율법적인 행위로 인해 당연히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그 결과가 자신이 원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억울하여 울며 이를 가는 것이고 또한 더 이상 먹을 수 있는 영원한 양식이 없기 때문에 이를 갈고 있다(20170101 강론/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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