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사무엘상

31.사무엘상 27:1-12 다시 블레셋으로 간 다윗

불편한 진리 2014. 9. 6. 20:13


사무엘상 27:1-12

다시 블레셋으로 간 다윗

 

다윗은 두 번째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지만 죽이지 않고 사울의 머리맡에 있는 창과 물병만 몰래 가지고 나왔다. 여기서 사울은 이미 죽은 목숨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죄를 범하였다고 뉘우치며 다윗은 하나님의 복으로 말미암아 큰 일을 할 것이라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을 피해 좀 더 안전한 곳으로 가기를 원하였다. 1-2절에 보면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다윗이 일어나 함께 있는 사람 육백 명과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윗은 아내 아히노암과 아비가일 뿐만 아니라 식구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병사 600명과 함께 블레셋 가드로 갔다. 그곳은 아기스가 다스리고 있는 곳이었다. 다윗이 간 곳은 과거에도 사울을 피해 도망했던 곳이었다(삼상 21:10-15). 이전의 상황에 비해 다윗에게는 아내들과 식구들이 있었고 또한 부하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그것이 아기스의 믿음을 살 수 있는 요소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다윗은 시글락에서 처음으로 14개월이라는 시간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6-7).

8절을 보면 다윗은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공격한다. 그런데 아기스에게는 유다 남방과 여라무엘 사람의 남방과 겐 사람의 남방을 쳤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한 일을 아기스가 모르게 하기 위해 침략한 곳의 사람들을 철저히 죽이고 가드로 포로를 데려가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치고는 블레셋의 원수를 친 것처럼 아기스에게 말하였다.

이러한 다윗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다윗은 자신과 자신의 식솔들이 살 길은 블레셋 땅으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1절에 의하면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다윗의 행위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행동한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 명백하다. 다윗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행동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각에 의해 행동하고 있었다. 블레셋은 이방인이었고 더군다나 수시로 이스라엘을 침략하며 괴롭혔던 족속이었다. 그런데 다윗이 그곳으로 가서 자신을 맡긴다는 것이 정당한 것이었는가?

우리가 여기서 다윗의 행위가 정당한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다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일로 인하여 다윗을 책망하시는 내용이 나오지 않고 성경이 그 어떤 평가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시글락에 있는 일로 인하여 나중에 아말렉의 공격을 받아 여자들과 아이들을 빼앗기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으로 인해 그의 잘못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는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진멸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기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강조점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이 문제는 사무엘상 30장을 강론할 때 구체적으로 다룰 것이다).

다만 우리가 본 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윗이 이방 땅에 거하게 되었다는 것이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땅에 다윗이 거할 수 있을 곳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의 왕이 언약의 땅에 있을 곳이 없었다. 그곳에 거하려고 하였지만 이스라엘의 온 백성들이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고 있고 그에게 다윗의 위치를 철저히 신고하는 상황이었기에 다윗은 더 이상 이스라엘 땅에서 쫓겨만 다닐 수 있는 상태로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다윗이 자기 생각으로 블레셋 땅으로 갔지만 어쩌면 14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편안함으로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윗이 시글락에 있는 동안 그가 한 일을 통해 성경은 우리에게 언약의 어떤 한 면을 계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다윗이 이방 땅에서 아기스에게 거짓말을 하며 사는 모습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신앙적인 모습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명확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다윗을 통해서도 자신의 언약을 계시하신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시글락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유다 지파에 속한 지역이었다(15:31). 하지만 나중 시므온 지파에게 주어졌으나 블레셋에게 빼앗기고 말았다(19:5). 다윗이 가드 왕 아기스에게 받은 땅은 바로 이곳이었다. 그곳에서 다윗은 그술과 기르스, 아말렉 사람들을 침략하였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기업으로 주신 땅이었다.

 

1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2이 남은 땅은 이러하니 블레셋 사람의 모든 지역과 그술 족속의 모든 지역 3곧 애굽 앞 시홀 시내에서부터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북쪽 에그론 경계까지와 블레셋 사람의 다섯 통치자들의 땅 곧 가사 족속과 아스돗 족속과 아스글론 족속과 가드 족속과 에그론 족속과 또 남쪽 아위 족속의 땅과(13:1-3)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당시에 이방족속들을 다 쫓아내지 못하였기에 그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있었다. 다윗이 시글락에 거하면서 한 일이 바로 이스라엘이 회복해야 할 땅을 공격하였다. 그 땅은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이 거하고 다스려야 할 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비록 쫓겨 다니는 상태에 있었지만 그를 통해 언약의 나라가 다스려야 할 영역들을 회복하고 계셨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언약의 왕 다윗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을 회복하고 계셨다. 다윗은 자기 생각으로 블레셋에 갔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이루시는 일에 다윗을 사용하고 계셨다.

성경은 다윗이 자신의 살 길을 찾아 블레셋 땅으로 가는 연약하고 초라한 모습을 보여 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지금 성경을 읽는 입장에서 무조건 다윗을 비난하고 믿음 없는 행동이었다고 쉽게 말 할 수는 없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 안에 이런 행위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의지하며 살겠다고 결심하고 각오를 가진다고 해도 내일 일어나는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신앙으로 살아가겠다고 하면서도 수시로 나의 방식과 나의 계획을 앞세우며 살아가게 된다. 미래에 대한 염려와 불안감 때문에 내가 나를 스스로 지키기 위하여 나의 생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 우리의 죄성이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언약의 내용을 그대로 회복하고 계시며 뿐만 아니라 다윗을 언약의 왕으로 세워 가시며 언약의 왕다운 모습으로 만들어 가고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죄성을 정당화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을 늘 하나님 앞에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십자가를 드러내는 일을 하신다는 사실 앞에 무릎 꿇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에 항복하는 자이다. 이런 점에서 바울 사도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도록 성령께서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9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9-10)

 

(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2012.10.21).