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출애굽기

29.출애굽기 29:1-46 제사장의 성결

불편한 진리 2014. 9. 22.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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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9:1-46

제사장의 성결


1. 출애굽기 29:1-37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거룩한 위임제를 거행함으로써 정식으로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 성막에서 봉사하게 된다. 아들들을 회막문으로 데리고 와서 물로 씻기고 거룩한 옷을 입힌 후 머리에 관유를 붓는다. 그리고는 제사장의 직무를 시작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제사들을 7일 동안 드리는 위임식을 거행해야 했다.

수송아지의 속죄제(10-14)

수양의 번제(15-18)

위임제의 수양(19-25)

수양의 화목제(26-28)


2. 출애굽기 29:38-46


여기서는 매일 드려야 하는 번제의 규례에 대한 제사장의 임무를 기록하고 있다. 매일 1 년 된 어린 양을 아침저녁으로 드려야 한다. 거기에 밀가루 1/10에바, 기름 1/4, 포도주 1/4인 등을 섞어서 드려야 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면 제사장이 필요하다. 직접 제물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심판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러나 제사장은 성소에 들어가도 죽지 않는다. 제사장은 거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거룩한 사람으로 구별되었는가?

제사장 직분은 먼저 아론과 그의 자녀들에게 주어졌으며 레위인들은 후에 저들을 보조하도록 지시된다. 이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의 각 가정에서 선출된 맏아들들을 대신하였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사실상 이스라엘 전체 백성이 제사직에 참여하는 것이 되었다(13:2, 3:12,41 ).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미 이때에 백성 모두가 사실상 제사장들이었던 것이다. 다만 그 사역이 간접적 성격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제사장은 어떻게 해서 거룩한 사람이 되었는가? 그것은 희생제물 때문이다. 희생제물의 피와 기름을 제사장의 옷과 몸에 직접 바르게 되어 있다. 제단도 희생제물의 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된다(29:19-25, 9:9,12,18). 피란 생명을 의미한다. 피는 생명과 일체이다(17:10-14). 제사장이 희생제물의 피를 입어 거룩하게 되었다는 말은 희생제물 자체의 거룩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제사를 드림으로써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은, 거룩한 사람에 의해서 희생제물이 무사히 하나님께 드려졌기 때문이다. 비록 백성들의 신체나 옷에 희생 제물의 피가 묻지 않더라도 하나님께 그들의 죄에 대하여 묻지 않으시는 것은 제사장이 백성들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음의 두 가지 문제가 정리되어야 한다. 첫째, 백성들은 죄인이기 때문에 꼭 거룩한 인물인 제사장이 요구된다. 그렇다면 제사장 자신의 죄를 씻는 제사장은 누구인가?

둘째, 백성들이 제사장처럼 직접 옷이나 신체의 일부에 피를 묻히지 않더라도 거룩한 백성이 된다면 왜 제사장은 같은 백성의 일원으로서 피를 직접 신체에 묻히고 옷에 묻혀야 거룩한 사람이 되는가?

위의 두 가지 물음을 동시에 해결하려면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야 한다. 레위기 19:18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온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즉 제사장을 통해서 이스라엘 전체에 의와 용서와 거룩이 전달되는 원리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원칙이다. 제사장이 직접 희생 제물과 일체가 되어야 하고 또 희생 제물로 가치 있을 만큼 완벽한 의()를 소유하고 있다면 이 제사장 언약 지배체제 하에서는 모든 백성에게 동일한 의와 거룩이 돌아간다.

레위기 20:26에 보면,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여기서 거룩이란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과는 다르게 하나님에 의해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다른 이방 신들과 차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도 다른 민족과 차이 나게 구별하셨다는 것이다. 이 선택의 원리가 이스라엘 전체에 거룩이 주어질 수 있는 근본적인 근거이다.

완벽하게 거룩한 어떤 인물이 직접 희생제물로서 자신을 제공하되 그 인물이 백성을 대표할만한 사람일 때 위에서 언급한 문제는 간단하게 정리된다. 제사장의 신체에 직접 피를 묻히는 것은 그 제사장이 바로 희생제물의 인격화임을 보여주고 그분이 백성을 대표했기 때문에 다른 백성들이 신체에 직접 피를 묻힐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아직까지 동물 희생제물이 직접 사람의 제물로 변이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인간 제사장들이 자신의 죄로 인한 한계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 말은 백성들 중에 뽑혀 나온 그 어떤 아론 반열의 제사장도 완벽한 의인이 못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갈 때는 백성들의 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죄로 인해서도 희생제물을 바쳐야 한다. 그러니 희생제물의 인격화가 아직 요원한 것이다(8:26,27; 5:3; 4:3).

