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강론/고린도전서

09.고린도전서 4:1-5 그리스도의 일꾼

불편한 진리 2015. 1. 2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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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4:1-5 

그리스도의 일꾼

 

바울 사도는 3장 끝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헛것으로 아신다고 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고 권면하고 있다(고전 3:21). 복음을 전파하는 자는 세상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자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사람을 자랑하지 않는 자이다.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고전 3:23).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소유다. 그리스도의 소유는 곧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하나님의 것으로서 하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1절에 보면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먼저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일꾼이 교회의 직분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목사나, 장로, 권사, 혹은 집사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일꾼이라는 말을 하면 보통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자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 일은 직분 맡은 자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주보에 보면 청지기 혹은 섬기는 자로 표현하여 목사와 장로, 전도사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주보에 이름을 그렇게 나열한다고 해서 다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함께 주님의 일꾼 되었다는 것으로 보고 인식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혹시 주보에 나열되어 있는 직분과 이름들에 대하여 특별한 직분 내지는 특권 의식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란 본문에서 그대로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를 말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인가? 고린도전서 2:7에 보면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시고 약속으로 주셨고 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이루신 것을 말한다. 한 마디로 구원의 비밀은 십자가이다.

 

십자가의 복음을 비밀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은 그것이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아무에게나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이며(고전 2:9), 오직 계시의 성령께서만 성도들에게 보이시기 때문이다(고전 2:10). 그러기에 세상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비밀일 수밖에 없다.

 

주님의 부르심을 입은 성도는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서 십자가의 비밀을 맡은 자이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알고 있고 그 복음을 증거 하도록 부름 받은 자이다. 세상의 지혜를 전하고 세상의 학문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 신학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지혜는 아니다. 신학이라는 학문도 그것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되지 못하거나 밥 벌어먹기 위한 수단이라면 그것 역시 자기 자신의 잘남과 위대성을 드러내는 세상의 지혜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복음의 비밀을 알고 맡은 자라면 충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2절에서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많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흔히들 이 말씀을 가지고 목회자는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 일에 적극적으로 봉사하고 목사의 말에 무조건 순종하도록 만드는 일에 근거 구절로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목사에게 충성하고 교회 조직에 충성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충성을 유가(儒家) 사상에서 말하는 충효라는 덕목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정치 체계에서 하부 조직이 상부 조직에 충성하는 것으로, 조직폭력배들이 그 두목에게 충성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교회 조직이나 목사에게 무조건 봉사하고 죽도록 충성하도록 주어진 말씀이 아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제대로 드러낸다는 의미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충성이란 신실하고 신뢰한다는 뜻이다. 즉 복음의 비밀을 신실하고 신뢰하도록 드러낸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충성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비밀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 자신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부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비밀을 드러내는 일에 충성할 뿐이라고 한다. 바울 사도가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지 않고 오해를 받지 않기를 원하는 것도(3-5)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전할 복음의 중요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대하든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지 사람의 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충성은 맹목적인 충성이 아니다. 충성은 십자가 복음의 성격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그것만이 가장 분명한 충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상에 섬기는 종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진심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맡은 자로서 충성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길에서 벗어난다면 그것은 충성이라고 할 수 없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의 형상을 지니지 못한 자의 충성은 진정한 충성이 아니다. 충성의 모양은 있을지라도 십자가에 못박힌 주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충성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교회는 복음의 비밀을 맡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교인 수를 늘이는 일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복음의 비밀을 제대로 드러내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즉 주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그대로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보면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다기보다 십자가의 길과는 상관없이 나아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교인 수를 많이 모아 큰 교회 이루고 선교의 생색을 내면서 교회를 자랑하고 있는 것은 복음을 제대로 증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주님과 더불어 십자가의 길을 가기에 복음을 제대로 드러내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감사하여야 될 일이 아닌가? 복음을 제대로 전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하고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그것은 우리의 죄에서 나오는 욕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므로 충성이란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요구하신 대로, 주님을 위해서만, 주님의 길을 따라 가는 것이다. 이것이 충성이다. 우리의 충성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려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진 충성은 아닌가?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모습이 바로 이랬다. 주님의 자리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주님의 은혜가 드러나야 하는 자리에 죄인의 공로가 들어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전 3:23). 때문에 자신은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이 맡기신 일만 할 뿐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눈치를 보고, 사람의 오해 때문에 복음의 비밀을 맡은 이 일을 중지해 버린다면 하나님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고 자기를 위해서 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갈라디아서 1장에서도 이렇게 말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1:8-10).

 

그러나 바울 사도는 결코 자신이 많은 수고를 하였지만 그것이 자신을 의롭게 만드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4). 성도는 하나님의 비밀, 십자가의 비밀을 먼저 알게 된 자이다. 그 비밀의 전부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증거하기에 주저하지 말라. 하나님이 나를 어떤 모습으로 쓰시느냐에 상관없이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보여지기를 소원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이다. 굳이 다른 사람의 평가를 염두에 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 하는 것이다.

 

신자의 모든 삶의 의미는 주님 안에 있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서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5절에서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날에 우리를 심판하실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성도는 오늘을 충성되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날에 주님께서는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실 것이다. 정말 진심으로 복음의 비밀만 드러내기 위해 살았는가 하는 것은 주님 안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4:19)라는 진실된 마음으로 복음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일꾼인가 스스로에게 늘 물어야 할 것이다(2001.2.11/김영대 http://blog.daum.net/revea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