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강론/누가복음

68.누가복음 22:24-38 베드로의 부인 예고

불편한 진리 2015. 1. 9. 17:49

 

68/

누가복음 22:24-38 

베드로의 부인 예고

 

예수님의 모든 관심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에 있었다. 유월절 식사를 통해 예수님께서 밝히신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이 바로 자기 자신이 성취한다는 것이었다. 유월절 성취를 보여주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알려주고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16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라고 말씀하셨고, 18절에서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라고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로마정부를 뒤엎고 정치적인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리라고 기대하였는지도 모른다.

 

유대인들의 식사 자세는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대어 오른손으로 식사를 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식사 자리로 인하여 예수님의 품에 안기는 것과 같은 위치에 있는 제자가 있었고 또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오해하게 되었다. 이런 것으로 인하여 제자들 사이에 다툼이 있게 된다. “또 저희 사리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24).

제자들의 다툼으로 인하여 예수님은 또 다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이방인들에게 있어서 임금이란 사람들을 주관하고 그 집권자는 호의와 은총을 베푸는 자라고 인정하게 될 것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는 섬기는 자라는 것이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27).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이었다. 하나님 나라는 섬김을 받는 나라가 아니라 섬기는 나라이다.

 

예수님은 이런 기준과 원리에 의해 하나님 나라를 제자들에게 맡기신다고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9-30). 예수님은 구약의 열 두 지파에 상응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신다는 것이다. 즉 새로운 공동체인 이스라엘 나라의 열 두 지파는 열 두 제자가 기초가 되어 다스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교회는 서로 섬기는 공동체이다. 서로 섬기는 공동체를 어떤 자가 되는지 예수님은 이제 그 구체적인 모습을 베드로를 통해 말씀하신다.

31-32절에 보면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릇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33절에 보면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우리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다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서 실패하지 않도록 미리 조치를 취하시는 것이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게 된다. 그렇다면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32절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은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다는 것은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돌이킨다는 것이다. 비록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였다고 할지라도 돌이켜 형제를 굳게 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예수님께서 베드로로 하여금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게 기도하신 의미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시고 말씀하신 의미가 무엇인가? 33절에서 그 답이 밝혀진다.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이는 베드로의 호언장담이었다. 베드로의 이런 호언장담을 통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를 파악할 수 있지 않는가? 베드로는 스스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여겼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까지 따라가겠다고 큰소리친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주님은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고, 돌이킨 후에 형제를 굳게 하기를 원하신 것이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세 가지 잃은 것에 대한 비유가 나온다.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잃은 아들에 대한 비유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잃은 양을 찾는 목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여자, 잃은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에 대한 비유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 세 가지 비유에서 공통적인 것은 찾는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렇게 자기 백성을 찾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베드로 역시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자기 백성을 찾으시는 주님의 십자가 사역과 무관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다시 찾으실 것이다.

 

자기 스스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여기고 집을 나간 아들과 같은 상태가 되었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가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시며 다시 돌이키게 하실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이고 말씀하신 의도이다. 실제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 가셨을 때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21:15,16,17)라고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즉 이제는 자신보다 주님이 자신에 대해 더 잘 아신다는 뜻이다.

실패를 경험한 베드로가 알게 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죄인에 대해서 더 잘 아시는 분은 주님이시라는 것이다. 실패를 경험한 자가 알게 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잃었다가 얻은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바로 이러한 자기 백성을 찾으러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이다. 나 자신에 대해서 주님이 더 잘 아신다는 고백을 하는 자이다. 자기 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가 아니라 자기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자이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자이다. 주님의 일하심에 자기 주장을 하지 않는 자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제자들은 이러한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있다. 섬기는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35-36절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그러자 제자들은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답변은 족하다라는 말씀이었다(38).

이는 검 둘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이 만족하셨기 때문에 하신 답변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에게 정말로 검과 주머니 전대를 준비하고 하신 말씀이 아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지는 일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전쟁의 상황이라는 뜻이다. 그러기 때문에 검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주머니와 전대를 챙겨 전쟁에 임하는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족하다고 하신 것은 그만 됐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에게 성경이 보여주는 것은 성전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는 그 현장까지 철두철미하게 죄인들에게서 버림을 당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온전히 예수님 홀로 이루신 사건이다. 그래야만 대속의 은혜가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 온전히 드러나기 때문이다(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2003.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