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요한복음 2:1-12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많은 착각들을 합니다. 이를테면 예배에 잘 출석하는 것이 신앙생활 잘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또는 성경공부를 하는 것 자체를 신앙생활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외형적인 것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종교생활일 수도 있다는 데 대해 늘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기도, 예배, 십일조, 전도 등을 하지 않아서 예수님의 책망을 받은 것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종교 생활화되어 있었기에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처음 표적을 통해 무엇을 지적하시고 무엇을 나타내시는가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1장에서 세례 요한을 비롯하여 몇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는 것과 예수님 자신이 어떻게 증거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1:51에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으로 바르게 사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인간의 철학이나 학문을 가지고 신에 대해서 연구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수님이 계시하신 하나님, 성경이 알려주고 있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늘이 열려야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특히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을 가지고 율법화해서 자기의 행위로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하는 죄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죄는 끊임없이 자기의 행위를 주장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곧 주님의 피 공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죄성을 주님께서는 잘 아십니다.
그래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는 말씀대로 이러한 표적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두 가지 표적을 나타내셨습니다. 그것은 곧 갈릴리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첫 번째 표적(2:1-12)과 성전을 헐라고 하시면서 성전에서 소란을 일으키신 표적입니다(2:14-22).
예수님은 몇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셨습니다. 이 잔치가 누구의 잔치이고 마리아와 예수님이 왜 참석했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본문의 초점은 예수님께서 이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 일을 통해 자신을 어떻게 계시하시는가에 있습니다. 잔치에서 아주 중요한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이것을 마리아가 예수님께 고했습니다.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잔치의 흥이 깨어지는 문제였습니다. 유대인들의 혼인 잔치는 며칠씩 이어졌기 때문에 포도주를 많이 준비해 두었어야 했습니다.
찾아온 마리아를 향해서 예수님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4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하인들에게 결례를 따라 두 세통 드는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십니다. 떠서 갖다 주었더니 다들 감탄하면서 좋은 포도주라고 칭찬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간단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이적의 결론이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11절)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이적의 의미를 본문에서 분명히 말씀하지 않을 뿐더러 이 이적을 “표적”이라고 하는 것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을 계속해서 상고하면서 우리는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이 되어 인간으로 오셨다는 것은 죽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은 오신 목적이 분명하였고 그 목적을 따라서 하나님을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라는 말씀은 앞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과 분명히 연관이 있습니다. 1:14에 보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독생자의 영광은 무엇입니까? 1:18에 의하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영광”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본질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을 누가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가 하면 바로 하나님 자신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그분이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드러내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독생자라는 것입니다. 환언하면 아무도 하나님의 본질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내신 하나님의 본질이 진짜입니다.
그 하나님의 본질이 무엇을 통해 제대로 드러날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12:16, 24, 13:31-32 등에서 말씀하고 있는 영광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가지고 영광을 얻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요 그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 일에 인간은 불가능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라는 말씀의 의미는 바로 예수님 자신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이 이적을 통해 예수님 자신이 앞으로 지실 십자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이적은 표적입니다. 표적이란 이정표와 같은 것입니다. 화살표입니다. 이 화살표는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라는 화살표 역시 십자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사건을 보여주기 위해 이적이라는 것을 통해서 실물 교육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는 말씀은 이런 차원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즉 마리아는 잔치의 흥이 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해결을 원하는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인간 잔치의 흥이 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육신이 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결례를 행하는 항아리에 물을 부어서 포도주로 만드셨던 것입니다. 인간이 의식을 행하는 것을 통해서 죄씻음 받는 것이 아니라 죄 사함의 문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여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님은 마리아에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다”(4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때”라는 말은 요한복음에서 7번 기록되어 있는데(7:30, 8:20, 12:23, 27, 16:32, 17:1) 전부 주님께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를 지는 사건을 두고 말씀합니다. 즉 “내 때”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때고 그것은 이제 이 표적을 통해 드러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주님은 이 표적을 통해 고난과 죽음의 길인 십자가의 길을 시작했다고 공표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를 통해서 새로운 하늘나라의 백성을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은 종종 천국을 잔치로 비유하고 있습니다(사25:6-9). 예수님은 이 잔치에 참여하셔서 인간의 잔치가 아니라 죄인들을 예수님 자신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천국 잔치에 참여시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늘이 열림으로 비로소 드러난 것이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죄사함을 얻게 되어 있으며 그 사건이 내게 의미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에 주님의 새로운 백성으로 창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란 죄인인 내가 죽고 주님의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서 천국 잔치의 영광에 참여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그 영광에 참여시키고자 인간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아무도 나갈 수 없음을 결례를 행하는 항아리의 물을 포도주로 만드셔서 인간의 의식으로 의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모든 인간의 행위를 고발하시고 정죄하시면서 십자가로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주님의 십자가를 죽음이라는 끝이라고만 볼 것이 아니라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로 우리에게 천국의 영광을 안겨주는 것이 된 것을 우리가 생각한다면 오늘 우리의 고난과 어려움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앞에 항복하는 자만이 천국 잔치의 영광이 주어지는 것임을 알고 날마다 십자가를 통한 하늘의 영광을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신자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19960623/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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