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강론/누가복음

71.누가복음 23:1-12 빌라도와 헤롯의 심문

불편한 진리 2015. 1. 12.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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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3:1-12 

빌라도와 헤롯의 심문

 

예수님은 공회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에도 성전 지도자들을 통해 여전히 자신의 메시야 되심을 증거하신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심문 과정을 통해 예수님은 자신의 그리스도이심, 선지자,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심판하실 심판주로서 자신을 증거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메시야 되심을 증거한 반면 성전 지도자들과 그들에게 동조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빌미로 더 이상 다른 증거가 필요 없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완벽한 죄과가 드러났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신들이 심문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소하여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1-2).

 

합법적인 사형권을 얻어내기 위하여 무리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간다.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을 고소한 내용을 누가는 세 가지로 기록하고 있다. 예수가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을 금지하고 자칭 왕 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세 번째 고소의 내용은 그리스도라는 말을 이방인들이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왕이라는 직과 연결시켜서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빌라도에게 정당하게 재판을 받아야 할 근거를 말한다는 점에서 유대인들은 철저히 로마 정부의 권력과 결탁되었다는 사실이 폭로되고 있다.

사실 누가는 이 세 가지에 대하여 이미 앞에서 다 다루었었다. 적어도 누가의 기록을 찬찬히 읽어 온 자라면 예수님을 고소하는 무리들의 고소가 터무니없다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되는 내용이다. 예수님이 백성들을 미혹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성전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고 빌라도에게 시위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런 점에서 누가는 예수님이 무리들이 고소하는 것과 같은 그런 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3-4).

 

빌라도가 예수님께 던진 말을 단 한 마디로 누가는 기록하고 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하는 물음이었다. 예수님은 네 말이 옳도다라고 하셨다. 이는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라고 직역할 수 있는데 너는 정치적인 의미로 그 말을 사용하나 나는 아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왕이심을 결코 부정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빌라도가 생각하는 정치적인 왕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셨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백성들을 선동하며 로마 정부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기미를 도무지 발견할 수 없었다. 적어도 유대인들이 주장하고 고소하는 내용의 죄인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서 죄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발언하자 무리들은 강하게 반발하면서 예수가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소동을 부렸다고 고소하였다.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를 발견할 수 없었던 빌라도는 무리들이 갈릴리에서부터라는 솔깃하였다. 왜냐하면 그곳은 헤롯의 관할지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 다스렸던 헤롯이 죽고 그 아들들은 정치적인 권력의 다툼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이 있는 유대는 로마 정부에 직접 관할하는 총독을 파견하여 다스리는 상태였지만 나머지 갈릴리를 비롯한 다른 지방은 헤롯이 다스리고 있었던 것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예수님을 헤롯에게 보내고자 하였다. 아마도 빌라도는 예수님을 헤롯에게 보내어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려 하였을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재임 기간동안 유대인들의 반란이 없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마침 헤롯은 예루살렘에 와 있었다.

 

무리가 더욱 굳세게 말하되 저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케 하나이다 빌라도가 듣고 묻되 저가 갈릴리 사람이냐 하여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5-7).

 

헤롯은 예수님을 보고 기뻐하였다. 그 이유를 8절에서 이렇게 밝혀주고 있다.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헤롯이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던 것은 이적이 보고 싶었던 것이지 예수님이 아니었다. 이러한 헤롯의 마음을 예수님은 이미 간파하셨다. 그래서 침묵으로 일관하셨던 것이다.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지 아니하시니”(9).

 

헤롯의 열심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헤롯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에 대한 관심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 자기 필요에 의해서이다. 자기 필요에 따라 예수님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2-25).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 모든 인간들은 이 범주 속에 있다. 따지고 보면 표적을 구하는 것이나 지혜를 구하는 것이나 십자가를 거부하기는 매 일반이다. 이런 점에서 사람은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십자가를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로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이다. 십자가를 인정한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만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예수님을 찾고 만나고자 할 때에 예수님은 침묵하신다. 오히려 스스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면서 고고함과 권위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헤롯의 자세는 복음을 거부하고 십자가를 알지 못하는 삶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헤롯은 금방 유대인들의 시류에 편승하여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희롱하게 된다.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는 예수님을 거부하고 모독하는 일에 언제나 용감하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소하더라 헤롯이 그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10-11).

 

10절의 표현은 예수님에 대한 증오와 반목은 헤롯 개인의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유대교의 지도자들과 연합된 결과임을 보여준다. 유대인으로 보이는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희롱하고 죽이기를 고소하니 헤롯은 거침없이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희롱하기 시작한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소하였다는 말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헤롯의 심문 장소에 함께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판의 배후에서 조종하는 세력은 다름 아닌 유대교의 고위층 지도자들임이 명백해진다.

여기서 빛난 옷이란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고 부유한 자들이 입는 옷이기 때문에 왕의 위엄, 상승하는 사회적 지위를 대변해 준다는 의미가 있다. 예수님께 이런 옷을 입혀 유대인의 왕으로 가장하여 조롱하겠다는 의도이다. 헤롯이 예수님을 조롱한 극적인 장면이다.

 

자신이 원하는 뜻을 이룰 수 없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예수님에게서 얻을 수 없자 헤롯은 점진적으로 더욱 강도 높게 예수님을 비난하고 희롱하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더 이상 얻을 수 없다는 것을 판단하게 되면 예수님을 버리는 우리들의 모습과 일반이다. 헤롯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다시 돌려보낸다. 이 시점에서 누가는 다음과 같은 해설을 덧붙이고 있다.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12).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사도행전 4:26-27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온다.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빌라도와 헤롯이 당일에 친구가 되었다는 표현을 누가가 덧붙임으로 헤롯과 빌라도, 이방인과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제거하고자 하는 일에 철저히 하나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서로 원수 관계였더라도 예수님을 처단하자는 일에 대해서만큼은 모든 인간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만큼 죄인들은 하나님을 싫어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죄라고 성경은 지적하고 있다.

예수님을 좋아하는 인간은 세상에 없다. 죄인은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 안에 넣어주신 사랑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성도는 오직 하늘로부터 주어진 사랑으로 예수님만 사랑하는 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200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