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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말씀의 수난 (이태현목사/부산은혜로교회)

불편한 진리 2015. 5. 18. 15:12


말씀의 수난


(이태현목사/부산은혜로교회)


우리의 병을 치료하는 약도 그 효능을 따라서 적절하게 쓰지 않으면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의 생명과 연관이 있는 성경도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서 해석되어져 전파되지 아니하고 인간의 편의대로 인간의 욕심을 충족시키는 도구로써 해석되어지고 전파될 때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시고 우리의 죄인 됨을 알게 하신다. 따라서 전파되는 말씀은 오로지 우리의 욕심과는 무관하게 우리의 죄인 됨을 밝히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알리는 말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성도는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슨 위대한 일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성경의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해서 그리스도를 알게 됨으로 인간의 죄를 알리고 인간의 죄의 심각성을 깨달아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데 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만 신뢰하는데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 
지금 이 시대는 말씀의 수난 시대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기사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에 주어진 이후로 말씀이 수난을 당하지 않은 시대가 있었겠는가마는 지금은 말씀의 수난이 오히려 말씀의 부흥으로 오해되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때와는 뭔가 다른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말씀의 부흥은 하나님 앞에서 상한 심령이 되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서 내가 죄인 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상한 심령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 말씀의 부흥이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것이 곧 그리스도가 부흥되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의 죄가 어떤 죄인가를 분명히 말하고 있다. 
기도 안하고, 성경 안보고, 봉사 안하는 그런 죄가 아니다. 
피조물의 위치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만족해서 사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크게 만들고 성공하고 출세하는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고 있다. 이것이 죄이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인간됨을 모르는 죄이고, 아담 이후로 모든 인간이 드러내었던 죄의 모습인 것이다. 이 죄를 아는 자가 자기의 힘과 재능과 기술을 믿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죄가 무엇임을 아는 자는 절대로 자신에게 희망을 두지 않는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그리스도만 의지하게 된다. 
왜냐하면 자기에게는 죄를 벗어날 수 있는 그 어떤 힘도 가능성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상한 심령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도움을 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말씀의 부흥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이 상한 심령이 되는 부흥이 아니라 교회의 부흥에 집중되어 있다. 말씀이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라 인간의 의도에 의해서 바뀌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말로 바뀌어 전파된다. 
이것이 말씀의 수난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진리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는가? 
그 기준은 그 말씀이 이 세상 그 무엇에도 의미와 희망을 두지 않고 그리스도만을 희망 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단은 언제나 인간의 행위나 이 세상의 조건에다 가치를 두고 희망을 두게 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십자가의 정신이 살아 있을 때 교회이다. 십자가의 정신이란 자기가 지금까지 쌓아온 노력과 정성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에만 관심을 두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내가 없어지는 희생을 행복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 정신이 없는 교회는 단지 종교단체에 불과할 뿐이다.


(090705 http://cafe.daum.net/leeth0110/Ph3I/2)

출처 : 주성교회
글쓴이 : 김영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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