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강
거듭남
요한복음 3:1-15
이제까지 우리는 요한복음을 통해 처음부터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을 지적받았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사건 자체가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존재임을 폭로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항상 ‘인간은 아니다’라고 하는 부정적인 지적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란 먼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십자가를 지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2장에 두 가지 표적을 기록하여서 인간의 죄성과 유대인들의 율법주의를 낱낱이 공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처음 행하신 표적이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인간이 물로써 자신을 깨끗케 하려는 정결 문제를 공격하셨습니다. 그것으로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성전이지만 하나님의 의도를 알지 못하고 성전의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다면 그 성전은 우상이 되기에 성전을 파괴할 것을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신앙중심인 성전을 헐라고 하심으로 유대인 전체의 종교행위를 공격하셨습니다. 아니 모든 인간의 종교행위 자체를 거부하셨습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 “그러면?”이라는 질문이 나와야 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모든 종교행위를 거부하시고 오히려 부당한 것이라고 공격하셨다면 과연 주님이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물음을 가지고 본문을 대해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2:23-25 말씀은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기간동안 예루살렘에 계시면서 행한 표적 때문에 믿는 자들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친히 사람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을 의탁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표적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인정치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에 대하여 아무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요한복음이 처음부터 지적하듯이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친히 증거해 나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제 니고데모에게 자신을 친히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2장에서 표적에 근거한 믿음으로서는 주님을 알 수 없다는 것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 역시 주님을 찾아와서 하는 말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2절).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호기심 때문에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의 호기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답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절). 즉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까닭은 아마도 ‘하나님 나라’에 있었던 것같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표적 자체가 신기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따르면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될 것으로 여겼는지도 모릅니다.
요한복음 20:30-31에서 예수님의 표적을 기록한 이유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로 믿게 함으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요한 사도의 기록 목적에 비추어서 생각하자면 지금 니고데모는 표적에 관심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 표적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표적을 넘어 주님 자신을 보라는 뜻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보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를 보거나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거듭나는 것이어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제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절). 여기서 거듭 난다는 것은 두 번 태어난다는 말이 아니라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물론 본문에서 이 말은 ‘다시’라고 하는 의미도 될 수 있고 우리 성경의 난하 주에 나타난 것처럼 ‘위에서’, ‘위로부터’라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니고데모는 이 말에 대해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위로부터’, 즉 “하늘로부터”라고 하는 의미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태어나지 않고 땅에서 혹은 육으로 태어나는 것은 하늘나라와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이 거듭나는 정도가 아니라 천 번을 태어나고 백 번을 태어난다 하더라도 이 땅에서의 다시 태어남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난다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아무리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육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으로 난 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육”이란 말은 우리의 몸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모든 심성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전혀 기대할 것이 없는 죄인 그 자체를 육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영”이란 말을 이해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본문에서 영이란 육과 다른 존재, 대조되는 존재, 그런 상태를 가지고 영이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행위로는 도무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의 역사로 인해 위로부터 태어나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은 지금 니고데모로 하여금 거듭나야 되니까 다시 가서 성경을 공부하고 더 노력해서 거듭나야 한다는 의미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거듭남이란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결과만 알 뿐이라는 것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8절). 인간의 노력이나 종교행위에 의해 거듭나지 않는다면 위로부터 나는 근거는 과연 무엇입니까?
죄인이 하늘로부터 나는 것은 오직 하늘로서 오신 분에 의해 가능합니다(13절). 그래서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구약의 민수기 21:4-9에 나타난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말씀입니다.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방법이 불뱀을 구리로 형상화하여 높은 장대에 달아서 그것을 쳐다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쳐다 볼만한 것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하늘로서 온 예수님 자신이 인간들의 죄값을 지고 저주를 받을 때에 죄에서의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방법이 아니고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 그분이 십자가에서 죄에 대한 저주를 짊어지고 죽는 대속의 죽음만이 사람을 거듭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표적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그 표적이 가리키고 있는바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15절에서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기 위해서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조건과 방법이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 심지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결, 성전이라는 종교행위를 가지고는 구원이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늘로부터 나는 것은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님에 의해서만 가능하기에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오셨고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방법으로 해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니고데모와 같은 존재입니다. 니고데모는 우리를 대표해서 이런 질문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십자가로 주님은 부르십니다. 그 십자가가 우리의 생각에는 도무지 구원의 방법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주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쳐다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선행, 기도, 전도, 헌금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려고 하는 신앙이 아니라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 십자가 속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들어 있음을 늘 발견하는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http://blog.daum.net/revealer 19960707/ 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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