희생 제물에 모든 주도권이 가 있는 제사 제도이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중에서 거룩한 인물이 나타나 거룩한 희생제물과 일치되어야 하나님의 거룩은 온전히 이스라엘에 구현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에 온전한 분은 오직 하늘에 계신 이스라엘 왕으로서의 하나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왕이 지상의 인물이 되어 이스라엘에 나타날 때 그분이 바로 희생제물과 일치를 이룰 분이 된다. 올바른 왕이 제사장이 되는 경우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개입되며 그럴 때 거룩은 완성되고 이것이 하늘나라이다(5:17-20).

레위기에서 제사장으로 지목된 자에게 하나님은 이런 차원에서 다른 백성들과 구별되기를 요구했었다. 그 거룩의 기준은 처음 창조시의 죽음과 상관없는 모습을 취하기를 당부하셨다. 그래서 제사장은 시체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되고 또 불구자나 이미 몸을 더럽힌 여인과 혼인할 수 없게 된다(참고 레 21).

처음 창조 때, 창조 활동의 완성을 안식으로 표현했는데 레위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율법의 완성을 안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죄 없는 상태가 바로 말씀대로 시행되는 경우이며 이런 경우에만 안식이 된다. 그래서 모든 제사의 날은 안식일이다. 그 안식의 절정은 희년제도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 자리를 찾고 제 모습을 찾아 들어가는 모든 그 사회가 바로 하나님이 원했던 말씀대로의 안식 상태이고 그럴 때만 땅은 회복된다. 만약에 이런 율법이 시행되지 아니하면 땅은 비언약적인 것을 토해내고, 죄악을 토해 내었기에 거룩한 상태로서 안식을 회복하는 것이다(26).

제사장에 있어서 희생제물은 두 단계를 거쳐서 죽여야 한다. 하나는 제사장의 죄를 위하여 먼저 죽여야 한다. 이것을 보고 백성들은 자신들 전부가 죄인 됨을 감지하고 그 희생 제물의 죽음에서 심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제사장을 위한 제사나 백성들 전체의 제사는 동일하게 수송아지가 희생 제물로 등장한다. 4:3,1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희생 제물을 부여해서라도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기어이 세워 나가신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이해하게 된다.

제사에 쓰이는 인물이나 기구를 거룩하게 하는 근원은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그것은 모든 희생 제물의 피로 씻어 거룩해진다. 예를 들면, 제사장이 될 사람은 오른쪽 귀뿌리와 오른쪽 손가락과 발가락에 피를 발라야 한다. 그리고 옷과 제단에 뿌려진 피는 희생제물의 생명이 뿌려진 것이다. 희생제물의 생명의 덕택으로 제사장과 제사 기구들은 하나님 앞에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자기 본유의 목숨과 전에 인식되던 의미는 상실되어야 한다.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서도 죽지 않고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은 온 이스라엘 백성 전부에게도 희망 사항이다. 거룩하다는 인정을 받아 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제사장의 거룩이 자기의 본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제물의 생명에 근거한다고 보았을 때, 그 거룩의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주어지게 된다. 희생제물을 일단 거룩한 제사장에게 바치면 그 제물은 다시 하나님께 바쳐지게 된다. 만약 그 제물이 제대로 열납 되면 그 백성도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거룩이란 제사장이나 일반 백성이나 희생제물에서 유발된다. 이것은 제물을 바치는 인간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희생제물이 거룩하다는 말이다.

제사장의 삶이나 성소를 중심으로 한 거룩을 지키고 유지하고 방어하는데 치중하는 것은, 이스라엘 내의 거룩이란 희생 제사가 드려지는 그 공간에 한정됨을 말해주는데 주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군대로서의 국가 이스라엘이 전쟁 활동에 나서는 것은 제사장의 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모세 및 장로 그리고 그 수하에 있는 지도자급에 있는 자들의 몫이다.

그러나 소극적으로 거룩을 유지하는 것은 제사장의 할 일이다. 이미 거룩이 국가 이스라엘 내부에 자리 잡고 있고, 그리고 제사장이 그 중심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거룩한 제사장 나라이다(19:6). 따라서 희생제물은 정결한 창조의 모습으로 세상의 죄악을 드러내기 위한 조치로 개입된 것이고 그 목표는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안식의 때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제사장의 직무는 그리스도 안에서 남김없이 완성되었다(9:11-15). 오늘날 어느 누구도 구약의 제사장, 혹은 대제사장의 역할을 하며 그 직무를 나타내어야 할 이유가 없다. 만약 그런 의미로 행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부정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대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분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 실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모든 자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보여주어야 하는 또 하나의 제사장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벧전 2:5,9)(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