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민수기

30.민수기 34:1-29 가나안 땅의 경계와 분배약속의 땅 경계와 분배

불편한 진리 2015. 2. 14. 22:57

30

민수기 34:1-29 

약속의 땅 경계와 분배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게 하심으로 40년 기간을 정리했다(33:1-49).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행하여야 할 하나님의 명령을 다시 새기도록 하셨다(33:50-56). 이제 34장 이하는 미래의 일을 마치 현재 성취된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약속의 땅을 소유한 것으로 여기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살펴볼 34장은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에 대해서(34:1-15), 그리고 기업 분배에 참여할 족장들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다(34:16-29).

본 장에 이어져 다루어질 내용은 34장에서 제외된 레위 지파의 성읍과 도피성에 대한 것(35), 그리고 여자들에 대한 기업의 분배(36)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33장에서 광야의 노정을 정리하면서 이후로는 온통 약속의 기업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본 장의 전반부에서는 약속의 땅에 대한 경계를 말씀하셨는데 이는 이미 아브라함 때에 주신 약속 안에 있는 것이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15:18).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라고 경계를 말씀하셨다.

이제 그 땅을 실제로 차지할 즈음에 와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각 성읍의 이름까지 지적하면서 그 땅의 경계를 일러주신다. 남편 경계는 신광야와 염해(사해) 끝으로 시작하여 가데스바네아까지이며, 서편 경계는 대해(지중해)까지이며, 북편 경계는 호르산, 하맛 어귀로 해서 하살에난까지 미친다고 하셨다. 그리고 동편 경계는 하살에난에서 스밤, 긴네렛(갈릴리)호수에까지 이른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실제로 이 땅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보다 작은 땅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보다 축소된 땅을 주신 것이 아니다. 신명기 11:24에 의하면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곧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하수라 하는 하수에서 서해까지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상황에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배려로 보인다(7:22).

하나님께서는 바벨탑으로 인한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 극도에 달했을 때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약속의 땅을 주시기로 하셨다. 이후로 언약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순종하기보다 오히려 반역과 실패, 하나님에 대한 거부의 연속이었다. 광야 40년은 순종의 반복이기보다 불순종의 반복이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패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존하시고 이끄신 것은 바로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성취된다(55:10,11). 실제 문자적인 의미에서 성취된 것은 솔로몬 왕 때이다. “솔로몬이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블레셋 땅과 애굽 지경까지의 열왕을 관할하였으며”(대하 9:26).

이처럼 앞으로 들어갈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그 땅을 분명하게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실 것이라는 보증이 되는 것이며, 또한 그 땅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24:1). “저희가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저희 팔이 저희를 구원함도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팔과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저희를 기뻐하신 연고니이다”(44:3). 하나님은 인간의 연대와 거주의 경계를 정하는 분이시다(17:26).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말씀이 있지 어떻게 들어간다고 하는 말씀은 없다. 더 재미있는 것은 가나안 땅을 제비 뽑아 얻을 땅이라고 했다. 가서 싸워 보지도 않았고, 어떤 사람들이 살며, 지형이 어떤지 알아보지도 않고 제비를 뽑아 먼저 얻어 놓고 그 다음에 가는 땅이다. 그것이 약속의 땅의 성격이다.

인간의 계획과 계산에 의해 들어가는 땅이 아니라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제비를 뽑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나누어주신다는 뜻이다. 사람은 선택권이 없고 얻는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도 하나님이 사람마다 나누어 주셔서 기업이 되게 하시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제비뽑아 얻는 것은 약속의 땅에 자기가 참여하는 자 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지, 개인 소유물로 삼는데 의의가 있지 않다. ‘내 것, 네 것따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가나안을 유업으로 받은 사람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것을 좋아하다 보니, 천국도 자기 천국, 자기 집을 원한다. 공동적인 것, 모두의 것이라는데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어쩌면 교회 봉사, 전도, 기도, 예배, 주일 성수 등등 교회의 모든 활동들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계산에 의해 크나큰 포부를 가지고 행해지고 있다. 이것은 종교 활동에 불과하다.

어쨌든 하나님이 이렇게 제비 뽑아 얻을 땅이라고 말씀하시고 이스라엘에게 나누어주시겠다는 것은 어떻게 들어가는지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이 전혀 신경쓰지 말라는 것이다.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거꾸로 말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들어가게 하시고 또 나누어주신다는 것을 보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은 우리가 가지는 관심은 어떻게 주실 것인가 하는 것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 앞으로 될 일들을 미리 알아서 대비하고자 하는 호기심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약속의 땅의 경계를 확실히 알라는 것이지 어떻게?’라고 하는 방법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재림이 반드시 약속대로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십자가의 주님이 재림주로 다시 오신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지 어떻게 언제 오시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십자가로 버림당하신 그분이 자기 원수들을 척결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자기 백성들에게 주신다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의 초점은 당연히 십자가의 주님 그분 자체이다.

본문에서 땅의 경계를 바로 파악하도록 그 경계를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로 알도록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가 무엇인가를 알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믿음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라는 것이다. 주신 은혜를 알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다(고전 2:12).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

교회에 무슨 물건이 필요한지를 아는 것이 아니고 예배당 건축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아는 것이 영생이 아니다. 장로는 장로, 집사는 집사, 목사는 목사의 일을 잘 아는 것이 영생이 아니며, 목사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 지를 아는 것이 영생이 아니다. 그것은 약속과 관계없는 것들이다.

약속의 땅의 경계를 안다는 것은 약속이 지향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을 말한다. 신약에 와서 약속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임이 분명하게 계시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사람들은 거부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하며 사는 것이 약속 안에 사는 사람이다.

본 장의 후반부는 가나안 땅을 실질적으로 나눌 자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다. 땅을 기업으로 나눌 자는 제사장 엘르아살과 여호수아로 말씀하시고 10지파의 족장들을 거명하신다. 여기서 10지파만 언급된 것은 르우벤과 갓 지파는 이미 요단 동편에 땅을 얻었기 때문이다.

제사장 엘르아살이라는 의미는 백성들을 대신하여 제사를 드리는 자이므로 곧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정신 안에 있는 자라는 의미이다. 여호수아라는 의미는 이제 모세를 대신하여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약속의 땅에 분명히 들어가게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신에 의한 감동으로 이루어지는 일임을 뜻하는 것이리라(27:18).

18절에 의하면, “너희가 또 기업의 땅을 나누기 위하여 매지파에 한 족장씩 택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투표해서 백성들이 대표를 뽑으라는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지명해서 말씀하신 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말씀이다.

약속의 땅은 선물이기 때문에 지파에서 대표자를 뽑아 하나님과 협상하여 기업의 땅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편에서 요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아 누리는 입장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일방적인 선물이지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2:8). 은사를 받기 위해서나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발악(?)을 하며 기도로 떼를 쓰는 자는 아직도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것도 받은 것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1999.3.28./김영대 http://blog.daum.net/revea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